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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신중) 7일기도

  • 입력 2004.01.24
  • 수정 2025.01.15

바쁜 걸음으로 대웅전 법당 안으로 들어서려고 신발을 벗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잔뜩 날이 선 찬 기운과 마주했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은 차가움, 그 이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렇듯 강추위와 함께 하는 정초기도는 등 뒤로 전해져 오는 햇살을 더욱더 따뜻하게 느끼게 했다.

 

2004년 1월 24일(음력 1월 3일)은 새해를 맞아 지난날을 참회함과 동시에 새로운 다짐과 계획을 세워 부처님께 고하고 공양을 올리는 정초기도를 봉행하는 날이다.  또한 한 해 동안 무사히 병고액난을 떨쳐버릴 수 있게 서원을 세우는 화엄성중(신중)기도를 7일 동안 올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대웅전 안에는 이미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극락전과 경내 마당에도 재가불자들의 서원의 마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삼귀의, 대예참문의 기도가 울려 퍼졌고, 신중청, 반야심경의 기나긴 기도의식도 끝을 맺었다.  조계사 합창단의 음성공양에 이어서 주지스님께서는 초발심자경문에 관한 법문을 해주셨다.

 

“엊그제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이었습니다.  설날 아침에는 모두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절 집안에서는 이 인사와 더불어서 새해에 복 많이 지으십시오. 하는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말이 정착이 된 것 같습니다.  복을 많이 받으려면 많이 지어야겠지요.  복을 많이 지으라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복을 지으시고 지은만큼 많이 받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복 중에 5복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건강하게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 몸과 마음이 하나의 티끌도 없이, 하나의 물듦 없이 그야말로 건강하게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면서 잘못 살았거나 잘못하여 몸과 마음에, 내 생활에 업장이 깃들게 되고, 죄를 지어서 어둡게 살고, 건강을 망쳐서 병들어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성을 가지고 태어났듯이 모두 건강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올 해는 물듦 없이 건강을 잃지 말고, 잘못하여 건강을 해쳤다면 건강을 되찾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정초 7일 신중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기도가 시작되면 그에 따른 기도의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해 왔습니다.  이번 신중기도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기도목표를 세우고 일정에 따라 열심히 기도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7일간 기도하는 자의 마음자세, 7일뿐 아니라 올 한해의 우리 불자들이 어떻게, 어떠한 마음자세로서 기도하며 살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들이 출가를 해서 처음 배우는 공부가 초발심자경문이라고 하는 경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다 들어있으므로 오늘은 이 책에서 법문준비를 했습니다.  한 해의 정초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는 첫 마음 을 내는 초심, 즉 초발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법,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것도 초심이지만,  어떤 일을 할 때에 내는 마음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내는 마음도 초심입니다. 시간적으로도 정초이니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올 한해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마음, 계획들, 이 모두가 초심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에 재가불자들에게 해당되는 것들을 말하겠습니다.

 

첫 마음을 연 이는 나쁜 벗을 멀리하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도록 하고 오계, 십계를 받아 지니고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일입니다.  여기서 착한 벗들을 가까이함이란 선지식을 의미하며 스승이나 스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무릇 친구나 이웃, 모두가 선지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나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는 모두를 선지식으로 삼을 것이며 이러한 자세가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기도를 성취하려면 우선 자기 생활이 바른 자세이어야 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청정한 생활 가운데 사업이나 건강, 그 외 모든 기도가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계율수행은 우리를 변화되고 행복하게 해 주는 삶의 조건이다.  특히 수행과 기도시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 배려, 사랑, 포용이 전부 깨어지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두 번째는 자기 업장을 소멸하는 기도입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기도, 참회시 자기업장을 참회해야 합니다.  자기가 깨우치지 못한 남의 배려나 받았던 도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살았던 삶의 지은 죄를 참회을 때에는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쌓인 업장이 태산같이 나오니, 그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라는 것입니다.  불만족이나 신체적, 정신적인 병도 내 업장에 의해서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업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회는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초발심자는 도반들과, 같은 불자들과 화합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불만족이나 싸움이 되고 전체가 불안해지고, 평화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단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집단 속에서 서로가 배려고 부족함을 채워서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란, 내 마음을 어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고, 그 속에서 화합하고 계율을 지키며 각박한 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지혜나 자비로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인간의 대복전이 되라함은 출가스님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출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니 7일기도 동안에 잊지 말고 많은 복을 지어서 더 많은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몰아친 한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인 신도들에게 정초기도 법문을 해주셨다.

 

한 해 동안 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겠다는 서원과 올 한해도 일주문 불사와 대웅전 해체보수 불사가 원만히 성취되기를 바라는 서원이 담긴 기도입재 발원문 낭독으로 끝을 맺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눈부신 4월에 조계사의 일주문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은 이르지만, 불기 2548년이 가기 전에는 반드시 일주문 건립이 완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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