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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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행사] 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 세번째
강좌 시간에 앞서 청년회에서 출석 체크 및 책 교부와 발간에 관한 짧은 공지사항으로 시작된 2003년 12월 16일의 화요일은 참회 수행법에 대한 법문을 듣는 날이다. 오늘은 나주 불회사의 정연스님(불회사 주지)을 청하여 합장 삼배로서 예를 갖추고 강좌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공경합니다. 먼저 도반의 마음으로 함께 정진하게 되어 반갑고 후미진 산골짜기의 산승을 이렇게 불러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서두의 말씀을 꺼내셨다.
처음에 스님은 거절을 하셨다고 한다. 속가의 아버님이 돌아가시어 경황이 없었을 뿐 더러 어제는 아버님의 49재를 지냈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동지기도 입재를 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아서였다고 한다. 더불어 웃으시면서 오늘은 스님의 생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우리 재가자들이 더 뜻 깊은 날에 법문을 듣게 된 것 같다.
“거절의 더 큰 이유는 오늘날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인 불신에 있습니다. 불신은 왜 생기나? 사회 지도자들이 말은 잘 하는데 스스로의 실천이 없습니다. 보여 지는 불교를 위해서 97년 이후에는 밖으로 나와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직접 와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면 믿게 되고, 그렇게 믿으면 편안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법회를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절 집과의 인연은 중1 때 학교를 절에서 다니게 되면서부터 가까워졌으며, 절집에 들어와 강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불교 교육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교육도량에 대한 일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단의 3대 사업에는 교육, 포교, 역경이 있습니다. 이 중 교육이 가장 핵심이 되는 사업이지요. 교육이 잘 되면 역경과 포교가 자연히 될 테니 말입니다. 서울의 승가대학 재학시절, 기숙사를 짓기 위하여 직책을 맡았을 때 명예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무언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욕심을 먼저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금강대라는 토굴을 지어 3년간 업장을 녹이는 참회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참회를 하기 위한 준거가 필요하여 그 준거를 바로 십악참회로 하게 되었습니다. 참이 반성의 뜻이라면 그 뒤의 회는 그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반성하고 더 낳은 생활을 다짐하는 것이 참회 발원하는 것입니다. 성찰과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더 편안함을 다짐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수행이며, 수행자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 모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불회사의 주지로 들어간 것은 훌륭한 교육의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하는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으며 그 차선책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수련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자력 신앙입니다. 대참회란 생사해탈을 할 수 있으므로 대참회라고 합니다. 한글로 독경을 하게 된 것은 한글세대를 위한 것이니, 독경을 하며 그 의미를 생각하고 그것을 관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에 오온이 공함을 봄으로 고통에서 벗어난다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색이란, 이곳에 있는 탁자, 운각, 교탁, 마루 등을 하나하나 분별하여 보는 것입니다. 공이란 이것을 나무로 보는 것입니다. 사물을 하나하나 분별하여 보면 색의 분상에서 보는 것이며, 그것의 본질을 보면 공의 분상에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핵심이자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분별함으로서 고통이 생기며 분별을 여윌 때 고통이 소멸됩니다. 부처님의 빛은 자비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보님은 지혜의 빛이라고 생각하고 승가의 빛은 화합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악참회 중 중죄의 중은 중(重)함만을 나타낸 것이 아니고, 전생, 또 그 전생의 모든 살생, 투도 등 중첩하여 지은 죄를 참회하는 것입니다. 무연자비란 조건 없는 자비입니다. 내 남편, 내 자식, 내 친구 등 나,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중생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대자대비이며 무연의 자비입니다. 자비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이웃의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 자비입니다. 곧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유정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을 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베푸는 것이며 보시하는 것입니다. 두 말이란 두 가지 뜻이 있는데'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말을 옮기지 않은 것을 말하는 두 말이요, 또 하나의 두 말은 불화가 있을 때에 화합 키시는 말을 하는 좋은 뜻의 두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욕심이 작은 사람이 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가장 부자는 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라며 가장 좋은 참회는 십악참회를 하면서 절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스님과 재가자 모두가 발원문을 함께 독송 후 이어서 강좌를 들었다. 십악참회는 신 · 구 · 의 삼업을 참회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구업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지만 천수경 맨 앞부분에도 정구업진언부터 나오듯이 우리들이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남에게 한 말이 상처를 주지 않았나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과 한 번 더 생각하여 말을 하되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말을 하라 하셨다.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의업이며 힘들수록 긍정적 사고를 하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고를 해야 합니다. 출가자의 목적은 성불이 아니라 중생구제에 있으며 이는 제 얘기가 아니라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법을 설하여 중생구제를 함으로서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스님들도 그와 같이 중생을 구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수단이 목적화되어 그로 인한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제게는 3가지 서원이 있는데 첫째로는 수단이 목적화된 교단의 문제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둘째로는 죽는 그 날까지 수행하는 것이요, 셋째로는 훌륭한 불교 학자가 나올 수 있도록 후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회사의 관음대참회 수련원의 특징은 개별 면담에 있습니다. 이로써 신도들의 어려움을 간파하여 공감의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죄란 본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무상이란 허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조 500년간 가장 왜곡된 말입니다. 무상이란 긍정적, 능동적, 진취적, 적극적인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이 곧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현상을 무상으로 보고, 무아로 보며 그 자체가 곧 적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선은 첫째로 집중하여야 하며 둘째로 알아차림 속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돈오점수란, 수행시 나타나는 경계를 인정하며 정진해 가는 것이고, 돈오돈수란 수행시 경계가 나타나면 이를 무시하고 동중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 만을 잣대로 삼는 것입니다. 육신이 힘들 때에 쉬어야 하듯이 정신이 힘들 때에도 마음을 고요케 함으로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심, 즉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업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로 인하여 업식이 정화되는 것이며 이는 곧 참회로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행하지 않고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상참회란 우리의 본능적 행과 감각과 마음의 작용이 다 무상하다고 체득하는 것입니다."
무상참회의 강의가 끝난 후 스님과 함께 실참을 실행했다. 우선 좌선의 자세를 잡고 '무상'이라는 단어를 배에 붙여 오를 때에는 무상이라는 단어를, 내려갈 때에는 '타'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것을 잠깐이나마 함께 해 보았고, 오르고 내리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 곧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각참회이다.
"인간은 두 가지 힘으로 살아가는데 하나는 업력이고 또 하나는 의지력입니다. 주어지는 대로 받는 것은 업력에 의한 삶이며,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은 의지력입니다. 의지력은 다시 단순 의지력과 원력으로 나누어지며 단순 의지력은 선과 악이 분별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원력은 종교적 의미의 삶으로서 악이 정화되고 선만 드러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가 하는 발원 입니다."
스님의 강좌가 끝나고 재가자들의 질의 및 답변이 오고 갔다. 여느 날보다 열성적인 질문으로 극락전이 더욱 더 알고자 하는 열기로 가득 찬 하루였다.
『죄는 본래 성품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멸할 때 죄(罪 ) 또한 사라진다.
죄도 사라지고 마음도 사라져 둘 다 공(空)하면 이것의 이름이 참다운 참회가 된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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