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돌아가자
불자 여러분 감사합니다.우리 조계사에 연중 공식 정기법회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앞으로 성도재일이나 재야의 종을 울리는 송년행사 이런 것들이 이틀에 걸쳐 남아있긴 합니다만 오늘이 올해의 송 년 정기 일요법회가 되는 날이 되겠습니다. 올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잠시 되짚어보고, 새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여기서 살펴보고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역시 올해도 일년을 지내놓고 지금 이 시점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국내외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주 여러 일들이 많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이때쯤이면 한 마디로 다사다난(太事太難)했던 해였다고 표현을 하지요. 다사다난(太事太難)했던 올 한해를 이제 한 3일을 남겨두고 있습니다.이 다사다난(太事太難)했던 올해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이러한 일들이 있지 않았나 하고 개인적으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첫번째, 우리 사회에 큰 일이 진행된 것은 새 정부의 출발입니다. 새 정부를 참여정부라 하는데 새 정부 출발이 올해 들어 가장 첫 번째로 큰 일이 진행되었습니다.그리고 통일분야에 있어서, 우리 민족은 매년 어떠한 일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남북통일 문제입니다. 남북관계가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많이 진전된 한 해가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몇 년 전부터 금강산 관광으로 민간인이 북한을 왕래할 수 있게되고, 남북관계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만, 올해는 특히 금강산 관광은 물론이고 북한 어느 지역이든지 우리 남한 국민들이 가고자 하면 갈 수 있는, 그러한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었습니다.그런데 남북간의 민간교류, 정부차원의 교류, 문화교류, 경제교류 등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관계가 진전된 반면에, 핵 문제에 있어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가 아주 악화되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가는 아주 좋지 않은 상황도 있었습니다.이 핵문제는 앞으로 통일에 있어서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처럼 남북통일 문제에 있어서 남북관계가 다방면으로 진전되고 있는 반면에, 북한 핵 문제는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생명과 평화를 위협하는 그러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 불교계가 무엇보다도 사회분야에 있어서 매진했던 분야가 있습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환경문제에 있어서 올해 큰 사건 몇 개가 있었습니다.새만금 사건, 불교계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천성산, 금정산, 북한산 등이 자연환경, 수행환경, 문화환경과 같이 공통적으로 불교계에 직접적 영향이 있었던 그러한 환경문제였습니다.천성산, 금정산, 북한산 환경문제와 불교계가 직접적 연관관계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 문제에 집중적으로 대응했고 얼마전에 일단락 했지만, 가슴속에 매우 아쉬운 일로서 남겨지면서 한해가 지나갔습니다.그리고 부안 핵 폐기물관리장 건설 문제가 우리사회를 아주 혼란스럽게 하고 환경문제와 더불어 정리가 덜된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것이 우리 사회문제로서 대두되었던 것입니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이해관계에 의해 정치적 투쟁이 난무하는 한해였다 하는 것입니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각 당간의 정치투쟁이 어느 해보다 극심한 해였고 또한 대선을 치르면서 선거자금 문제가 우리 사회의 비리의 온상으로 대두되면서 서민들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이러한 서민들의 정치의 무관심과 경제 혼란 등 여러 분야에 정치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의 비리가 있으면 우리사회전체를 혼란을 초래합니다.우리 사회경제나 우리 사회제반 문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국제관계에 있어서나 경제에 있어서 아주 불안한 사회현상을 조장하는 그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동산이 급등하고 실직자가 많이 양산되며, 또 신용불량자 몇 백만명이 육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안정적 생활기반 속에서 살수 없고 불안한 사회적 현상 속에서 실직자로 내몰리는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사회 분야를 보면 이라크 전쟁이 가장 큰 사건 이였습니다.앞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생명평화의 문제 일 것입니다. 앞으로의 문제 일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우리 인류 역사에 가장 크고, 가장 소중한 문제로 다뤄져 왔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정치, 경제 등이 생명평화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될 만큼, 앞으로 우리 인류사회에서 생명평화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생명평화의 문제를 앞두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인류 생명평화의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역행하는 현상, 인류의 역사가 한발 물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였다 할수 있습니다.이라크 전쟁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떠한 일이든 생명평화를 해치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뒤로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란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서 지금 현재 백만, 몇십만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명이 실종되고 죽었습니다. 엊그제 지진으로 인류가 피해보는 등의 자연적 재해가 올해는 많이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매미라는 태풍이 농산물, 인명 피해, 등 휩쓸고 지나가 많은 경제적 손실을 냈습니다.그리고 올해 무엇보다도 가장 컸던 인재는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입니다.이것은 앞으로도 방심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이러한 자연재해와 안전문제에 있어서 우리사회나 국제사회에 크나큰 사건이 있었던 한해였습니다. 불교계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큰 일은 없었습니다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환경문제에 집중해서 사회적 이슈로서 불교가 일정한 성과를 올리고 위상을 드높이는 그러한 한 해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큰 손실은 원로 지도급 스님들께서 올해에 여섯분이 열반에 드셨다는 것입니다. 종정을 역임했던 3분이 열반에 드셨고 원로위원이였던 스님 3분이나 열반에 드셨습니다. 여섯분의 열반은 불교계에 무엇보다도 큰 손실입니다. 스님 한분이 원로급 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립니다. 지도자로 계셨던 여섯분이 열반에 드셨습니다.그것이 불교계에 큰 손실로서 올 한해를 장식했다는 사실입니다.그리고 종단에 총무원장이 새 정부와 같은 시점에 종관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조계종 종단에 있어서 크나큰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사회에서나 국내 제반 여러 분야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면 새 정부 출발, 민족 통일문제에 있어서 남북관계가 경제문화, 민간교류 등 여러 제반여건과 관계진전, 북미 관계에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우리 전쟁직전 위급한 상황까지 몰고 갔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만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환경문제에 있어서 환경-종교단체와 정부가 대립각을 세우고 천성산, 금정산, 북한산 문제는 정부에서 강력하게 방침을 세웠습니다.우리 불교계에서는 계속적으로 대립하고 저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종정스님께서 나서서 일단 조정을 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심정이지만, 부안 핵폐기장 문제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고 환경문제와 정치문제, 혼란 국내 경제문제, 국외에 있어서도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상황이였습니다.부동산 급등문제와 신용불량자의 대량양산, 그리고 실직자 문제 등 서민 삶에 있어서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국제사회에 있어서 이라크 전쟁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국지적으로 있었고 안전문제에 있어서 자연재해는 매미, 그리고 이란의 지진, 최근에 일어나는 가장 큰 지진이 이란 지진 이였지만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있었습니다. 인재로서의 문제는 대구지하철 방화사건.불교계 내적으로는 불교 지도자 여섯분이 열반에 드신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큰 손실 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사회·종단·국제적인 문제들이 과연 우리 개인적 삶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물론 국제-사회-종단의 문제가 개인적인 삶의 문제와 둘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나의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일년간 정산해 보고 우리 스스로 각자 돌이켜 올 한해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개인적인 삶을 정리할 때 부처님의 제자답게 잘 살아왔는가. 기도하고 수행하고 또 양심적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왔는가.이러한 것들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참회하며 긍정적으로 정말 건강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계속적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삼야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생명평화의 문제가 앞으로 미래에 우리가 풀어야될 과제로 등장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생명평화, 나의 삶의 평화, 내 생명의 건강 그리고 우리 인류의 평화 또는 인간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평화 문제들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어떻게 이 문제를 풀 것이고 생명평화의 환경을 조성해 갈 것인지, 생명평화의 문제가 내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중심에 심고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삶이 전개되어야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생명평화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수행자로서 기도하는 자로서 불자로서 삶이 갖춰져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수행하면서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수행하면서 나의 업장을 소멸시키고 수행을 통해서 나를 맑히고, 기도를 통해 나의 삶의 소원들을 성취해 나가는 그러한 불자로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새로운 새해 우리 불자들이 갖춰야할 삶의 자세이고 삶의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불자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수행하고 기도하는 불자로서 삶의 태도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일단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올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생각을 함께 하면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첫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라는 것입니다.저도 제 사무실 책상 유리 밑에 '처음처럼' 이라고 하는 좌우명을 보면서 생활을 합니다.그 것이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늘 보면 그것이 머리속에 각인이 되고 어떠한 일들을 당해서 처음처럼 이라고 하는 문구가 생각나면 다시 마음을 가다듬게 되고 다시 출발하게 되고 출발했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생각하게 됩니다.그래서 오늘은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시오.’‘처음처럼’ 또는 우리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나오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초발심. 처음 발심했던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고 한다면 결코 깨달음은 멀지 않고 종국에는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 라는 법문입니다.기도할때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서원을 세우고 기도를 통해서 이루게 하려고 기도를 시작 합니다 . 기도를 하다가 처음 먹었던 소원이 약해진다든지, 중간에 기도를 그만 둘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결과가 초래 된 것입니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시오.’라는 것입니다.요즘 여러분들이 느끼시기에 '저 스님은 경전을 잘 안 읽고 인터넷만 많이 돌아다니는가 하는 생각이 많이 하실 것입니다. 저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려고 많이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보니까 경전에서 말하는 것을 담고 있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거기에서 발췌한 글을 여러분들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시오.'까치네는 오늘 아침에도 부부싸움을 벌였다.까치가 부부싸움 할 때 어떻게 싸우는가까치는 '까치까치' 하면서 싸웁니다.사흘이 멀다하고 일어나면 싸웁니다. 저녁이 되어 남편까치가 말했다."아무래도 우리 둥지에 불평귀신이 붙은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자주 싸울 수 있겠소?"아내 까치 또한 맞장구 쳤다.“맞아요, 걱정귀신, 불평귀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둥지에 오면 걱정, 불평이 그냥 쏟아지니.....”부부까치는 이튿날 산까치 도사를 찾아갔습니다.“처음에는 우리 둥지가 안락 둥지였습니다. 지금은 불평귀신, 걱정귀신이 붙은 것 같으니. 그것들을 쫓아낼 비결을 말씀 해 주십시오.”라고 산까치 도사에게 말했어요.산까치 도사가 말하길“그대들은 기쁨을 까치까치 하죠? 마찬가지로 불평도 까치까치 하죠? 기뻐도 까치까치, 불평도 까치까치, 이 불평과 기쁨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이지 다른 귀신이 시켜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것이지요. 다만 기쁨은 첫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 반면에 불평은 묵은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 둥지를 틀던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이와 같이 산까치 도사가 점쾌를 뽑아주었습니다.이것이 글 전체입니다. 쭉 읽어보면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그런 내용입니다.첫 마음에 행복했는데, 첫 번째 둥지는 부부까치가 서로 나뭇가지를 물고 둥지를 틀 때는 우리 둘이 깨가 쏟아지도록 잘 살자하는 마음으로 둥지를 열심히 지었습니다.거기서 살면서 행복했습니다. 아이들도 낳고... 그랬겠죠. 그런데 어느 날 불평이 하나둘 생기게 되었습니다.그 불평 때문에 서로 상대에게 신경질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는 상대도 나에게 불평을 얘기합니다. 서로 불평을 주고 받다보니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하루에 한번 하던 싸움이 아침저녁으로 계속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우는 소리가 '까치까치', 좋다는 소리도 '까치까치', 싸우는 소리도 입에서 나오고 좋다고 기뻐하는 소리도 입에서 나온다는 이런 얘기입니다.그런데 왜 입에서 불평이 나올까요?처음에 둥지를 틀 때는 사랑과 행복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중간에 이것이 왜 불평이 생겼는가? 또 뭐가 환경조건이 잘못되어서 불평한 것도 아니고 집이 부서진 것도 아니고 처음 조건과 지금 조건이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데 왜 불평이 생겼는가왜 불행한 상황이 생겼고 왜 불행해졌는가. 여러분 말씀 안 해도 잘 아시겠죠.‘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시오.’처음 마음은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에 둥지를 그렇게 짓고 둘이 살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가 불평이 생깁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일이 생겼을 까요?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다보니 첫 마음이 변한 것이죠. 변한 마음이 환경조건을 따라가지 않고 만족스럽지 못하니 서로 신경질 부리며 싸운 것입니다.계속 신경질을 부리면 부릴수록 불만족스럽고 계속 싸우고 감정이 생기고 터뜨리고 또 저녁에도 싸웁니다. 그래서 행복의 둥지가 아니라 불행의 둥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우리 인간의 삶도 까치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여러분들이 처음 조계사에 나올 때, 불교교육도 받고 불교대학도 나오고 수행도하고 기도도하고 열심히 다닙니다.성장하는 나의 모습, 진전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만족스럽고 기뻐합니다.어느날 가다보니 뭐가 보입니까?스님들이 보기 싫어요. 주지스님도 보기 싫고...조금 키가 컸으면 좋겠는데 키도 작지, 뭔가 나에게 조금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는데 관심도 안 가져주지. 또 아는 체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는 체도 안 해 주지. 다른 절에 가면 주지스님이 왔느냐..하면서 차도 주고 밥도 주고 방으로 안내해서 방석 주면서 앉으라 하는데 조계사 주지는 웃지도 안지, 칭찬도 안하고 본체만체하지....아무 것도 안 해주는 것이야. ‘절 여기밖에 없나? 다른 절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서 계속 불평을 하게 됩니다.그런다고 불평이 채워집니까? 안 채워집니다. 그 불평을 옆 사람에게 말하니 마찬가지예요. 서로 만나기만 하면 주지 욕만 하는 거예요. 차 마시면서 하고, 전화통화 하면서 하고, 기도하다가 쉬면서도 하고... 그렇죠?제가 다 듣고 있는데요.나중에 주지가 싫어지니 절이 싫어져. 절이 싫어지니 조계사가 별로고. 남의 절 같아.. 이렇게 발전하고 주지가 대꾸를 안 하니 나중에 법당을 바라보면서 법당이 뭐가 잘못되었고 어디가 쓰레기가 나오고 밥 먹는데.. 밥이 어쩌구...계속 불평이 찾아듭니다.이 조계사 곳곳에 불평 투성인거죠. 그런데 그것이 채워지나요? 안 채워지지...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겁니다.그 절 에 가보니 아는 체 하고 보니,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모두 똑같은 거예요.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들에게 다 해 주지 못하죠.일생을 절에 다니면서도 불평의 세계로 떨어지고 말아요..이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습니까.엊그제 있었던 일 중에 적합한 비유는 아닙니다만 대학원 1기생이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있었습니다.'대학원 졸업하면 대학원 졸업생이 할 수 있는 일이나 공간이나 대학원 졸업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지위, 자격조건, 사찰차원에서 배려해주고 이끌어 공간을 줘야하고 그러한 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입니다.초등학교 졸업한 사람하고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전문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과 따로따로 일거리가 주어져야죠.그래야만 그 사람이 사회에서 사찰에서 불교계에서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종단 제도적으로도 그런 것이 마련된 것이 없습니다.단위 사찰인 조계사에서는 종단의 제도를 따라야 하는 입장에서 마음대로 만들수도 없습니다.그래서 기다려 보자고 했는데 그렇다고 기다릴 수만 있느냐.기다리지만 말고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니 나름대로 수행의 파워업을 가져라. 대학원 졸업했으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으니, 신행 활동 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 찾아라. 우리 사찰에서도 찾겠다. 사찰차원에서 무책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마련해 주지 못하니까 이런 말이라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자신이 기도를 하다가 수행의 수준이 높아지면 역량이 커져간 만큼 자기가 실천적으로 실천을 할 수 있는 실천의 수행, 실천의 신행활동을 그 일거리를 자기 스스로가 마련하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스스로 찾지 못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지니 여러 가지가 보일 것 아닙니까. 보이니까 긍정적인 면은 보고 지나 가버리고 부정적인 것만 보면서 계속 불평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물론 부정적인 것을 보고 '그것을 고쳐라.' 하고 비판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만, 그 불평이 습관이 되고 업이 되어서, 불평만 하다가 나중에는 그 업이 저 세상에서 불평보살로 불평의 세계에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까치와 다를 바가 뭐가 있습니까?욕심을 부리려면 자기 욕심을 해소할 수 있는 자기 실천 프로그램을 찾아야되는 것이지, 뭔가를 누가 와서 채워주고, 환경이 그렇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까치가 자기 둥지에서 살다가 뭔가 욕심이 채워지고 새로운 환경을 원하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지 매일같이 그 둥지에서 싸우면 뭐합니까. 첫 마음으로 돌아가던지 새로운 환경으로 만들던지 해야 만이 그 불평이 극복이 되는 것이지요.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저 먼 신비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주변에 모래알처럼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모래알처럼 깔려있는 행복의 요소들을 전부 찾아볼 수 있는 눈, 느낄 수 있는 감각· 마음 이것을 갖추는 것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굉장히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지금 여러분들은 무슨 불평이 있는지 모르지만 불평이 있다면 법당이 추워서, 무릎이 시려서, 일단 이런 것들이 먼저 감각적으로 와닿으니까 불평으로 느끼시는지 모르겠습니다.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여기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방에서도 무릎이 쑤시고 아프고 참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일어나 앉고 싶어도 힘이 없어서 못 앉고, 힘이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병이 들어서, 늙어서, 또는 영양실조가 걸려서, 등등 어쨌든 무슨 이유가 됐던 일어나 앉아서 법문을 듣고 부처님을 바라볼 수 있고 부처님에게 절할 수 있고 부처님의 법당에 나올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들은 금강산을 보러 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그것도 좀더 하지 못해서 불평불만 하기보다 '이렇게 할 수 있으니 이만큼도 감사하다.' 이러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요즘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도 있어요.‘내 자식은 그 정도는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살려고 한다. 내가 옆에서 조금 받쳐주고, 기도해 줘야지.’이렇게 생각하지 않고,‘옆집 자식은 잘 나가는데 우리 아이는 왜 이러나.’하고 옆집 아이와 이렇게 비교하면 그 자식도 참 안 됐고 부모 입장인 나도 괴로운 것입니다.부인에게 있어서나 남편에 있어서 남편이 열심히 잘 살고자 노력을 한다면 부인이 받쳐주고 정말 위해주고 그러한 관계속에서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고, 고마움과 사랑이 또 행복을 느끼게 하고 이러한 주변에 행복의 요소가 모래알처럼 깔려있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것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매일 아침을 챙겨먹다보니 물론 저의 아침 식사를 출퇴근하시는 분이 챙겨주시긴 합니다만 가끔은 부족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가끔 뭐가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먹고 싶은 요리를 어떻게 합니까. 밖에 나가서 사먹을 수밖에 없죠. 사먹으러 가긴 싫죠. 부인이 옆에 있다면 해주겠지만 부인이 있습니까?옆에 부인이 있다면 해 주겠죠. 하루 3끼 밥상 차리는 보살님들 계시나요. 하루에 한번 밖에 안차리죠? 남편을 아침은 그냥 내 보내고 점심은 사먹고, 저녁은 먹고 들어오라고 하고, 이렇게 돈으로 때우는 것 아닙니까.보살님들이 남편 식사를 돈으로 때우니 행복도 사랑도 돈으로 사야 됩니다.자기 손으로 정성으로 사랑으로 밥상을 차려줘서 행복,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아침에 어디 가서 사 먹으라 하고, 저녁에는 어디가서 얻어먹고 오라하고 그래놓고 남편의 비자금은 다 찾으려고 하죠? 이렇게 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또 보살님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제가 그렇게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보살님들은 늘 밥상을 차리는데 맨날 똑같은 메뉴를 밥상에 올려 놓을려니 차리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먹는 사람은 마음에 맞는 것 먹고 가면 그만이지만 차리는 사람은 더 괴로운 것입니다. 그때 거사님들은 ‘오늘은 김치 볶음이 맛있다. 특별하게 나를 위해 김치 볶음을 했구나. 오늘은 김치 찌개 맛있었다. 어떻게 했는데 맛이 있나. 나를 생각하면서 했는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뭔가 한 마디씩 요리한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고, 요리하는 '사람이 맛있었구나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놓고 또 그렇게 했을 때 서로 정이 들고 사랑이 오고가면서 사랑이 두터워지고, 따뜻해지는 것 아닙니까?그런데 다섯 가지 반찬 중에 4가지는 맛있었는데 한 가지가 맛이 없고 짜다하고 그 한 가지 짠 것만 불평하면 다섯가지의 사랑이 싹이 틀 요소가 한가지 때문에 다섯가지의 사랑의 싹이 전부 잘라지는 것입니다.이처럼 말의 힘, 또 칭찬의 위력이 대단한 것입니다.처음에는 신혼 때는 그렇게 잘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이것저것 다 잘 해준다 하고 해놓고 결혼하고 나면 소홀해 지고, 부부싸움하고 나중에는 이혼한다고 법원까지 가서 도장을 찍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것도 까치의 삶과 똑같은 것입니다.처음에는 행복의 둥지를 틀려고 둥지를 만들고, 결혼을 하고, 처음에는 전월세집이라 하더라도 그 월세집 속에서 살아도 행복했는데. 나중에는 궁궐같은 아파트속에서 살아도 싸우고 삽니다.이럴 때는‘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시오.’이 처음의 마음이 위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엄마가 처음에 아이를 낳았을 때 처음 무슨 생각을 합니까?"건강하게만 살아다오." 이런 말을 합니다.못 생겨도 잘 생겨도 상관없다.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이런 생각밖에 없었을 겁니다.그런데 아이가 커서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이에게 뭔가 요구하게 됩니다.‘공부 잘 해라. 남에게 지지마라. 무엇을 하던 1등 해라.’ 하며 계속 요구가 많아집니다. 이처럼 사람이 변합니다. 변하지 말라. 이겁니다.처음 먹었던 마음, 순수한 마음, 진실한 마음 그 마음이 위대한 마음이예요.그 마음이 행복을 가꿀 수 있고 사랑을 가꿀 수 있고 그 위대한 마음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기도할 때 처음에 발원했던 그 심정, 서로가 결혼할 때 그 심정, 어머니가 애 낳을 때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나 바라보면서 들었던 바램. 물론 살아가면서 내용의 질이야 깨져 갈 수도 있지만 그 순수성을 잃지 말자고 계속 이어갈 때 행복하고 사랑하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새해에는 생각하던 것들이 연말에도 그 순수한 농도가 변하지 않고 계속 갔을 때 그해에 이루고자 하는 소원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새해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전반을 놓고 볼 때도 한 번 생각했던 순수하고 소중했던 생각을 잃어버리지 말고 성취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끌어안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새해 새로운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서혜정(조계사 보도부 법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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