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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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나의 수행은 반야바라밀이네
법요집 183쪽 포살의식문을 펴고 무릎 끓고 합장해 주십시오.
"예경삼보"부터 합송으로 하시겠습니다.
<예경삼보(禮敬三寶)>
일심정례 시방삼세 일체제불
一心頂禮 十方三世 一切諸佛
일심정례 시방삼세 일체존법
一心頂禮 十方三世 一切尊法
일심정례 시방삼세 일체성승
一心頂禮 十方三世 一切聖僧
<헌향계(?香偈)>
원차묘향운 변만시방계 일일제불토 무량향장엄
願此?香雲 滿十方界 一一諸佛土 無量香莊嚴
구족보살도 성취여래향 나무향운개보살마하살
具足菩薩道 成就?來香 南無香雲盖菩薩摩訶薩
바라건데 미묘한 이 향운이 시방삼세 모든 국토 두루 하여서
한량 없는 향 장엄 이룩하옵고 위 없는 여래 공양 이뤄지이다.
<개경게(開經偈)>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無上甚渙微?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聞見得受持 願解?來眞實義
위 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 백 천 만겁 힘들었지만 만나니
내 이제 보고 듣고 받아지니니 부처님에 진실한 뜻 알아지리다.
나무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南無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보살계(菩薩戒) 서문>
모든 불자들은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들어라. 내가 지금 모든 부처님의 큰 계의 서를 설하고자 하노라. 대중은 모여서 잠잠히 듣고서 스스로 죄가 있거든 마땅히 참회하라. 참회하면 안락하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죄가 더욱 깊어지리라. 죄가 없는 이는 잠자코 있으라. 잠잠하면 마땅히 대중이 청정한 줄 아느니라. 여러 우바새와 우바이들은 자세히 들어라. 부처님께서 열반 하신 후 마땅히 바라제목차(波羅提目叉)를 존경하여야 하나니 바라제목차는 곧 이 계이니라. 이 계를 수지 하는 이는,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만남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음과 같으며, 병든 이가 쾌차해짐을 얻음과 같으며, 갇혔던 이가 감옥을 벗어남과 같으며, 멀리 갔던 이가 집에 돌아옴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이 계는 곧 대중들의 큰 스승이라. 만약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더 계실지라도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기 어렵고 선한 마음도 내기는 더욱 어려운지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되, "작은 죄를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하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적으나 점점 큰 그릇에 찬다"하시니, 찰나 동안에 지은 죄로 무간지옥(無間地?)에 떨어짐이라.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을 지나도 다시 받기 어렵느니라. 젊은 시절은 머무르지 아니함이 마치 달리는 말과 같고, 사람의 목숨은 무상함이 폭포수보다 빠르니라. 오늘은 비록 살아 있으나 내일을 또한 보증하기 어렵느니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하고, 삼가 게으른 생각에 잠겨 방일(放逸)하지 말 것이니, 밤이라도 마음을 거두어 삼보(三寶)를 생각하여 헛되이 지내지 말지어다. 한갓 부질없이 세월을 보내면 후세에 깊이 후회하게 되리라. 대중들은 각각 일심으로 삼가 이 계를 의지하여 여법하게 수행할지니라.
<계목(戒目)>
1. 불자여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결코 산 목숨을 죽이지 말지라. 자비심으로 중생을 사랑하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을 다하여 지킬지니라.
2. 불자여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결코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지니. 널리 보시를 행하여 복덕을 지어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을 다하여 지킬지니라.
3. 불자여 항상 청정한 행을 행하라. 결코 사음을 행하지 말지니라. 몸과 마음에 청명한 행을 닦아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을 다하여 지킬지니라.
4. 불자여 진실을 말하고 신뢰를 지킬지니라. 결코 거짓말을 하지 말지니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을 다하여 지킬지니라.
5. 불자여 정념을 지키고 결코 술을 마셔 취하지 말지니. 언제나 밝고 통달한 지혜를 호지하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을 다하여 지킬지니라.
6. 불자여 삼보와 조상님과 부모님과 가족과 이웃을 항상 예경 존중하고 한량없는 공덕을 전파하며 고난에 빠진 이를 만나면 기도하고 도울지니라.
7. 불자여 이 국토는 그대의 보살도 실천의 땅임을 생각하고 작은 소망을 기원할 때도 나라와 세계의 평화 번영과 중생의 성숙을 함께 기원할 지니라.
8. 불자여 그대의 생명이 불성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음을 생각하고 항상 큰 희망과 밝은 미래와 성공을 꿈꾸며 매사에 정성을 기울여 최선을 다할지니라.
9. 불자여 승가의 질서를 깨뜨리지 말라. 승가는 삼보에 귀의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이 땅에 불국정토 실현을 위한 신앙 공동체이니 항상 청정을 유지하고 화합할 지니라.
10. 불자여 항상 이웃의 행복을 휘하여 전법을 행하라. 전법은 부처님의 자비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최상의 공덕이니라. 모든 기회에 전법을 실천할 지니라.
<회향게(廻向偈)>
송계 하온 크신 공덕 수승한 행의 가없고 크신 복덕 회향하오니 바라건대 고해 중의 모든 중생이 어서 속히 무상정각 이뤄지이다. 시방삼세 일체불 제존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밀
十方三世 一切佛 諸尊菩薩摩訶薩 摩訶般若波羅蜜
오늘은 음력으로는 12월 보름이며 양력으로는 1월의 첫 번째 포살이 되겠습니다. 포살 법회때는 지나온 한 기간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부처님 앞에서 다짐하는 수행 기도 의식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고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반야바라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 '반야심경', '반야사상'에서 들어본 익숙한 용어임에도 반야는 무엇이고 바라밀이란 무엇인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 상황입니다.
경전에는 법화경, 화엄경, 반야경, 열반경, 아함경 등이 있는데 같은 내용과 의미지만 각 경전마다 쓰는 용어들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미(一味)라고 해서 한 맛입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 가지로 다르지 않지만 화엄경에서는 화엄이라고 하고, 반야경에서는 반야라 하고, 아함경에서는 연기라고 하지만 그 뜻이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라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반야라고 표현한 것이죠.
'반야'하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고, '바라밀'하면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행'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완성시키는 보살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에는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내용을 개인적 삶 속에만 실천하는 개인적 깨달음, 사회적 범위에서도 실천하는 사회적 차원의 깨달음, 역사적 차원의 깨달음.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깨달음과 지혜에 대한 완성인데 개인적 삶의 범주만의 실천이 아니라 사회적 생활 속에서 깨달음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사회를 부처님의 세계, 즉 평등과 평화로운 불국토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입니다.
반야부에는 600권의 경전이 있는데 이것을 축약해서 한 권으로 만든 것이 '금강경'이고, 금강경을 더 압축한 것이 '반야심경'입니다.
'반야심경'에는 반야바라밀을 의지해서 일체고액을 건넌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진리를 의지해서 일체 중생들의 액난, 재난을 극복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경전을 보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 불모(佛母)라고 했습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진리를 깨달음으로서 부처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중생이고 반야바라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곧 반야바라밀이라는 진리가 만들어낸 것이죠.
또한 반야바라밀은 세간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기에 부처님은 이 법에 의지하여 행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신하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수행, 기도, 자비, 보시행을 하면서 얻은 것은 반야바라밀을 깨달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의 어머니이고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진리를 공경, 공양, 존중, 찬탄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은 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머물고 공경, 공양, 존중, 찬탄하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탄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부모님을 의지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 부모님도 고마워해야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회와 역사와 자연환경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으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가르침 받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받고 깨달아서 문화인으로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성장합니다. 이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스승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모든 존재들에게 고마워하고 공양해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법당에 앉아서 법문 듣는 것도,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자기 몸과 의식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훈습되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사는 모든 현상들에 깨달음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고 소중히 생각하고 공양, 존중, 찬탄할 줄 알아야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석가모니 부처께서 말씀했습니다. "나의 스승은 지혜이고 진리이다" 사람에게 지도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나의 스승은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와 지혜에 의지해서 부처님이 되었기에 반야바라밀을 존중하고 공경, 찬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이 있기에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지할 데가 없으면 외롭고 방황합니다. 저도 어제 저녁을 먹고 별다른 계기도 없는데 갑자기 외롭고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시고, 여러분도 있고, 나를 깨우쳐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이 수없이 많고, 사람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전부 나를 향해 있는데'. 이렇게 생각을 하니 그때서야 허전하고 외롭고 뭔가 붙들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고맙다, 나는 행복하구나, 나는 주변에 나와 함께 하는 많은 것들이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이 의지처입니다. 거기에 공양하고, 찬탄하고, 즐겁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롭고 허전하다는 마음의 번뇌 망상이 일시에 걷어집니다.
또 반야바라밀은 일체고액을 건네주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중생들을 고통의 세상에서 고통스럽지 않은 세상으로 건네주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꼭 하고자 할 때는 열심히 몰입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불교식으로 하면 열심히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여러 가지 있죠. 염불 수행, 참선 수행, 기도 수행, 보살행. 열심히 수행하는 그 자체가 우리들을 고통의 세상에서 고통스럽지 않은 세상으로 건네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반야라는 것이 지혜, 진리이고 그것은 수행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니 수행이나 반야나 같은 것입니다. 기도 수행을 통해서 우리는 소원성취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죠.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을 이 세상에 탄생시켰기에 불모라고 했습니다. 수행이 곧 부처님을 탄생시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수행을 통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듯이 수행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평화로운 세상과 행복한 삶이 이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눈을 불안(佛眼)이라고 합니다. 경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로써 반야바라밀을 본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이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방에 계시는 현재의 모든 부처님은 또한 부처님의 눈으로써 항상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신다. 왜냐면 이 반야바라밀이 모든 부처님을 탄생시키고 모든 부처님에게 일체 종지를 주며 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은 항상 부처님의 눈으로서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선정바라밀 내지 보시바라밀이 생기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공함 내지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와 존재한다는 견해와 같이 공함이 생기는 네 가지 관찰법과 여덟 가지 바른 깨달음이 생기고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의 힘이 생긴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의 모든 부처님을 탄생시킨 것이다. 수보리야 지금 계시는 모든 부처님이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지금 얻고 마땅히 얻음은 모두가 깊은 반야바라밀의 이해에 의하여 얻은 것이라고 말하려 한다."
네 가지 관찰법, 팔정도, 육바라밀 등의 수행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의 단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얻어지는 과가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이고 이렇게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결국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지금 계신 모든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했는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는 말인데, 깨달음의 최고 단계로 부처님의 단계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얻어서 부처님이 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거에도 얻으니 지금에도 얻고 또 앞으로도 얻는다'고 했는데 현재는 누가 얻어야합니까?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얻어야합니다. 이 반야바라밀을 의지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부처님을 이 세상에 낳게 해주는 불모와 같은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반야용선이라고도 하는데 중생들을 고통의 세상에서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건네주는 배와 같은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스승이고 우리에게 있어서도 스승입니다.
또한 수행입니다. 수행 기도를 통해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고 우리도 수행기도를 통해서 발원을 성취 해야합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의지하고 스승으로 삼아라. 반야바라밀을 가장 존중하고 찬탄하며 고맙게 생각하라.
우리 불자들은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없이 마음속에 발원만 하고 계속 요구한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의 지도를 받고 가르침을 받아서 길을 가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적지만 생각합니다. 어떤 길을 가야할지도 생각하지 않고, 길을 가르쳐주는 스승을 찾으려고도 않고, 스승에 대한 공경과 존경도 다 생략합니다. 그러면서 욕구만을 계속 요구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 들어주겠다. 이렇게 해서 가라, 그럼 너희들의 소원이 그 세계에 펼쳐져 있다.'고 아무리 가르쳐 주셔도 우리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길에는 관심이 없고 추구하는 도착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지도를 주어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욕망에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혀있어서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보지 못하고 말해도 듣지 못합니다. 눈을 뜨고 귀를 여는 방법은 반야바라밀입니다. 그런데 굳이 거창하게 반야바라밀이라 하지 않아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과 기도를 하면 우리 소원이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안하면서 초 놓고 쌀 올려놓으며 내가 원하는 이것과 바꿔달라고 합니다. 이런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수행에 더 관심을 가지라는 겁니다.
수행이라 해서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까 포살문 요목을 낭독했는데 거기 오계가 있고 그 아래 다섯 가지는 우리 불자가 해야할 일반적 실천 덕목입니다. 그것을 열심히 수행하고 실천하라는 것이죠.
참선도 하고 백팔배 하고 염불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행이 깊어지고 번뇌망상이 소멸되다 보면 아무리 이루기 어려운 것도 전부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진리이고 수행입니다. 부처님도 반야바라밀을 수행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반야바라밀을 수행의 스승으로 삼고 그 스승에 의지해서 소원을 성취하자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ㅡ장훈 (조계사 보도국 법문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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