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대중공양, 생된장의 담박한 맛은 부처님 말씀
7월 22일 조계사 불자 80여명은 포교국장 석연스님을 모시고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백양사로 선원대중공양을 다녀왔다. 수행 정진하시는 납자들을 위해 깨달음으로 가시는 길 조금이라도 편히 해드렸으면 하는 바램과 한편으론 속세에서 찌든 마음 수행하시는 맑은 기운 덕에 좀 맑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먼 길을 나섰다. 아기자기한 산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장성호수를 끼고 백양사로 가는 길은 언제 가보아도 절경이다. 돌고 돌아가는 길 새록새록 피어나는 기억들. 거리에 간판, 길가에 음식점, 높이 달린 이정표 하나도 다 정겹고 정겨웠다. 눈은 동그래지고 가슴은 알 수 없는 설레임으로 일렁이기 시작한다. 미소는 저절로 입가에 번지고 일주문을 지나 백양사에 도착하였다. 대웅전과 극락전, 각 전각에 들러 참배한다. 대웅전 뒤로 올 곧이 솟아오른 봉우리는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 포근하다. 대웅전의 기와지붕과 어울려 한편의 그림이 되었고, 그 모습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다가 사시예불을 맞이한다. 백양사 주지 성오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백양사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을 다 갖춘 종합대학성격의 총림으로 특히 선원 중에서도 북에는 금강산 마하연선원, 남에는 운문선원을 제일로 친다고 한다. 명성대로 현 조계종 종정이신 법전스님, 역대 종정이신 해암스님, 서옹스님, 만암스님과 초대 교정 박하연스님들이 전부 백양사 출신 스님들이라고 하니 ‘종정집안’ 이란 별칭과 ‘제일의 모범사찰’ 이라는 주지스님의 찬사가 결코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주지스님께서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세 최고의 선지식이신 큰스님들께서 법당 이 자리에서 수행하셨고, 그 기가 법당 안에 서려있으니 그 기를 지니고 가면 운이 있고 좋은 일이 있을 것’ 이라고 말씀 하신다. 어린시절 백양사에 살적에 호랑이를 많이 보고 자랐는데, 2M 거리에서 백호를 만난 적도 있었다는 스님의 말씀에 큰스님들의 이야기와 함께 옛 시절 옛 이야기에 푹 빠진 맛도 오랜만에 신선했다. 최근에 일제 초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학원이 백양사에 있었다는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산중학교에서 경전 말고도 측량과, 산술과, 기술과, 민족사를 강의하였고, 민족사 강의로 인해 퇴교 조치를 받고, 묘연암으로 옮겨 조선어 강의를 하다 또 폐교되었다는 내용으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새로운 소식도 전해주셨다. 이것이 공인받을 수 있다면 불교계에서 민족과 교육을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소중한 보배가 될 것이다. (선원은 인생의 근본적 문제인 생사일대사 인연을 해결하기 위해 참구하는 곳이다.) 사찰에서 맞이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공해에 찌들지 않은 자연식품, 사찰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맛있는 공양시간의 환상적인 메뉴는 ‘고추와 생된장’이었다. 산속에서 자란 연한 아삭아삭한 고추와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담박한 된장 그대로의 맛, 부처님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런 맛이 아닐까? 그 맛에 매료되어 집에 가면 후회할 것이라며 한 분당 적어도 5개의 고추, 많이 드신 분은 10개 넘게 건강한 자연의 맛을 몸속에 담아왔다. (팔정도를 상징하기 위해 팔각 8층으로 조성된 석탑이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운문암 회주스님의 안내로 이즈음 계절에 가장 아름다움을 뽐내는 연꽃을 볼 수 있었다. 연밭에는 백련의 군집 속에서 가끔 가끔 눈에 띄는 자련이 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더하고 있었다. 연한 붉은 빛의 연꽃은 마치 동양화 한 폭의 주인공처럼 은은한 투톤의 색으로 꽃잎을 물들이고 있었다. 연꽃처럼 고귀한 마음을 담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섰다. 버스에서 새벽예불을 보고, 백양사에서 사시예불, 또 올라오는 길 버스에서 2시 예불... 하루에 예불을 6번 모시기도 했다는 석연스님의 집전으로 예불은 시작되고 천수다라니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 어느새 음악처럼 들리고, 온 종일 부처님의 품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은 소중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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