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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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여섯번째
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수행법 대강좌 결제)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 ~ 여섯번째
염불 수행법 (1부 강의) ~ 정목스님(춘천 정토원 원장)
불기 2548년 새해를 맞아 처음 열리게 되는 여섯 번째 강의인 염불 수행법에 관한 강좌를 정목스님(춘천 정토원 원장)을 모시고 2회에 걸쳐서 듣게 된다.
반야심경 봉독과 삼귀의, 스님에게 예를 갖추는 합장 반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갔다. 스님은 크고 높은 사자후와 같은 목소리로 개경게를 독송하시며 새해의 법문을 여셨다.
정토선을 여는 게송
이 마음은 자성(自?) 청정심(??心)이 아니다.
이 마음은 번뇌(煩?)의 마음이 아니다.
이 마음은 불지(佛智)를 믿는 신심(信心)이다.
신심(信心)이 곧 불성(佛?)이다.
“염불은 참선보다 더 혁명적인 사고의 수행입니다. 임종시에 정신을 잃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열 번을 염하게 되면 극락정토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또한 자기 수행을 하는 사람은 남의 수행을 비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주장이 강하다 보면 남의 것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는 믿음과 이해가 깊어져야 하며 그러다 보면 어느새 깨달음이 다가옵니다. 믿음 역시 진실해야 합니다.
정토신앙이 무엇인지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염불은 당당하게,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해야 합니다. ‘마음이 바로 부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는 믿었을 때에만 불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토사상에서는 3배의 의미를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보리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염불을 해도 안 되며 없는 것을 구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발심하여 연기적 세계관을 통찰하여 정각을 성취하는 종교이니 부처님의 지혜를 알아야 성불을 할 수 있습니다. 발심은 불교의 핵심이므로 발심이 제대로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칭명염불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발심을 모르면 불교에 대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대승과 소승의 차이는 바로 발심에 있습니다. 소승에서도 발심을 하면 윤회하지 않습니다. 진짜 발심은 순리 발심이며 순리 발심이란 연기적 세계관을 통찰하는 것을 말합니다.“라며 모든 현상은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닌 것을 알고 발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깨달음이란 공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이치를 아는 것이며 끊고 닦을 것이 있다고 믿고 발심하여 닦는 것, 이것이 바로 순리발심입니다. 이렇게 되면 관상염불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출가는 발심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스님들이 여러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발심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계는 발심하여 깨달은 경지이며, 중계는 발심을 할 수 있는 위치이며 하계는 발심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하계의 중생을 위한 칭명염불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참선도 믿음을 근본으로 하며 어떠한 종교이든지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주력이나 염불 역시 자비광명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십해초발심주란 것이 있는데 이는 10계의 범부를 벗어나 11계의 초지보살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서 이는 법신을 증진하는 단계이며 불교 전체를 볼 수 있는 신통의 단계입니다. 그러니 법신이란 초지보살이라 하며 이는 곧 부처의 경지입니다. 정토문에서는 정토의 왕생을 의미합니다. 정정 즉, 불교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염불은 배에서 나와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목에서 염불을 하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배에서 나온다는 것은 신심이 생겨서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정토를 염원하여 아미타불을 부르고 정토의 경계를 관(觀)하는 유념유상의 수행으로 근기에 따라 칭명염불과 관상염불을 실천하여 다 함께 안심(安心)을 얻어 무상정진도를 이루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안심을 주는 것이란 윤회가 되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이 깨달음입니다. 믿음이라는 염불의 바탕 위에서 선지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적 세계관은 연기입니다. 세속의 세계관을 벗어나 결정적 믿음을 갖는 결정심신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길이 있지만 결국 한 곳으로 통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이는 자기 자신과 역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하며 제도를 하여 길을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정토신앙은 일체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며 이는 곧 연기와 통하고 연결됩니다. 자비에 바탕을 두고 자비광명의 은혜를 입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수행 자체는 단순해야 합니다. 물러나지 않고 정진해야 하고 정정치에 가면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여자가 없는 것을 말하고 장애자가 없으며 삼악도가 없습니다. 이는 분별을 하지 않고 같은 대상으로 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염불에는 장애가 없습니다. 신앙은 빛이므로 어둠이 오지 않습니다. 극락은 절대로 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이 곳이 극락입니다. 불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종교로서 정토를 생각하고 염하며 관(觀)하는 것입니다.
원효대사께서는 참선은 무념무상이지만, 정토는 유념유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을 하므로 생각할 상이 있는 겁니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입니다. 염불에서는 아미타불이 누구냐고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아미타불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염불은 마음에 두는 도이며 마음이란 안에도, 밖에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내포함을 말합니다. 정토는 내 마음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에 닦을 필요가 없으며 닦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그 방편을 일러 주는 것입니다.
중생을 위하여 빛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정토신앙을 참구해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불자는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 합니다. 삼세여래일체동이라 했으니 결국 혼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미타불의 원력은 영원히 부처님 법을 설하기 위하여 탄생되어진 것입니다. 형상으로만 믿지 말고 염불로서 믿어야 합니다. 칭명염불은 성불의 타력이며 공관(空觀)이 확립되지 않은 범부의 수행으로 바쁜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최상의 선행인 염불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산선(散善)이라 부르고, 염불신앙이 깊어지면 관상염불을 관(觀)할 수 있으며 고요한 가운데 착함을 행하기 때문에 정선이라 하여 일심으로 가는 길이며 참선, 주력, 염불도 일심으로 가게 되는 길입니다. 일심의 바다 근처에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듭니다.“라는 말씀으로 1부를 마치고 다음주에는 염불하는 법과 염불시 갖추어야 하는 마음자세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다.
늦은 시간까지 열변을 토하신 스님께서는 차 시간이 늦었다 하시면서 다음주를 기약하며 총총히 서둘러서 발길을 돌리셨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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