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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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의 동지 맞이
동지를 앞둔 21일 저녁 조계사 만발식당을 찾아갔다. 낮에 빚어 놓은 새알이 만발식당 테이블에 가득 널려있었다. 천장에서는 새알을 말리기 위해 선풍기를 틀어 놓아 만발식당 입구는 더 싸늘했다. 주방엔 햐얀 김으로 가득했으며 가까이 갔을 때는 솥에서 나온 김 때문에 주방이 후끈거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짓날 하면 밤의 길이가 일년 중 가장 긴 날, 팥죽을 먹는 날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예로부터 작은 설, 11월(음력)을 동짓달이라고 할 만큼 11월을 대표한다. 옛날엔 동지를 설이라 했는데 이는 태양의 부활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이다. 설날이 바뀌면서 동지는 ‘작은 설’, 다음 해가 되는 날의 의미로 ‘아세(亞歲)’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지에는 팥죽을 쒀 먹는다. 한편 옛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를 찍어서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 전염병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여겼으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속담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조계사에서는 이번 동짓날 팥죽 대중공양을 위해서 찹쌀 10가마, 쌀 5가마, 팥 7가마를 준비했다고 한다. 새알을 만드는 데 4시간. 다행히 새알을 만들때는 여러 법회에서 나와 빨리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팥을 삶아내고 식히는 데 7시간이 걸리고, 다시 팥을 체에 내리는 작업이 시작된다. 팥을 내리는 작업은 다른 작업보다 오래 걸린다. 체에 팥을 담고 빨래를 비비듯 팥을 비비며 껍질만 남기고 앙금을 내는 작업이다. 이날 봉사자들은 제일 큰 일이 앙금을 내는 일이라고 하는데 일손이 모자란다며 걱정을 했다. 새벽 1시부터 시작해서 앙금을 내는 작업은 새벽 6시가 넘어서야 삶아 놓은 팥의 반을 할 수 있었다. 공양주 보살(여래심 보살, 보현화 보살)과 여실안 보살이 차려준 아침공양을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모두들 얼굴과 옷, 머리까지 팥 앙금이 엉겨붙어서 마치 팥죽 속에서 나온 것만 같았다. 새벽까지 팥죽을 쑤느라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인천에서 팥죽을 쑤려고 올라 온 서영기(만월행) 보살. 60이 넘어신 노보살은 며칠 전 뉴욕에 다녀온 여정을 다 풀지도 않고 다음 날 팥 앙금이 다 내려지는 걸 본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후에 다른 분께 그분들의 성함을 물었더니 이름을 전혀 모른다고 하셨다. 3년 동안 팥죽을 쑬 때마다 나온 봉사자들이라고 하는데 그냥 “보살님”이나 “삼촌”으로 불린다고 한다. 22일 동짓날, 많은 신도들이 동지기도 회향겸 송년 법회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조계사로 왔다. 신도회장 이연숙(대각심) 보살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사무총장 박영환(진실행) 보살의 불기 2547년 신도회 사업 보고를 했다. 총무국장 도림스님의 조계사의 한 해 행사와 불사 진행 사항 보고가 끝나고, 모범 신도 및 단체 수상이 있었다. 공로패 엄상옥(자성화) 보살, 감사패 구자선(덕암) 거사외 9명. 신행상에는 관음법회 손희순(대도월) 보살을 포함해 모두 20명이 수상했다. 조계사에서 삼촌으로 불리는 불교대학 홍희택(성진) 거사는 이날 만발식당에서 팥죽을 쑤느라고 시상식에는 참여를 하지 못했다. 그 외 정진상으로는 5팀(청향법등 팀, 사보편집팀, 인터넷 보도국팀, 새신도 안내팀, 사무처 구도부)이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조계사에서는 집안 사정이 안 좋은 중고학생 7명을 포함에 11명의 신도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더 많은 신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으나 마음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다는 신도국장 선웅스님은 말씀하셨다. 이날 조계사에서는 벽걸이 달력 20,000부를 준비하여 조계사를 찾아 온 신도들과 일반인에게 나눠주었다. 법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웅전 앞마당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불자들과 일반인들로 가득했다. 팥죽을 먹으면 마음 속의 사악함도 깨끗이 없애고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날 만발식당에서 팥죽을 나눠준 서영기(만월행) 보살에 의하면 조계사 신도를 포함 약 7,500여 명이 공양을 했다고 한다. 공양시간은 늦은 4시까지 이어졌다. 불교대학에서는 팥죽을 갖고 인사동에 나가 주변 상인들에게 공양을 해주었다. 만발식당에서 봉사를 해 주신 불대생과 대승법회 40여 분과, 추운 거리로 나가 공양을 해준 불대생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이번 동짓날을 통해 봉사의 참의미는 무엇을 얻거나 누구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직접 행한다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21일 새벽 12시 30분, 만발식당에 앉아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팥이 삶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3년 동안 팥죽을 쒀왔다는 차성회 거사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방기정 : 매년 이렇게 팥죽 쑤는 일에 동참하고 계신 건가요? 차성회 : 재작년부터 올해로 3년째 동참하고 있는 거에요. 방 : 만발식당엔 자주 나오시나 봐요? 몇 주 전 일요법회 때도 뵌 것 같은데… 차 : 네. 현재 합창단에 속해 있는데, 혼성부나 거사 찬불가가 음성공양하러 올라가는 날 이외에는 만발식당에서 일을 돕죠. 방 : (새벽 12시 30분) 원래 팥죽은 이렇게 늦게 쑤는 건가요? 차 : 아직 팥죽 쑤는 단계가 아니에요. 팥죽을 쑤려면 크게 4단계가 있는데요. 1단계는 새알을 만들고, 팥죽을 불려야해요. 물론 새알을 만들기 전에는 찹쌀을 반죽해야하고요. 두번째 단계는 팥을 삶아 식히는 작업이죠. 그리고 세번째는 삶은 팥이 식으면 체에 내리는데 그 단계가 바로 앙금을 만드는 단계에요. 방 : 체에 내린다고요? 그냥 하면 안되나요? 차 : 그냥 하면 너무 껄끄러워서 못 먹어요. 앙금을 낸 뒤에 팥죽을 쑤는 거죠. 방 : 7가마를 하려면 굉장히 오래 걸리겠는데, 왜 미리 만들어 놓지 않나요? 차 : 미리 만들어 놓으면 쉬거든요. 방 : 이 겨울에 팥죽이 쉰다고요? 차 : 팥은 한번 삶으면 그 위가 굳으면서 안에 열기가 나가지 않아서 오래도록 따뜻하거든요. 따뜻할 때 앙금을 만들면 금방 쉬거든요. 방 : 특별히 늦게까지 남아서 봉사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 뒤에 뿌듯하다거나 아님 복을 얻고자 한다거나요. 차 : 뭐 깊은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뿌듯함 같은 것은 이미 지났고요. 이제는 그냥 합니다. 거기엔 내가 아니면 안된다라는 사명감도 있어요. 봉사하는 사람은 그냥 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하지 그 이유를 달지 않아요. 그냥 불도를 행한다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죠. 방 : 봉사를 하고 계신 분들 말고요. 실제로 봉사를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차 : 발심이 생겼으면 무엇을 바라지 말고 그냥 책임을 갖고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봉사를 하고 싶은 분들은 많은데, 용기가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 시작 했다면 재밌고 즐겁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차성회 거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팥죽을 쑤는 데 정성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새삼 깨달았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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