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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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불사회향
불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두 달 넘게 기간동안 가사불사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동참, 지도, 관리해주시는 스님들과 신도회, 자원봉사 등 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조계사 와서 두 번째 가사불사에 동참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두 번째까지 가사불사에 모든 불사의 지혜를 지도해주신 성호스님께 특별히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가사불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 가사를 짓는데, 커피도 사드리고 컵라면이라도 사드려야 하는데 사달라고 얘기할 때까지 사드리지 못 하구. 아직까지 못 사드렸습니다.
어제 마지막 밤 10시까지 만드시고 계시더라구요. 이 밤이 지나면 안 되겠다하고 그 동안 무관심해왔던 관심을 표명하면서 커피를 사드릴까요 하니까 커피를 마실 기회가 없으니까 돈으로 달라고 하더라구요. 돈도 아직 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모이시면 제가 맛있는 것을 사드리겠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자원봉사에 240명이 동참을 했습니다. 50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동참하셨습니다.
신도회에서도 동참을 하셨고 종무원들도 스님들도 관심을 갖고 지도해주시던 편수스님들께서도 지도해주셨습니다. 다 계산을 해보면 300명이 넘습니다. 정성스럽게 가사를 해주셔서 회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자원봉사님들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가사는 '법복'이라는 옷입니다. '옷' 하면 옷이 의미하는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 몸을 가리기 위한 기능을 하는 옷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옷을 보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오늘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신도님께서 오셨습니다.
어제 한복 안 입었던 똑같은 사람인데 오늘 가사법회에 한복 예쁘게 차리고 왔을 때 다릅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왔다' 이렇게 표현했지만 어쨌든 다르게 보입니다.
정성스럽게 잘 입고 오신 의상을 보면 제 마음도 정성스러워지고 깨끗해집니다.
그렇게 옷 입고 오신 분은 부처님께 실컷 기도드릴 것입니다.
또한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말 한마디 대하더라도 마음의 자세가 다를 것입니다.
옷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부러 특별할 때 정성스럽게 차리는 옷도 있지만 평상시 옷차림은 그 사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검소하고 깨끗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나치게 화려하게 차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검소하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옷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보면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바지를 똑바로 입어야 하는데 30∼40도 틀어서 입는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이 불편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입고 다닙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옷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 그 사람의 생활의 모습,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인격까지 얘기할 것 없지만 그 사람의 마음, 수준, 삶에 대한 태도, 마음의 청청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거의 옷에 신경을 다 쓰고 다니면서 사람도 있고 검소하게 똑바로 깨끗하게 똑바로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소비적이고 검소하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생활의 태도가 깨끗해지고 올바르게 갖추게 되고 또 아주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신경을 쓰는 사람을 보면 보기에도 제 마음이 불편하고 뭔가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물론 특별한 행사 연예인들은 예외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 마음의 청청도 어떤 것인지, 심지어는 가정에 관해서도 옷을 통해서 가정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옷은 자기 삶의 내용과 마음, 삶의 태도를 밖으로 표현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옷이 사람을 규정할 때도 있고 사람이 옷을 규정할 때도 있습니다.
옷이 사람을 잘못 제재를 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수행자의 옷입니다.
승복, 가사를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고깃집, 술집, 룸살롱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못 들어갑니다.
설사 특별히 기도할 것이 있다고 들어갔다가 오더라도 뭔가 오해할 수 있습니다.
괜히 사람들의 오해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 수행, 자기 삶의 태도를 옷이 똑바로 서서 그러한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스님들의 장삼, 가사법복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스님들의 법복입니다.
법화경 얘기 중에 법사는 여러 가지를 갖추어야 하는데 법사는 아무데나 함부로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권위를 갖추기보다는 법을 소중하게 하는 마음에서 대중으로 하여금 존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법사는 여래 옷을 입어야 한다. 여래옷이 뭐냐? 단순히 가사를 여래옷이라 하지 않고 여래 옷이란 부처님께서 가르치는 가르침에 대한 태도, 수행자로서 태도, 법사수행자가 수행하는 실천해야 하는 내용을 자기 옷으로 삼아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계를 수행하는 것으로 그것을 옷으로 삼는다. 오계를 잘 지키고 오계로서 잘 지켜야합니다. 오계로서 자기의 잘못된 모습을 가리고 수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보시로서 옷을 삼는다. 정진에서 옷을 삼는다. 지혜로서 옷을 삼는다.
이것이 여래옷이고 부처님의 옷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 육바라밀이나 오계를 수행의 가르침을 삼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옷을 입어도 화려하거나 천하지도 않는다. 수행의 태도, 내용, 덕목으로서 자기 삶의 덕목으로 삼는다면 껍데기 옷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눈빛, 인상, 풍기는 여러 가지 느낌이 범상치 않는다.
옷을 잘 입어서 옷에 시선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거룩한 모습에 대중들에게 시선이 가는 것이고 대중들로 하여금 감화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번에 가사불사를 하는 것은 이러한 형식적인 옷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여래 옷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여래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여래 옷을 입기 위한 여래 세계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큰 공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동참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공덕을 짓고 많은 수행자들이 여래 옷을 입고 여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큰 공덕입니다.
여러분들 장학사업에 동참해보셨죠.
그 장학금 받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요?
세상에 그것보다 희망적이고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가사불사에 동참하고 가사를 짓고 가사를 입고 수행하면서 훌륭하신 스님들이 수행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역시 장학금 받고 열심히 공부해 사법고시 합격해서 판검사가 배출되었을 때 그 사람들이 고마움을 표현했을 때 의미가 있고 즐거움이 가치가 있습니다.
출가 스님들이 법을 깨달아 열심히 수행하여 성장하고 깨달았을 때 그 어떠한 것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공덕을 지어서 우리 스스로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고 평화가 있고 개인의 삶에 만족하고 건강하고 청청한 삶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이 행복의 뜻이다. 이것이 극락세계 다가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사에 대한 우리 제가 불자들이 입어야 하는 옷이 있고 출가자들이 입어야 하는 옷이 있는데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는 여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래옷은 오계를 잘 지키면서 오계에 가치를 두고 삶의 지침으로 삼고 오계를 통해서 세상을 넓히고 오계를 통해 우리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꾸려가는 것입니다. 여래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의 큰 공덕입니다.
오계에다 세 가지를 더하여 그 중 하나는 넓고 높은 편상에 앉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형과 꽃과 노리개로 자기 몸을 치장하지 마라.
이것은 자기 몸을 향으로 꽃으로 악세사리로 반지, 목고리, 귀고리, 다이아몬드로 발목까지 치장하고 이것이 일반화되니까 이제는 배꼽까지 치장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치장하고 배꼽을 내놓는 것이 유행이 된 것 입니다. 감기 안 걸려요?
나는 배에 이불을 덮지 않으면 배탈이 걸리는데 왜 그리 배꼽에 치장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런 식으로 자기 몸에 치장하고 향을 바르고 있습니다. 내가 며칠 전에 어디 갔다가 왔는데요
거기서 한국 여자들이 향수 파는 집 가게에서 한꺼번에 둘러싸여 있는데 한 보따리를 골라서 누굴 줘야하고 하면서 사가지고 가더라구요. 향기나게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때로 몰려가면서 가게를 통째로 쓸어버리는 것이 한국사람들이다.
가게 사람들이 일본사람이냐 한국사람이냐 물어봅니다. 이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악세사리, 향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사람의 관심이 여래 옷을 입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런 곳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입니다. 좀더 깊이 아는 사람은 한국사람은 한강 개발 했을 때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값이 뛰니까 '졸부'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돈을 쓸 줄 모르고 가치를 모르고 삶에 대한 행복의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두 가지유형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삶의 제 1 목표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그 돈을 가지고 막 쓰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 번째가 가무를 즐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위의 세 가지를 갖추고 충족해야 만이 우리의 삶이 편리해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넓고 높은 편상에 앉지 말라는 것은 권위적인 생활을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권력과 자만에 빠지는 이런 권위적인 생활을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한 제일에 한달 18일을 팔관제를 지켰습니다. 그냥 절에 나오는 시간 6일간 나와서 산에서부터 미리 절에서부터 계를 지키고 회항했습니다. 한 달에 여섯 번 이 계를 지켰습니다. 6번 절에 나와서 지켰습니다.
요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주, 더 열심히 절에 나와 계를 잘 지켜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일요일 매번 나오는 사람이 1000명 신도 중 과연 몇인가요? 20%도 안 됩니다. 그만큼 옛날 선조보다는 재가 불자들이 수행이 훨씬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처럼 재가불자들도 수행을 중심으로 수행생활을 하고 그 수행이 여래 옷을 입는 것이고 부처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육바라밀의 계율에 우리 생활법에 큰 공덕을 쌓고 공덕을 씻고 이렇게 해서 여래 옷을 입고 부처님 가르침 받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수행하는 정말 청청한 삶을 살수 있는 그런 계기를 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러한 큰 공덕 불사에 많이 동참해주셨고 자원봉사해주시고 신도국의 종무원들 모든 분들게 오늘 이렇게 가사불사를 회항할 수 있도록 관리해주셔서 감사하는 마음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가사불사 있을 때마다 같이 힘을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다 이루어집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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