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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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행사] 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 두번째
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수행법 대강좌 결제)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 ~ 두 번째 계율 수행법
강좌 : 계율 수행법(혜능스님 ~ 해인 율원장)
12월 9일 화요일, 두 번째의 강의가 있는 날이다. 첫 강좌 시에 말했듯이 시작 전에 원만 회향의 마음을 다지는 108배 정진으로 시작됐다. 식순에 의해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자세를 가다듬는 입정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 강좌를 맡아주신 혜능스님(해인총림율원 율원장)에게 합장 삼배를 하고 좋은 법문을 청하는 청법가를 부르는 것으로 스님께 예를 갖췄다. 스님은 교재에 적혀 있는 난우게(難遇偈)를 읊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別解脫經得聞 經於無量俱胝劫
讀誦受持亦?是 ?說行者更難遇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계율은 우리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며 신업은 구업에서 지은 악업에서 해탈케 한다는 뜻으로 계는 무량억겁을 지나도 읽고 외우지 못할 정도로 어려우며 계를 지키는 것은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화두참구는 생사해탈에 근본이 있습니다. 현실적 요구는 작은 바람이며 욕심이나 원일 수 있으나 그보다 더 큰 의미의 수행은 해탈열반의 궁극적 목적에 있습니다. 봄은 그저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고 받아들이자는 의미로서 그 뜻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이 무엇인지 정의되어야 합니다.”
“바바나란 범어로서 수행, 수도의 뜻이며 수도란 변화시키고 바꾸는 작업입니다. 부정한 업을 맑게, 어두움은 밝게, 거칠고 산만한 업은 섬세하고 고요하게 바꾸는 것, 이것이 수도이고 수행입니다. 더 큰 세상은 자신이 바뀌고 업이 닦이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수행은 없습니다. 8만4천 가지 소원을 축약해 보면 첫째로는 아름다워지는 서원이고, 둘째로는 편안해지고자 할 때에, 셋째로는 건강해지고자 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넷째로는 오래 사는 것입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네 가지 소원을 이루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는 간단합니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예절바른 생활을 하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입니다. 이렇듯 계율과 수행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듣고, 읽고, 수지하고, 행하고, 외우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행이란 발로, 온 몸으로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해탈열반을 얻지 못하면 끝없이 윤회 속에 떠돌아야 하며 인과의 화살은 캄캄한 밤중에도 정확하게 과녁을 맞힌다고 했습니다. 연기법과 인과에 대하여 철저히 알아야 하며 선인선과, 악인악과, 자업자득, 인과응보들을 모른다고 윤회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연기법에서는 무지와 무명 때문에 연기하고 윤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여한 진리이며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법화경 등 많은 경전에서는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만큼 불교에서는 믿음을 중요시하며 이는 곧 신심입니다. 신심은 겉치레가 아닌, 반야봉독이나 108배가 신심이 아닌 진정한 믿음이 신심입니다. 인과에 대한 철저한 확신이 신심이며 수기란 우리 존재에 대한 자각, 사명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러한 확신을 가진 이는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짓습니다. 내 인생, 내 업은 유산의 상속이 아니라 다겁생래로 지어온 내 것입니다. 그러리라 굳게 확신하고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기적이나 요행은 바라지 말아야 하며 기적은 절대 없습니다. 불교는 모든 일을 권능자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모든 것은 우리들의 업으로 되는 것입니다.”
“숙명, 우연, 기적, 요행은 절대자나 권능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선행을 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청정해 집니다. 환경의 오염은 신의 저주가 아닌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생겨나 우리들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악행을 하면서 해탈 열반을 구하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계란 계위입지, 정검난심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갈무리하는 것이 계입니다. 계를 지키면 저절로 선정을 얻게 되며 반야바라밀이란 금강의 지혜를 말하며 금강석과 같이 단단한 지혜를 이르는 말입니다.
반야심경을 외운다고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선정에서 얻어지고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계율수행이 모든 수행의 근본이라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계는 범어로 비나야, 시라, 바라제목차라고 하며 수계식 때 계체가 생기는데 참석해야만 계체가 생기고 계를 지킨다는 것은 자타가 모두 편안하고 아름다워지며 이익이 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계를 잘 지킨다 함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곧 계법을 가벼이하고 소홀히 하는 마음이 자연히 감소하게 되어 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수계식에서 행하였던 연비는 업을 참회하는 과정이며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러한 자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재가자들이 수계를 받고 나서 그 계를 배워야 합니다. 받은 계에 대한 공부를 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다음이 지계의 태도입니다. 지계를 지키는 태도로서 계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 참회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계율이란 것은 부처님보다도 더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그리하여 청정해지고 지키지 못하면 악업과 함께 청정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수행과 노력, 정진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청정하게 하지 못합니다.“라는 말씀으로 계율 수행에 관한 강좌를 하셨다. 끝으로 일장 혜능스님의 자비발원문을 다 함께 독송하며 두 번째 강의를 마쳤다.
『계를 지키는 사람은 얻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계를 깨뜨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는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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