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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깊은 선방 체험 ~ 쌍계사 선원 대중공양

  • 입력 2004.01.12
  • 수정 2024.11.21

어스름한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한 대의 버스가 조용히 조계사를 출발하여 목적지인 쌍계사 동안거 선원 대중공양을 떠났다.  조금씩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밝아오는 겨울 아침은 차창 안에서 바라보기에도 맑고 투명하다.  부처님을 찾아 떠나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경쾌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하물며 일요일이 아니면 함께 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리라.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쾌활한 젊음과 관음법회의 화원들을 중심으로 차 안의 분위기는 가족적이고 화기애애했다.

 

총무스님인 도림스님을 모시고 구도부의 안내에 따라 관음법회 회원들, 현재 기본교육을 받고 있는 수행 입문자들을 포함하여 40여 명이 2004년 1월 11일 일요일에 열심히 정진 중이신 스님들을 찾아 대중공양을 하고 가까이에 있는 칠불사에 들러보기로 했다.

 

“좋은 꿈 꾸셨나요?  정말 가족적인 분위기입니다. 쌍계사에는 개인적으로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형스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정신적인 공황이 들 때마다 찾아뵙고 마음의 안식을 얻고는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쌍계사는 육조 혜능국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고 진감국사의 기념비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칠불사는 신라의 일곱 왕자가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었다 하여 칠불사라 불리며 아자방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공부중인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올리는 것은 뜻 깊은 일이며 수행하시는 분들은 나중에 우리들에게 법공양을 해주실 분들입니다.”라며 버스 안에서 대중공양의 의미와 사찰에 얽힌 이야기 및 육조 스님에 대한 간략한 말씀을 해주셨다.

 

어느덧 버스는 쌍계사에 도착했고 절 입구까지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우선 법당에 계신 부처님에게 삼배의 예를 갖추고 발우공양을 했으며 12시 20분에 대웅전 앞마당에 다시 모였다.  쌍계사에 머물고 계신 수안스님의 친절한 사찰 내력과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대웅전 앞마당에 모셔져 있는 육조스님의 5대손인 진감선사태공탑비는 고은 최치원이 직접 비문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남아 있는 비문 4개 중 가장 선명하고 거북이의 머리가 특이합니다.  비문은 대리석이고 아랫부분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 국보 47호입니다.  진감스님께서는 중국 육학을 마치고 오시는 길에 다(茶) 종자를 가지고 오셔서  쌍계사 주변에 심어 차로도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대웅전 역시 보물 500호인 관계로 단청 및 수리를 할 수 없으며 중앙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하여 왼편에는 약사여래부처님, 오른편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부도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서 보물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쌍계사에는 보물 아닌 것이 없는 듯하다.

 

법망경에 비추어 선악의 과보에 따라 업을 받게 되며 업의 심판을 해 주시는 명부에 계신 십대시왕님과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지장전과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연화장 세계의 화엄전을 둘러보았다.  “비로자나부처님은 법의 진리를 상징하여 법신불로 여겨지는 부처님입니다. 중생 속에 감춰져 있는 여래를 상징하며 모든 곳에 두루 광명을 비춘다는 뜻입니다.  이 부처를 형상화할 때 천연연화 즉,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의 단상 위에 계신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중생의 눈으로는 분별을 하여 돌멩이로, 계단으로 보이지만 깨달은 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꽃으로 장식되어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의 상징이 연꽃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전생에 호명보살로 있을 당시 중생구제를 위해 누가 먼저 갈 것인가를 놓고 미륵부처님과 함께 선정에 드셨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의 연꽃이 먼저 피었다고 한다.  먼저 꽃을 피우신 분이 사바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시고, 말법시대가 도래하게 되어 부처님 법이 미치지 못한 중생을 위해 나중에 꽃이 핀 미륵부처님이 오셔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로 했다하여 형상화되는 것이라 한다.  불성 자체만은 연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리산은 다른 산과 달리 산신할아버지가 아닌 삼신할머니를 상징하여 삼신산이라고도 한다.  삼신각에는 칠성님과 왼편에는 삼신할머니, 오른편에는 나반존자를 모시고 있으며 불교가 전래될 당시 포교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토속신앙과 불법의 접목을 꾀하여 민간신앙을 포용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불교 뿌리의 전파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육조스님의 정상이 모셔져 있는 금당으로 오르는 길은 108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스님께서 입멸하고 나서 훗날에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가져갈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다고 한다.  육조단경을 읽고 감명을 받은 삼법스님께서 본인이 육조스님의 정상을 가져와서 불법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우여곡절 끝에 모셔오게 된 계기와 지금의 장소에 위치하게 된 일화를 덧붙여서 설명해 주셨다.  현재 금당 안에는 석탑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정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사찰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도림스님의 사형이 되시는 도현스님(선덕禪德스님)과 함께 좋은 법문과 참선을 함께 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공양 중에도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대중들의 물질 공양을 받은 스님들은 열심히 정진하고 공부하여 그 의미를 되새겨서 여러분들에게 법으로서 보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는 부처님에게 도와 달라는 기도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잘 되어 부처님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뵈러 오게 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도림스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법문을 해주셨고, 선방의 스님들이 하시는 참선을 체험해 보는 계기로 도현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호흡을 가다듬고 10분간 참선의 실참을 하게 됐다. 

 

“잠깐 앉아 참선하는 공덕이 보배탑을 쌓아 보시하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시며 들숨과 날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라고 하셨다.  열심히 사는 가운데에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어 참선을 해보라고 권하시는 충고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쌍계사에서의 대중공양을 마쳤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일곱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칠불사로 이동했다.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하고 불을 때면 45일간 그 온도가 유지한다는 아자방을 둘러보았다.  스님께서는 우리들 스스로 불성을 갖고 있는, 성불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의 메시지를 담은 곳이라고 부연설명을 하셨다.  무사히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4시 이전에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렀다.  대중공양의 의미와 하루의 여정을 마음에 담고 버스에 몸을 실은 모두에게 뜻 깊은 시간이자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하루가 되었기를 바란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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