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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

  • 입력 2003.12.08
  • 수정 2025.01.15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자리가 있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각각 자기 자리와 위치를 소유하고 지키는 것이다. 세상에 제자리를 소유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얼굴을 보라. 눈은 눈의 자리, 코는 코의 자리, 입은 입의 자리가 있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를 보라.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가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가 있고, 아들은 아들의 자리가 있고, 딸은 딸의 자리가 있다. 선생은 선생의 자리, 학생은 학생의 자리, 지도자는 지도자의 자리, 국민은 국민의 자리, 공무원은 공무원의 자리, 저마다 제자리가 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제자리에서 제가 맡은 역할과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제자리에 있고 제자리를 지키고 제자리에 맞는 행동과 생활을 해야 한다. 세상에 자리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사람은 자리를 놓고 볼 때 세 종류로 나뉘어 진다.

 

자리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이다. 있으나마나한 존재, 있으나마나한 사람. 그것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가치와 존재의 의미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둘째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그 자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필요없는 사람이 있고,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그는 자리를 욕되고 하고, 자리를 망치는 사람이다. 그는 남의 지탄을 받고, 사람들의 멸시 대상이 된다. 우리는 그런 인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 셋째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유용한 존재다.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그는 자리를 빛나게 하고 자리를 영광스럽게 한다. 그는 남들의 존경을 받고 세인의 칭송의 대상이 된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세번째에 속하시죠? 없어서는 안 될 자리에 앉아 계시죠? 아버지 자리, 어머니 자리, 자식의 자리로서 없어서는 안 될 자리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 자식은 자식의 역할, 어머니는 어머니의 역할,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 지도자의 역할, 스승의 역할, 학생의 역할, 농부의 역할, 기업인의 역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다른 자리로 옮겨가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다른 자리에 옮겨가서 또 다른 자리에 앉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땅 위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다.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번영하고, 국가는 부강해진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리는 인생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자리는 첫째로 질서의 원리이다. 자리는 둘째로 미의 원리이다. 자리는 끝으로 번영과 행복의 원리이다.

 

질서란 무엇인가? 모든 사물이 저마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질서의 덕이 실현된다. 질서는 하나의 선이다. 제자리를 알고, 제자리를 지켜라. 이것은 인간의 사회 생활의 기본원리의 하나이다. 사물이 제자리에서 이탈할 때 혼란과 무질서의 악이 생긴다. 질서의 감각, 질서의 준수는 건전한 사회생활의 필수 조건이다. 질서는 존재의 제1 법칙이다."

 

이것은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쉬운데, 이런 자리에 앉아서 내가 그런 역할을 다하는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주부로서 역할, 또는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는냐 하는 것을 자기 스스로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할을 잘못하면 가정의 행복과 평화가 깨어지게 됩니다.

 

엊그제 어느 분이 상담을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상당히 고통스러우신 상황이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 아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는 속이 타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어떠한 조건 없이 줍니다. 그런데 자식은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락이라도 해 주면 마음이 놓이고 조치를 취할텐데 연락도 없습니다. 아들이 나가서 들어오지 않으니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탑니다. 아마 심장이 시커먼 숯덩어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식이 제자리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역으로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자식의 성격 형성 또한 엉망이 됩니다. 가정의 평화, 행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가정의 중심이, 자리가 흔들려 버리고 자리가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당연히 기둥이 무너지면 집이 흔들려 버리는 것입니다. 집이 무너지게 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하고, 죽을 수밖에 없고,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우리 자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 자리는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과 형제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내가 내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조계사 주지가 주지 자리에 앉아서 개망나니 짓을 하고 돌아다니면 여러분들이 가만 두겠습니까? 아마도 하루도 못 보고 쫓아낼 것입니다.

 

어제 대만에 다녀온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만에 불광사라는 절이 있는데, 교육 사업, 포교 사업 등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속한 사람들의 규모와 열성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통일교가 세계적인 확산을 해서 대단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스님 말씀으로는 통일교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 불교의 현 상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님들의 태도, 생활, 역할, 재가불자들의 신행 생활, 또는 불교에 대한 애정이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대만 불광사와 같은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의 수준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불교의 규모나 세를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부처님의 법을 확산시켜 놓으면 그 사회가 그만큼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회가 평화적이고 안정된 사회로 갈 수 있는 역할을 우리 불자들이 언제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국 불교는 참 조건이 좋습니다. 산에 가면 절이 있고, 또 시중에 나와도 절이 있고, 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종교 인구의 반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와 천주교 합해 놓은 것만큼 불교가 많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4백만, 불교는 천백만입니다. 기독교가 지금 현재 8백만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와 천주교 합친 것인 천이백만입니다. 천주교의 사회적 역할보다 천백만을 가지고 있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더 약합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물론 그 첫번째 책임은 먼저 스님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불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무얼 하자고 하면 안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하지 않습니다. 환경, 통일, 사회, 복지, 교육 등 여러가지 사업을 벌려놓고 하자고 해도, 동참을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동참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평상시에 동조를 해주고 애정을 가져주고, 물질적으로 동참하고, 그렇게 동참을 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일체 귀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깨끗해지고 건강해지고, 통일이 되겠습니까? 불자들이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종교, 전통적인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불교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우리 민족의 문제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제일 귀찮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 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자리를 앉아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있으나마나한 것 아닙니까? 이제 청소년들에게 그런 영향이 가게 되고, 청소년들이 집을 뛰쳐나가게 되고, 청소년들이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 전통적인 가치의식을 갖지 못하고 자꾸 밖으로 뛰쳐나가고 물량주의, 물신주의 또는 쾌락주의로만 발달을 하게 됩니다. 우리 어른들이 제자리에서 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리 사회에 기여를 하지 못하니 청소들이 무엇을 배울 것이 있겠습니까? 배울 것이 없어서 혼란이 오고, 청소년들이 방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왜 꼭 대학을 나와야만 합니까? 대학도 왜 꼭 서울대만 나와야 합니까? 자리에도 눈높이가 있습니다. 오직 자기 위에만 있는 자리에만 올라가려고 합니다. 자리를 자기의 눈 아래로, 눈을 자기 아래로 내려놓으면 편안해 집니다. 눈을 위에만 올려놓고, 눈높이를 위에만 올려놓고 있습니다. 자리의 높이를 눈 아래로 조절해서 앉을 수 있는 그런 마음도 한번 가져 봐야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오늘 충분히 말씀을 드리지는 못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제목만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제자리에 없을 때 가장 아름답지 못합니다. 꽃이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고, 사람이 제자리에 있을 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 역할을 못할 때는 아무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존재 이유, 존재 가치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가기에는 너무나도 아깝지 않습니까? 이 소중한 인간으로 태어난 인연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고, 그리고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서 가는 사람으로 살다가 가야지, 이 세계를 아무 의미가 없이 존재의 가치가 없이 그냥 살다가 죽는다면 그야말로 슬픈 일입니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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