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된 삶, 거짓 없는 삶을 살아야
산두월괘운문병 (山頭月掛雲門餠) 산 머리에 달이 걸려 있으니 운문의 떡이요문외수류조주다 (門?水?趙州茶) 문 밖에 물이 흐르니 조주의 차로다.개중하자진삼매 (箇中何者眞三昧) 이날 가운데 어떤 것이 삼매요구월국화구월개 (九月菊花九月開) 구월 국화꽃은 구월에 피도다. 어떤 남자가 운문스님한테 가서 "불법의 적적대의(的的?義)가 무엇입니까" 하니까"떡이나 먹고 가게."이렇게 오늘같이 부처님 앞에 떡이 많이 있고 멀리서 왔으니 먼저 시장하니까 떡을 먹어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떡이 전혀 있지도 않고 주지도 않고 줄 생각도 없으면서 운문 스님한테 불법의 적적대의를 물었는데 "떡이나 먹고 가게." 어떤 불자가 주지스님한테 가서 불법의 대의를 물었는데, "차나 마시고 가게."어떤 얘기를 해도 "차나 마시게."주지스님은 누가 물어도 “차나 마시고 가게.”왜 운문스님은 있지도 않은 떡을 먹고 가라고 하느냐? 왜 주지스님은 차를 마시고 가라 했는가? 삼매에 들어-그중 어떤 것이 삼매이냐. 삼매는 바를 정, 닦을 수. 정수. 정정.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뒤바뀌지 않는 상태, 혼란을 가져오지 않는 상태- 삼매에 들으니 바로 구월 국화는 구월에 피더라. 국화이기 때문에 구월에 핀다. 우리는 이제 며칠 후면, 성도재일을 맞이합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21일 용맹정진해서 섣달 초여드레날 동쪽에서 떠오르는 샛별을 보고 정각을 이루었듯이, 깨달음의 길로 바로 가는 길은 참선이죠. 아까 말한 것들이 일종의 화두입니다.왜 그랬을까? 왜 떡을 먹고 가라고 했으며, 왜 차를 마시고 가라 했나?이 물건이 무엇이길래, 오늘이 무슨 날인데...한 물건이 마음을 내서 조계사 법당에 와서 앉아서 기도하고 법문 듣고. 오늘 무슨 날인데, 이렇게 오게 만드나...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모든 생물체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중에 사람은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생물체이기 때문에 육도중생이 전부가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업에 따라 지옥고를 받고 있고 출생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생물체는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셨는데, 주지스님한테 한 수행자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無!" 왜 그랬을까?이렇게 크게 의심하는 마음인 화두가 무려 일천칠백 가지인데, 대표적인 것이 “이 뭣꼬?”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선사스님들한테 화두를 받아서 참선수행을 받고 계신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화두가 있는데, 그것을 바로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를 이루게 됩니다.화두를 얻어 게으르지 않는 삶이 돼야겠습니다.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함께 정진하는 불자가 되어서 끊임없이 바로 부처의 길로 한발한발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선은 바로 부처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다.’ 참다운 실체인 본래 청청한 마음을 닦고, 청청하게 유지해서 잘 활용해서 수행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소승불교인 기초적인 수행법에 오정심관(五停心觀)이 있습니다. 5가지 머무르고 마음을 거기에 딱 머무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不?觀(부정관)을 관해라.부정하다는 생각 즉 우리가 날마다 목욕하고 머리 감고 발을 씻어서 그렇지 3일만 안 해도 엄청 지저분해집니다. 악취가 많이 나고, 몸 안이 고름 주머니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정관을 관해라’하는 것은 바로 육체를 부정하게 보고 탐욕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탐욕심은 물체보다 육체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잘 입히고 싶고 맛있는 것 많이 먹어서 건강을 유지하고 싶고... 육체에 대한 애착이 더 크거든요. 결국에는 바로 육체는 고통의 그릇이요 모든 재앙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이 넘치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많은 오류를 범하는 그런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 몸은 부정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몸은 적당히 관리하고 유지해야 하는데, 우리들은 너무 과잉해서 욕심을 냅니다. 항상 부정관을 관하면 탐욕심을 없게 만들어주는 그런 삶이 됩니다. 둘째는 慈?觀(자비관)을 관해라.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이 자비관입니다. 성질 내지 않는, 진심을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비스러운 말을 하면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측은한 마음, 애틋한 마음 가지고 용서하고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성질 팍팍 내면 상대를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대가 정말 잘못했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으니 저 업을 어떻게 받을까.’ 하는 그냥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면 성질을 내지 않고, 성질이 난다 해도 상대 입장에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구나,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을 잘 관찰해서 남에게 화를 내지 않고 항상 자비스럽게 대하는 수행하는 법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를 오래 믿고 불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불심 덕에 마음이 아주 포근하고 덕망있게 보이고 전혀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 항상 상대를 배려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비관을 관하면 성질을 제거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셋번째 因緣觀(인연관)을 관해라.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고,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만남의 연속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불교적인 삶은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인연법을 알게 되면 어리석은 생각을 제거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 모든 현상계가 서로 인연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식물을 봐도 지금 겨울이 되어서 낙엽이 다 졌지만, 나무와 잎에 헤어지는 그 순간이 가을이었고, 또 겨울 모진 바람 속에서 나뭇가지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또 인연이 되어 봄이 되어 나무에 물이 올라서 새 잎을 또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인연관이란 서로 의존관계임을 항상 관찰하게 되면 어리석은 생각을 없애고 서로 관계성과 인과법칙을 깨달아 지혜를 얻는 수행법입니다. 인생고락종심기(人生苦樂從心起)라고 했습니다. 행·불행도 성공과 실패도 바로 마음에 있고 바로 인연소치라는 생각, 너무너무 분하고 억울하면 그것을 끝까지 해결하려는 생각보다는 ‘그래 전생에 내가 가슴 아프게 했기 때문에 오늘 이런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는 철저하게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가지 않도록 합니다. 제대로 불교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않고 겉으로만 자비를 베풀고 좋은 일을 하면 막상 경계에 다다르면 억울해서 파헤치려고 발버둥치게 되는 것입다. 억울함을 밝히려고 하지 말라. 잘못이 상대에게 있다고 밝혀지게 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적당히 모든 것을 인연소치로 미루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전혀 산란하지 않는 마음. 그러나 우리는 번뇌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는 선방에서 많이 느낍니다. 그냥 끝없이 끝없이 번뇌망상하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 일어납니다. 너무너무 답답하고, 번뇌망상이, 아주 까마득한 것이, 옛날 것이 계속 드러납니다. 옛날에 해인사에 있을 때, 혜암 종정스님한테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죠."도대체 생각하지도 않던 번뇌망상이 왜 일어납니까?""번뇌망상을 누르려고 하지 말고 딱 화두만을 놓치지 말라.”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산란한 마음이 있으면 입으로 하는 것은 송불입니다. 염불이란 것이 생각염 부처불,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 있어야 합니다. 산란하면 번뇌망상 일어나니 數?觀(수식관)을 관하십시오. 단전호흡을 해서 숨을 쉬고 내쉬면서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거기에 몰두해서 모든 번뇌망상은 묻혀지게 됩니다. 번뇌망상 일어날 때 마음 안정시키는 방법은 숨 쉬는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번뇌망상이 일어나면 딱 앉아서 숫자를 세어보세요. 염불을 할 때도 염불을 빨리 하라고 하는 것은 딴 생각 가지지 않도록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마음 안에 그릇을 가지고 있는데 그릇이 차 있으면 계속 넘쳐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망상이 꽉 차여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가 처리해야 할 사건이 있는데 여기에 앉아 있으면 안 되는데...’ ‘집 안에 가스불을 잠겼나 안 잠겼나...’ 지금까지 있었던 번뇌망상 비우고 법문을 듣기 위해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다섯번째는 아견심. 자존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아만, '나'라는 존재, 아상. <금강경>에서 끊임없이 “아상을 버려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 때문에 교만한 생각, 남을 경멸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그럴 때는 분별관을 관하십시오. 인간의 구성체를 성질별로 분류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인간과 만물의 구성요소는 지수화풍공식, 여섯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성질로 되어 있는 것을 분류해서 관찰해 보면, 하나하나 관찰해보면 공이라고 하죠. 우리는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모든 것은 실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내가 본래 실체가 없는데 그렇게 자기라는 것을 내세우고 경멸하고 교만심을 가지고 아상을 내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래서 상을 내지 않는 것이 그런 삶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정심관. 항상 탐욕심과 어리석음과 성냄과 산란한 마음과 또 아만심. 그런 것들이 근본 번뇌라고 합니다. 이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여기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탐욕심을, ‘내 몸 자체가 부정한 것이다.’라는 것을 관하고 또 어리석은 성질은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감싸버리면 없어지는 것이고, 어리석은 생각은 인연관을 관하고 산란한 마음은 수식관으로, 아견심은 분별관을 관하세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항상 참선을 하는데, 우리는 번뇌망상이 두터워 마음이 흩어지면 꼭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화두만 붙잡으면 이것이 무엇이고 번뇌망상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도 관세음보살 부르면서 이쪽 쳐다보고 이쪽에 누가 염불 잘 하고 저쪽 쳐다보고... 그래서 염불할 때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게 해야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항상 우리는 다른 것에 끌려가지 않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본래 진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간화선을 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화두를 드는 참선수행을 해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방이 큰 곳이 있는 곳은 신도들이 초이레날 저녁에 철야 정진하고 그 날은 참선정진을 하는 절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꼭 간화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참선도 하지 못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삼매경에 보면 정말 우리가 화두를 들고 선정을 닦아서 10가지 이익된 삶이 이어집니다. 바로 깨달아서 부처를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10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참선 수행, 화두를 들고 정진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첫번째는 안주의식(安住儀式).몸이 안정되고 정화가 됩니다. 머무름이 의의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재가불자들도 정진하는 것 보면 걸음걸이, 몸가짐 하나하나가, 앉고 서는 것, 자세부터가 다릅니다. 스님들한테 오면 재가불자들이 어리둥절하는데 참선하시는 분들은 자세가 바릅니다. 우리가 좌선하는 자세로 살아가다보면 언제나 어디에서든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선하면 그 자체가 편안하게 앉는 의식이 의의에 어긋나지 않고 이익을 얻습니다. 두번째는 행자경계(行慈境界).마음이 정화된 관계로 저절로 행하는 일마다 자비심을 내는 경지를 갖게 됩니다. 정말 도를 깨달아 자비심이 저절로 충만해집니다. 세번째는 무번뇌(無煩?).참선을 하면 일체 번뇌가 들지 않게 됩니다. 화두를 드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말 부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10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수호제근(守護諸根)이라. 참선하면 모든 감관. 6가지 감관을 항상 수호해줍니다. 눈은 좋은 모습만 보게 하고, 귀는 좋은 얘기만 듣게 하고, 혀도 좋은 말만 하고, 코도 좋은 향내만 맡게 하고, 몸도 함부로 하지 않게 합니다. 항상 여섯 감관을 수호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외부 환경에 유혹하게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요즘 외부에 유혹에 떨어져 잘못 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카드입니다. 그냥 길거리에서 아무라도 카드 해줘서 카드 회사는 돈을 벌었지만 그 수십만 명이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앞뒤가 딱 막히고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취업도 못하고 막노동하려고 해도 안 되고...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딱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자살하지 않으면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무식희락(無食喜樂)이라. 참선수행하면 먹지 않아도 항상 배고픈지 모르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수선불공(修禪不空)이라. 공에 치우치지 않고 불성을 얻게 됩니다. 일곱 번째는 원리애욕(遠離愛慾). 참선을 하면 이성관의 애욕 경계도 떠나게 됩니다. 애착 때문에 너무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하면 쓸 자리, 앉을 자리 알아서 적당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덟번째는 해탈마견(解脫魔견). 번뇌 얽힘, 악마에 걸리지 않고 항상 벗어납니다.우리는 동지에 팥죽 공양하고 부처님께 공양하고 우리도 공양을 먹고 그러는데, 그것은 <벽암록>에 보면 “문 틈에 바람이 들어오니, 마음에 틈이 있기 때문에 마가 침입하는 것이다.” 올곧게 정말 불자로서 어긋나지 않고 자기 분수 알고 열심히 살아가면, 다 소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틈이 있기에 장애가 옵니다. 마장이 오는 것입니다. 오곡 중에 빨간 것이 팥이고 빨간 것이 태양을 상징하고 태양은 밝음을 상징하니까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은 삶을 살아가자 하는 원리로 팥죽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팥죽을 안 먹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마음에 틈이 없이 정말 바르게 살아가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안주불경(安住佛境). 무한한 지혜를 얻어 부처님 경계에 편히 머물게 됩니다.열번째 해탈성숙(解脫成熟). 참선은 바로 우리가 해탈해서, 생사를 해탈해서 성숙시키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번뇌를 뽑아 결국에 성불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바로 가는 길이 참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통해서 자기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염불 간경, 주력, 독경, 사경 등등 우리 불교 수행법은 너무너무 많아서 정말 수행하기 좋습니다. 사경도 하고. 허리 아프면 누워서도 염불할 수도 있고 얼마든지 우리는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잘못이 있다면 참회를 하고 뉘우치고 새로운 해는 더 밝은 삶을 살겠다 서원을 세우기 위해 동지, 성도재일 등등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그 전에도 항상 얘기했듯이 본위를 살게 되면 항상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삶, 죽음에 대한 공포나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연말이 되면 동지 때나 입춘 때 어디 절에 가면 부적이라는 것을 줍니다. 오늘 부적을 써 주겠습니다. 네 가지 부적을 써 주겠습니다. 네 가지 부적을 써 주겠으니 잘 받아 지니고, 돈도 없는데 여기서 받아가세요. 세상에 남녀노소 종교 초월해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 세상사람들 중 돈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돈도 잘못 쓰면 큰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기에 부정한 돈을 가져오면 안 됩니다. 요새 끌려가는 사람들 보니까 볼 만 하더라구요. 부적이 중요한 것이 돈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좋은 것인 줄 알면 잘 관리해야지 딴 짓하면 안 됩니다. 제물에 대한 욕심으로 지나친 과욕을 부리지 않고, 항상 적은 것에 감사하고 알뜰하게 살림을 살아가야 1년 내내 건강하고 풍요로워집니다. 그냥 예산도 없이 들어오는 것을 몽땅 쓰면 부도나게 되는 것이고 거덜나게 되는 것이니 그 분수를 잘 알아서 좋은 것이면서 잘 써야 합니다. 내년 1년 내내 돈을 잘 써야 합니다. 두번째 부적은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길입니다.요즘 코미디 프로 보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정말 즐거운 마음을 스스로가 일으키는 그런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상대를 칭찬하고 배려하고 해주면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즐거워합니다. 코미디 장난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항상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관계 유지하고 항상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그런 모습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세번째 부적은 무심해야 합니다.무심하지 않으면 많은 병을 앓게 됩니다. 그전에 제가 아는 어떤 신도가 스님 보필을 잘 하더라구요. 보필을 너무 잘 하니까 대웅전을 짓는데 그 스님이 인사말을 하면서 나는 그 신도님을 죽을 때까지 은혜를 잊지 못하겠다고 인사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삼 년도 안 돼서 원수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러냐. 한 것만큼 받으려고 스님 하는 것 하나하나 집착하고 간섭해서 엄청 바가지 긁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스님이 그 돈 몽땅 줘버렸다고 하더라구요. 완전히 멀어지고 원수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계속 무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무심해야 합니다. 스님들은 모든 신도들의 표상이고 만인의 애인이지 한 사람에게 집착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정말 무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가정에서도 현관문에 들어서면 남편이고 돌아서면 아무개라고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야지 그냥 집착하면 병이 생겨서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너무 지나친 관심과 지나친 사랑도 병이 됩니다. 무심하지 않으면 공부도 안 됩니다. 항상 우리가 무심할 줄 아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심이라는 부적. 내년에는 무심하십시오. 네번째, 가장 부처님께서 주장한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라.” 지혜를 얻는 그런 삶.동짓날, 입춘날, 나는 부적을 써주지 않습니다. 가끔 방편으로 사향으로 '옴마니반메훔' 써서 주기도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상하게 써 있는 것 가져가지 말고, “옴마니반메훔"을 많이 외우면 됩니다. 부적이다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돈을 잘 쓰는 지혜를 가지고 남을 칭찬하고 좋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무심한 마음을 가지고 지혜를 터득해 가지고 살아가면 갑신년 새해에는 더 건강하고 즐거운 한해가 될 것입니다. 정말 진실된 삶, 거짓 없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19일 서옹스님 영결식이 있는데, 서옹스님께서는 일생동안 '참사람' 운동을 하셨습니다. “참사람이 되어라.” 그냥 그대로 수행자, 그대로 부처님같이 가셨다. 뼈하고 가죽만 남기고 열반에 드셨는데, 그 스님이 말씀하신 것이 수처작주, '곳에 따라 주인이 되어라.' 집에 가면 주인, 거리에 가면 내가 주인, 친구들하고 만나면 내가 주인, 쓰레기 줍고, 질서 잘 지키고 환경오염 시키지 않고 우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진실되어야 합니다. 부처가 되기 전에 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절대 거짓된 삶을 살지 마십시오. 위선적으로 남을 속이고 과장된 삶, 말 함부로 하지 않고 이 시대 얼마가면 이 세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정말 후회되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나도 서옹스님같이 "어느 곳에 가서도 내가 주인이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진실된 삶을 살겠습니다." 하는 그런 서원을 세워주시길 바라면서 올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동지와 성도재일을 맞이하면서 오늘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항상 다섯 가지 정심관하고 적어도 깨닫지 못하더라도 10가지 공덕이 있으니 우리는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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