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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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6번째 염불수행법 2부
생활인을 위한 동안거(수행법 대강좌 결제)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 ~ 여섯 번째
염불 수행법 (2부 강의) ~ 정목스님(춘천 정토원 원장)
정목스님(춘천 정토원 원장)의 염불 수행법 강좌가 지난주에 이은 2부가 2004년 1월 13일에 열렸다.
“철학은 맹종하기 쉽고 신행이 없으면 증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증득이란 육근으로 감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통찰하는 것, 공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육근으로 이해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감득이란 말은 원효대사께서 사용한 말입니다. 철학과 수행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법은 어찌 전하는가? 원효스님께서 당시 모든 것이 사변적이라 교학의 시대가 되어 이론만이 발달했다고 하였는데 이론보다 실천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묻기를 ‘스님께서는 무엇을 믿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이 문제는 원효스님도 고민을 했습니다. 불교에 대해 무엇을 믿느냐? 불교란 부처님의 지혜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네 종류로 나뉠 수 있으며 그 네가지는 성소작지(부사의지), 묘관찰지(불가칭지), 평등성지(대승광지), 대원경지(무등무륜최상승지)입니다. 이는 유식학파에서 세운 전식득지설을 수용한 것입니다. 8만 4천 가지 법문을 축약하여 놓은 것입니다. 일심으로 증득하여 깊은 신심을 갖는 것으로서 염불이 되지 않는 이에게 성소작지(부처님의 변화를 각지한 지혜)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궁극적 끝이자 첫 번째 경계는 일심입니다. 주력, 참선 등 모든 불교 종파는 일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경계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소승과 대승의 큰 차이는 바로 보리심입니다. 가장 근기가 예리한 사람이 일으키는 보리심은 순리발심으로서 이는 연기적 세계관을 알고 일으키는 것입니다. 다음의 발심이 수사발심입니다. 불교는 환희와 같으며 번뇌도 공덕도 실체가 없다는 공을 깨달아 한발 앞으로 나아가서 끊을 것이 없고, 닦을 것이 없지만 끊고 닦는 것을 말합니다. 무수한 번뇌를 언젠가는 끊겠다, 선업을 꼭 닦겠다, 남을 돕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관상염불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믿으면 육도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하며 이것을 안심법이라고 합니다. 안심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불성을 가졌기 때문에 한 곳에 신념을 가지면 엄청난 힘이 생깁니다.
깨달음의 경지의 3가지 방법에는 이전 강의에도 말했듯이 십회초발심주의 살아서 정토를 보는 것으로 화신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초지보살이 되는 것이며 실제로 화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왕생을 하는 것인데, 죽어서 극락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종교는 세계관이 있으며, 불교는 연기적 세계관으로서 정토신앙을 말합니다. 세계관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잠깐의 질문 시간 중에서 한국불교는 통불교라 하는데 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님께서 답하시기를 오로지 하나만 일념으로 하여 하나로 통하게 한다하여 통불교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하는 것은 통불교가 아니며 신념과 일념을 가지고 자신이 서원을 세운 불보살의 명호나 세계관을 끝까지 관하는 것이라고 했다.
삼배 중에 상배는 머리를 깎은 사람을 일컬으며, 중배는 이치를 조금 아는 사람, 하배는 그 이치조차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복을 하되 모든 것을 아미타불의 화신이라 여기고 해야 일념으로 통할 수 있다고 한다. 염불을 해도 신심이 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얼마나 이 세상에서 은혜를 입고 사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이 와 닿는다. 불교는 고통이라는 것을 뼈로 느끼게 되면 저절로 신심이 생기며 고에 대해 깊이 관찰하고, 삶의 존재에 대하여 고요히 돌이켜보라는 뜻 깊은 말씀을 하셨다.
“염불은 소리보다 생각이 먼저입니다. 그래야만이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소리가 자연히 나오게 됩니다. 기도라는 말을 쓰면서 기복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아미타불은 아미타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염불을 하더라도 그 대상의 원력을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화신으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복이 오는 것이지, 소리로서 염불을 하는 것으로는 복이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칭명과 관상을 같이 해 보십시오. 칭명 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도록 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해야 합니다. 자기 흐름으로 가야 하는 것이지, 남들이나 스님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화합이라고 합니다. 염불선은 자성을 찾는 것입니다.”
공부에는 스승과, 환경과 도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신다. 이는 화엄경에도 나와 있는 경전의 말씀으로서 수행이나 염불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인 정토선(불교선), 한국적인 가람선이 되어야 요즈음 자칫 잘못하다가는 문화 식민지가 될 수 있는 요인이 많다고 걱정하셨다. 이 오탁악세에 마지막 보루가 불교인데 그 보루가 변모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소유를 지킬 수 있고 이어나갈 수 있는 분들은 스님들뿐이며, 이는 곧 희망이라고 했다. 조계종의 스님들이 이를 잘 유지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꿈이나 그 외적인 것으로 불보살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신해라 하여 감응으로 오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재가불자의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함이며 진실로 지극히 원하면 화신으로 나타난다고 하신다. 칭명염불 역시 신심을 돈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무량수로서 무한히 증득함이요, 무량광이라 하여 색광(빛, 달, 등, 별의 빛), 신광(몸에서 빛이 나는~수행을 많이 한 분들에게서 볼 수 있슴), 법광(부처님의 광명~중생은 신앙의 빛)을 증득하기 위함이다.
자비는 지혜에서 나오며, 염불은 나를 죽이고 모두를 부처로 보아 부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염불은 번뇌가 많고 죄를 지은 것을 알고 깨달아 뉘우침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고, 참선은 본래 부처임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지만 결국 부처님에게 이르기 위한 방편이자 길이라고 하셨다.
신원행(信願行)
보리심 원생심 지성심 회향심
나의 호흡은 법계의 생명이다
일체 경계는 광명의 물결이다
모든 생명은 광명의 화신이다
일체 인연과 은혜에 감사한다
『신앙의 대상인 종교마저도 초월하려는 자유를 주는 것이 바로 ‘불교’ 이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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