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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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이기고 깨달으신 부처님
오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전야로서 철야정진하는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해서는 6년이고, 나이로 보면 30년 정도 되고, 과거 생까지 본다면 몇 생을 통해서 선행과 수행을 닦아서 공덕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내일 아침 새벽에 샛별을 보시고 도를 깨달으신 날입니다. 성도를 이루시기 전인 오늘 저녁은 수행의 절정으로서 깨달음의 최정점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많은 생을 통해서나, 부처님의 한 생, 또는 출가 이후 고행 기간을 통해서 많은 수행력과 선행을 쌓고 쌓아서 그것이 무르익었을 때에 하나의 깨달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불이고 깨달음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거나 아무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무 것도 쌓인 것 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 깨달음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날인 바로 오늘 우리는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성도전야 철야정진법회를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닫기 위한 수행의 과정은 경전에 나와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기 전이니까 싯달타 태자라고 해야 맞겠네요. 싯달타 태자가 수행을 통해서 깨닫기까지 많은 마구니와 싸움을 하게 됩니다. 마구니의 왕은 마왕 파순인데 부처님이 깨닫게 되면 마왕의 왕국이 무너지게 되니까 마왕은 싯달타 태자가 깨닫지 못하게 여러 방법으로 방해하게 됩니다.
그 첫째 방법은 마왕의 딸들을 관능적으로 꾸며서 싯달타 태자에게 보내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싯달타 태자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끌리거나 흩어지지 않으니 파순의 딸들은 포기하고 맙니다.
마왕은 관능적 유혹으로 방해가 안되니까 물리력으로 방해하기 위해 마구니들을 보내서 싯달타 태자에게 화살을 쏜다든지 나찰의 형상으로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역시 미동도 않고 물리적 방해도 극복하고 수행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물리력도 싯달타 태자에게 먹혀들지 않자 마왕은 직접 나서서 감언이설로 수행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싯달타 태자여, 당신은 왜 당신에게 아무 이익도 없는 고행을 하느냐. 이것은 고통일 뿐이다. 고통으로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고 왕궁으로 돌아가 왕의 지위에 올라가라. 그래서 세상의 명예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품으로서 공덕을 쌓는 것이 현실적 이익이 있는 삶이다. 당신은 이렇게 고행하면 병이 들어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이렇게 구슬립니다.
그러나 싯달타 태자는 거기에도 동요하지 않고 마왕에게 얘기합니다.
"마왕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말한 그런 공덕도 이익도 아니다. 명예도 아니고 왕의 권력도 아니다. 그런 말은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이야기해라. 나에게는 소용 없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고 정진할 힘이 있고 지혜가 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수행하는 나에게 죽음을 말하는가. 생명이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으며 나는 죽음을 두려워않는다. 바람이 강물을 마르게 하듯 고행을 계속하면 살과 피는 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안정되어 있다. 내 정신의 청정함을 보라. 나는 세상에 대해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다. 유익하게 살기만을 바란들 무엇을 하겠느냐. 나는 죽음을 두려워 않고 용감하게 너와 결전을 하리라"
나는 세속적 욕망의 삶을 살지 않겠다. 육신은 언젠가는 죽게되니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가치 있는 삶이다. 나는 용감한 군인처럼 죽음을 두려워않으며 생사를 초월한 이 삶을 위해서 너희 마구니 군대와 싸우리라. 싯달태 태자의 말은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그리고는 계속 마왕 파순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대의 제1 군대는 애욕이며,
제2 군대는 불만과 혐오이며
제3 군대는 굶주림, 기갈이며
제4 군대는 집착이다.
그리고 그대의 제5 군대는 의지의 나약함이고, 피로와 수면이며
제6 군대는 불안과 공포심이고
제7 군대는 의혹이며
제8 군대는 위선과 고집, 그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이며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모든 사람이 너의 군사력과 대항해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나는 지혜로서 너희 군사를 질그릇 깨뜨리듯이 분쇄할 것이다. 장차 나는 생사를 해탈하는 이 가르침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여 그들을 탐욕이 없는 평화롭고 안정된 삶으로 인도하리라."
이렇게 마왕 파순에게 이야기하고 마구니 군대와 결전을 할 것을 선언합니다.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장애 요인으로 등장하는 마구니를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보면 밖에 있는 마구니가 아니라 모두 우리 마음속의 마구니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길에 밖에서 쳐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 욕망, 욕심, 그릇된 생각, 의심, 비굴한 마음, 이런 것들이 장애로 등장하는 것을 마구니의 군대라고 규정했습니다.
밖에서 쳐들어오는 마구니는 극복하기 쉽습니다. 우리 모두가 대항해 싸워 이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구니는 치고 들어와 있는지, 우리 삶에 장애로 등장했는지도 의식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 삶을 계속 방해합니다. 그래서 마구니랑 싸워 이기고도 힘들고 싸우기 위한 태세를 갖추기도 힘들어 늘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싯달타 태자가 수행에 장애가 되는 마구니를 이처럼 규정했다는 것은 매우 솔직하고 현실적인 자기 심정을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싯달타 태자가 태어나서 왕자 신분으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왕자로서의 삶의 습성과 수준이 있게 됩니다. 그것을 하루 아침에 끊고 출가했을 때 오는 고통은 과거 왕자로서의 삶을 습성이 가장 큰 장애로 등장했으리라 봅니다.
부드러운 음식과 따뜻한 환경,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살았던 그런 모든 생활을 버리고 홀홀 단신으로 출가해서 집도 없이 설산에서 생활했습니다. 얼마나 춥겠습니까? 왕궁에 있을 때는 배불리 먹었는데 출가해서는 탁발해야하고 굶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고, 잠자리도 거칠고, 짐승한테 위협받는 그런 불편하고 고통스런 생활을 하면서 왕궁 생활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태자는 출가의 고통스런 생활을 버리고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났을 겁니다. 만약에 싯달타 태자가 과거 생활 습성을 못 이겨서 집으로 돌아갔다면 깨달음을 이루지 못 했을 겁니다. 싯달타 태자는 그런 것을 전부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애욕의 대상은 많습니다. 이성과 물건도 애욕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삶의 습성도 애욕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2의 군대는 불만이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을 참으며 수행을 해야만 깨닫는 것인가? 이런 것이 불만입니다. 목마름과 굶주림 고통은 생리적 현상입니다. 생리적, 심리적 현상을 모두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습성에 의한 것도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 여러분도 의지가 냐약해 중간에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절을 하다가 다리가 아파서 못하겠다해서 돌아가는 사람, 졸려서 돌아가는 사람, 재미 없어서 돌아가는 사람, 또는 뭔가 불만족스러워서 돌아가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나름대로 자기 의지의 나약함과 수행의 공덕에 대한 불확실성, 이런 것들이 마음속에 치고 들어왔을 때 거기에 굴복해서 적당히 편리함과 편의적으로 오늘 철야정진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싯달타 태자가 그런 마음에 갈등이 올 때마다 집에 갔다면 수십 번 돌아갔을 겁니다.
싯달타 태자는 하루 저녁이 아니라 6년이라는 긴 세월을 많은 불만족과 불편함들이 존재했지만 확신을 가졌습니다. 바로 싯달타 태자가 마구니의 왕에게 '너와 나는 전쟁을 해서 너의 군대를 질그릇을 깨드리듯이 다 깨뜨리겠다' 라는 것은 내 마음속의 번뇌 망상과 갈등, 편의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 잘못된 습성, 이런 것들을 전부 고치고 깨부수고 나의 의지대로 내 삶을 살겠다 라고 하는 다짐인 것입니다.
제8의 군대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하는 비굴한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는 말이 있는데, 백천만겁을 지난다해도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 힘들고, 불법에서도 정법을 만나기 힘듭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 어려운 가운데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났습니다. 싯달타 태자, 즉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한 철야정진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큰 행복입니까.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고 번뇌와 망상, 마음의 갈등에 의해 주저앉고 굴복을 합니다. 정말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처럼 비굴한 일이 없습니다. 이걸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그 과정에 수행의 방해자가 있는 것입니다. 밖에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적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런 적들을 일상적 신행 생활과 수행 속에서 극복해 내는 것이 깨닫는 것이라 생각하시고 오늘 끝까지 철야 기도정진을 동참하기를 부탁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개인적인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이루고 저 높은 천상의 세계에서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중생의 고통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고 이끌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것은 부처님의 큰 자비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부처님께서는 단지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모습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깨달은 이후의 깨달음의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까지도 보여주십니다.
오늘 끝까지 정진해서 그런 부처님의 자비로운 은혜의 마음을 십분의 일이라도 느껴보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장훈(조계사 보도국 법문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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