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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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마음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라
신도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불교공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처음에 불교를 신앙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보다는 발원과 기도를 하려고 접근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아들 대학에 붙게 해 주세요... 남편 승진시켜 주세요.' 하고 발원기도를 하다가 다른 불자들이 자신과 다르게 하는 수행방법을 보고 불교의 수행에 뭔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경전공부하고 주력도하고 참선도 해보고 이렇게 여러가지 불교수행을 다 해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이유는 중생들을 깨닫게 하고자 출가하셨는데 그 이유를 근기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몇 달만에 어떤 사람은 며칠만에 어떤 사람은 몇 년만에 느끼기 시작합니다.
느끼기 시작하니까 그전에 몰랐을 때는 절에 다니는 것이 오히려 쉬웠는데 알고 나서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막막한 겁니다.
그래서 큰스님을 찾아가기도 하고 법사스님에게 지도 받기도 하고 또, 절에 오래 다닌 보살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불교에 접근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교에 접근하는 마음가짐을 두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부처님의 제자 범주안에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불교신자로서 공부를 하던 선업을 쌓던 어떤 것을 하든 이 두가지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두가지 중에 첫 번째가 마음의 고요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적멸심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옛날 선사들께서는 말씀 하셨는데 내 마음의 고요함을 스스로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은 반쪽 신자입니다.
입정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식이 시작될 때는 입정을 합니다.
지금 허리를 쭉 펴시고 고요하게 내 마음을 내가 컨트롤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조계사 법당에 기도하러 올 때 지금까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와서 앉아 있는지 자기 마음이 고요한지를 반추를 해 보십시오.
사시마지 다 올리고 법문을 듣겠다고 자리 앉아서 '주지스님이 법문을 한다는데 주지스님이 법문을 어떻게 하실까? 잘 하실 수 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법문을 한참 듣다가 재미없으면 그때부터 망상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안에 망념이 늘상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성철큰스님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한국국민들은 산을 산으로 볼 줄 모르고 물을 물로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저의 오른쪽 손을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손을 눈으로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제 손을 눈으로 보고계십니다.
그런데 손을 손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손으로 못 보겠습니까?
지금은 보라고 하니까 잡념도 않들고 딱 보이는데 '이것 보세요.'하고 계속 대고 있으면 '스님이 뭐 때문에 계속 보라고 할까?' 그러면서 망념하나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각자의 걱정에 망념 하나가 들어오면 다른 생각으로 두 개가 들어오고 세 개가 들어오고 네 개가 들어오고 이렇게 계속 들어오면 망념의 안개가 끼어서 이 손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손을 손으로 보지 못하고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고 물을 물로 보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그냥 여여(??)하게 보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 당시에 제석천들에게 꽃 공양을 받으시고 그 꽃중에 하나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니까 다른 대중들은 '꽃을 왜 드셨을까...' 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가섭존자는 그 모습을 보고 혼자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멍하게 있는 다른 제자들은 놔두고 "내 법을 가섭에게 부촉하노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염화미소(拈花微笑) 입니다.
자기 마음 안에 고요함을 가지려 하고 고요함을 얻으면 그 사람은 수행자이고 부처님 제자의 모습이 갖춰져 있는 겁니다.
독경을 하던 절을 하던 기도나 참선을 하던 어떤 경우든 상관없이 불자는 자기 마음에 고요함을 얻을 줄 알아야하고 가질 줄 알아야하고 가지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아침공양을 받으러 제자들과 똑같이 바루를 들고 마을로 탁발하러 내려가서 공양드시고 발을 씻고 법문하려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수보리존자가 "세존이시여, 희유하십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마을로 바루를 들고 탁발하여 공양을 드시고 발을 씻고 법문 하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것이 희유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참 드문 일이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바루를 들고 공양하러 다니면서 망념의 그림자를 계속 달고 다니는데 부처님은 여여하게 갔다가 여여하게 들어오셔서 여여히 공양을 드시는 겁니다.
그냥 여여하게 사는 분.
이런 분을 여래라고 하는 것입니다. 별스럽게 사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안에 헐떡거림이 있고 내 마음안에 욕심이 많고 사람과 사람을 비교를 하려고하면 그것은 여여한 마음도 아니고 고요한 마음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제자는 무슨 일이 있어서 덜컥 화가 나더라고 바로 툭 털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털어 낼 줄 모르면 망상의 그림자를 계속 달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계속 달고 다니는 삶을 부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무명의 중생'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중생의 업을 짓지 말라고 한 것이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인데 본인 스스로가 중생의 업을 싹 틔우고 있으면 그분은 이름만 조계사 축원문에 올라가 있는 것이지 부처님 제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여러분들이 고요한 마음을 늘 챙길 줄 알아야한 다는 말입니다.
범어사에 동산 큰스님 살아 계실 때 이야기입니다.
어느 스님이 동산 큰스님 모시고 살아 봐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범어사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사셨다고 합니다.
그 스님은 동산큰스님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는데 보름쯤 지났는데 동산스님께서 시자를 불렀습니다.
큰스님의 부름에 달려온 시자에게 큰스님께서 뺨을 때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무엇을 잘못해서 뺨을 때리나 하고 옆에서 보니 옷 손질을 잘못했다고 때렸는데 '옷 손질을 잘못 할 수도 있는데 뺨을 때리는가... 내가 사람을 잘못보고 왔는가보다..'이렇게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데 화두는 들리지 않고 시자가 옷 손질 잘못했다고 뺨을 때리는 분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한 자신이 용납이 않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산큰스님께서는 성질을 내도 다른 점이 있는데 본인은 큰스님 화내시는 것을 보고 화두도 않들리고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하며 속상해 하고 있는데 동산큰스님은 화를 한번 크게 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으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큰스님하고 본인하고 굉장히 다른 모습이더랍니다.
그때 동산스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의 고요를 찾지 못한 스님은 자신이 부끄러워 동산큰스님 돌아가실 때까지 범어사 선방에서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보세요.
내 스스로가 화를 내거나 내 스스로가 욕심을 채우려고 하거나 내 스스로가 시기질투의 그림자를 가지고 다니는 분들은 고요함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시던 절을 하시던 간경을 하시던 참선을 하던 간에 상관없이 전부다 그 모양의 큰 흐름은 고요함에 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염도염궁 무념처(念到念窮 無念處)라.
생각이 다하고 다해서 생각이 없는 곳 즉, 무념의 처소라는 곳은 굉장히 좋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화두를 드는 사람은 오직 화두만 탁마를 해야 하기 때문에 화두에 다른 망념이 오면 그것은 화두를 잘못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똑같이 절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절하는 마음에 소란스러움이 없으면 그 사람도 화두 드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몸뚱이는 절을 하고 있는데 마음은 무수한 망념의 알을 낳고 있으면 그 사람은 중생의 종자이며 적멸궁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시던 자기 마음안에 고요함을 가지려고 늘 애를 써야 합니다. 소란스러움에 익숙해져 있으면 고요함이 낯설게 느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야할 신행의 초점은 고요함을 얻기 위해 가야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큰 오차 없이 깨달음의 세계에 물결을 따라서 평탄하게 갈 수 있고 이것을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바람이 부는 대로 갈팡질팡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요한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 안에 보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옛날 중국에 유명한 당송 8대가 중에 한 분인 백락천이라는 분이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도지사 정도 되는 자사라는 자리에 20대의 젊은 나이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 당시 중국에서 선불교가 유행했는데 그 당시 중국에는 선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최고지성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그리 멀지 않은 사찰에 도림선사(741-824)라고 하는 이름난 고승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백락천이 내가 한번 직접 시험해 보리라 작정하고 선사가 머믈고 있다는 당시 항주의 진망산에 있는 도림선사를 수행원을 거느리고 찾아갔습니다
이 스님께서는 항상 산중의 나무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어서 마치 새의 둥지처럼 보였습니다.
자사가 "큰스님" 하고 불렀습니다.
"댁은 뉘시오?"
"제가 새로 부임한 자사 백락천 입니다."
큰스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받고는 스님이 다시 입정에 드시니까 그 젊은 자사가 부하관리들 보기가 민망했던 겁니다.
그래서 자사가 큰스님께 다시 말하기를 "오늘 큰스님께 법문을 듣고자 왔습니다. 근데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큰스님 연세도 많으신데 나무에 올라가 계셔서 혹시라도 깜박 졸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돌아 가실까 걱정이 되니 내려오셔서 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그래서 도림스님이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걱정은 하지말고 자네 걱정이나 하게."
자사가 다시 말하길
"큰스님 제가 걱정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젊은 나이에 자사가 되었으니 관운 복이 이 정도면 됐고 예쁜 처자식도 있고 유복하게 살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보시게 나는 여기서 깜박 졸다가 이 나무에서 떨어지면 뼈나 하나 부러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보기에 자네는 떨어지면 인간세계에서 저 지옥 끝 화탕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네." 그랬답니다.
자사가 도림선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듯해서 '이분이 고승인가보다.' 싶어서 다시 묻기를 "스님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악막작 중선봉행(諸?莫作 衆善?行)
악한 일을 짓지 말고 무릇 모든 선한 일을 봉행하라.
이 한마디만 하고 다시 입정에 들어가시는 겁니다.
"그런 것쯤은 세 살 먹은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하고 말하니, 선사께서는 "세 살 먹은 아이들이 알고 있더라도 팔십 노인도 그것을 행(行)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거사 그 이야기를 듣고 도림선사를 평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멀리 떠나 있어도 서한을 보내면서까지 공부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마음안에 보살심이 아주 중요하게 자리 잡혀 있어야 합니다.
적멸지궁에 들어오는 그 마음은 본인 과거의 업장소멸을 빨리 풀 수도 있고 천천히 풀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 고요함으로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업장을 소멸시키면서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는가하면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짓는 것은 마치 법당의 대들보-기둥과 같아서 연화대 깨달음의 세계에 가는데 순탄하게 갈수 있게 선근공덕을 쌓게 해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공부하는데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려서 공부가 잘 않됩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것이 어찌되었든 선근공덕이 적은 분들이라서 그러는 경우가 있고 그 마음을 뒤집어 보면 고요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가 고요함을 잊어버리고 전생에서 딱은 선근공덕이 부족하다 보니까 하는 일마다 자꾸 마장이 생기고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마음 안에 보살심 즉,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많은 것들에 나만 채우려고 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이 부처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똑같이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이 뭐라고 하더라도 그냥 한번 씨익 웃어주세요
그 웃음을 보고 저 사람 실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내 마음안에 적선의 마음 선을 짓는 착한 마음을 여러분들이 한번도 좋고 두 번도 좋고 마음으로 할 수도 있고 몸으로도 할 수도 있고 무엇이든 할 수 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이 법당에서 옆 사람이 모르는 것을 잘 가르쳐 주는 것도 보살심입니다.
자기 마음안에 작은 것 큰 것 상관없이 늘상 보살심을 자꾸 내면 반대적으로 적멸궁에 들어올 수 있는 것들이 들어갑니다.
늘 보살심을 내니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시기질투 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선근 공덕을 쌓고 한편으로는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마음을 잘 가지고 계시면 그분은 어느 곳에 있던 부처님의 제자이고 이 두가지 마음을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반쪽 제자이고, 두 개다 놓아 버리고 잊어버리고 있으면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항상 고요하게 가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또 하나는 보살심을 가지고 계시면 주변의 모든 것이 장엄 적멸궁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조계사 법당이 공사 중이어서 시끄럽고 어지러워도 여러분 마음이 고요하고 보살심을 가지고 보면 연화장 세계가 될 것이요.
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면 아무리 법당문을 잠그고 조용히 해도 이 법당 안은 화탕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마음을 잘 간직하시면서 공부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요.
-정리: 서혜정| 조계사 보도부 법문녹취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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