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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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원품 『중송분』(3)
오늘은 보현행원품을 공부한 공덕으로 어떠한 힘이 생기며 그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일념에서 두루 하는 신통의 힘
일체 문에 다 통하는 대승의 힘
지와 행을 널리 닦는 공덕의 힘
위신으로 널리 덮는 자비의 힘
청정장엄 두루 하는 복덕의 힘
집착 없고 의지 없는 지혜의 힘
정과혜의 모든 방편 위엄의 힘
넓고 널리 쌓아 모은 보리의 힘
이 힘을 가지고 선업을 짓습니다.
선업의 힘 즉, 일체 것이 청정한 선업력으로 일체 번뇌의 힘을 멸해버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번뇌의 힘입니다.
그래서 그 번뇌의 힘을 멸하려면 선업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업의 힘은 앞에 말씀드린 모든 힘들이 다 갖추어져야 완성된 선업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번뇌의 힘을 멸해버리면 선업이 힘을 발휘해서 선업을 짓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부딪쳤을 때 번뇌의 힘이 먼저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기차를 타려고 역에 갔습니다.
개찰구를 지나서 플랫폼에 들어서니까 기차가 출발해 버립니다.
간신히 달려 기차의 마지막 문을 붙잡고 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새로 산 신발 한쪽이 벗겨져 버린 겁니다.
그때 우리 중생 벗겨져 떨어진 그 신발이 제일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한 동안 잃어버린 신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중생의 업보가 욕심 속에서 내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한참 머물러 있습니다.
그때는 "그 신발과 나는 인연이 없나보다"하고 잊어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신발 잊어버리고 화병이 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신발 잃어버리고 말자." 그렇게 한 생각 돌려서 잊어버리기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완전히 잊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일체문에 다 통하는 대승의 힘이라 했는데, 어떤 생각을 잊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신발 한 짝을 누군가가 주었을 때 한 짝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으니 자신이 신고 있던 다른 한 짝마저 벗어서 그 쪽으로 빨리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차원을 더 높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신발 안 잃어버린 것 보다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시를 안 하니까 이렇게라도 보시를 하는구나." "누군가가 그 신발을 참 잘 신고 다니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때 그때의 마음이 훨씬 기쁠 것입니다.
아까워 할 때는 속이 상하지만, 포기한다고 포기 했을 때는 그렇게 하고 말겠지만, 신발을 던져주고 누군가가 신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겠지요.
그렇게 우리가 단계적으로 더 높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중생의 힘이 번뇌의 힘인데, 대승의 힘, 신통의 힘, 지혜의 힘 등 여러 가지 힘을 얻어야 번뇌의 힘을 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사는데 부인은 굉장히 복이 많고 착하고 바르게 열심히 살아가요.
그런데 남편은 아무 일도 안하고 부인의 덕으로 사는 거예요.
사람마다 욕을 하는 겁니다. 친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보살님이 절에 왔는데 사람들이 보살님을 칭찬하는 겁니다.. 그러니 보살님 기분도 우쭐했겠지요. "저 사람은 내 덕으로 산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남편을 무시하는 경향도 생기고, 그렇게 되면 집안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살님께 그랬습니다.
"보살님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살님은 지금 남편 복으로 사는 겁니다"라고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렸겠지요. 그래서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보살님은 마누라 복이 있는 남편을 만났으니 잘 사는 겁니다." 마누라 복도 없는 남편을 만나면 부부가 서로 고생하는 겁니다. 마누라 복이 있는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본인도 그렇게 잘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주지 소임을 맞고 있는데 어떤 스님은 아무 일도 안하면서 주지가 봐 주니까 살지 쫓아내면 못 살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지를 잘 만나서 그 덕으로 산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주지 복이 있는 스님을 만나서 잘 산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미워할 사람도 없고, 야속한 사람도 없고, 버릴 사람도 없는 겁니다. 그것이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힘을 얻으면 모든 번뇌-망상-욕심이 사라집니다.
한량없는 모든 세계 엄정히 하며
한량없는 모든 중생 해탈케 하고
한량없는 모든 법을 잘 분별 하고
한량없는 지혜의 바다 요달 하오며
한량없는 모든 행을 청정히 하며
한량없는 모든 원을 원만히 하며
일체 여래를 가까이 친근히 하여 공양하면서
무량겁을 부지런히 수행하옵고
수행하고 또 수행하여 생긴 번뇌를 멸해버린 힘, 즉 선업의 힘, 그 모든 힘을 가지고 또 수행 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그 공부한 힘을 가지고 더 큰 공부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절에 다니시면서 공덕을 짓고 또 공덕을 짓되 거기서 끝날 것이 아니라 더 큰 깨달음을 향해서 나가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현재는 자기가 전생에 지은 복 만큼 삽니다.
그런데 그 복을 자기만 가지고 잘 살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되요.
그것 또한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콩 한쪽 나누어 먹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더 큰 복을 지어서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많이 보시를 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금생에 보시를 많이 하면 내생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만 가질 것이 아니라 내생에 부자가 되어서 더 많은 보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일체 중생을 제도 한다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그런 힘을 점차 길러서 보리를 이루고 회향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보현보살 문수보살 같은 분들이 되기 위해 회향을 하는 것이 있고, 일체중생을 다 제도 하는 것으로 회향하는 것이 있고, 우리가 회향하는 것 중 마지막은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께 회향하는 것이 있습니다.
원합노니 이 목숨이 다하려할 때
모든 업장 모든 장애 다 없어져서
이 부분이 49재 관음시식 할 때 이 게송이 나옵니다.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원합노니 목숨이 다하여 죽으려할 때
진제일체제장애(盡際一切諸障碍) 모든 업장 모든 장애 다 없어져서
그 장애라는 것이 악업을 지어서 지옥에 갈 업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갈 일도 없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가게 되는데 제일 좋은 경지는 아미타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을 대동하고 마중을 나온다는 것이죠.
그리고 극락세계를 가는데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면전에서 저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고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곧바로 편안하고 즐거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겁니다.
마지막 회향은 그렇게 합니다.
화엄종 사찰 중에서도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절도 있지만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주 부석사를 꼽을 수 있는데, 부석사는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화엄종 사찰인데 그곳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셨습니다.
결국은 극락회향 즉, 아미타부처님께 회향하는 것입니다.
나의 몸이 저 세계에 가서나고는
그 자리서 이 대원을 모두이루고
극락세계는 중생세간과는 다르니까 모든 소리가 다 법문으로 들려오게 되니 도(道) 닦기가 좋은 그곳에서 그 원을 다 이루고,
온갖 것을 남김없이 원만히 이뤄
일체중생 이롭도록 하여지오며
일체중생이 이롭도록 또 회향을 하는 겁니다.
극락세계에 가서 자기혼자 즐거움을 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성불하고 나서 일체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저 부처님 회상은 청정하시니
내가 그때 연꽃속에 태어나아서
무량광 부처님을 친견하옵고
아미타부처님을 무량광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바"하면 무량광이고 "아미타우스"하면 무량수라고 합니다.
수명이 한량없고 광명이 한량없다는 것이고 무량광하면 지혜를 말하고 무량수는 자비를 뜻합니다.
한량없는 수명을 가지고 일체 중생들을 다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성취하신분이 아미타부처님 이고, 한량없는 지혜를 가지고 중생들을 다 보살펴야겠다고 원력을 세워서 이루신분이 바로 무량광부처님입니다.
어떤 곳은 무량수부처님이라 하는 곳도 있고 무량광부처님이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 자리서 보리기 받아지오며
부처님의 수기를 받자옵고는
보리기라는 것은 이 다음에 성불한다고 하는 수기라고도 합니다만 예언을 받는 것입니다.
보현행원품을 공부한 공덕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아미타부처님으로부터 이 다음에 성불한다는 수기를 받는 것이죠.
수없는 백구지의 화신을 내고
여기에서 구지라는 말은 억을 말합니다.
백구지라하면 백억을 말하는데, 천백억 화신을 나툰다는 말입니다.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려면 하나의 몸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지혜의 힘 광대하여 시방에 퍼져
일체중생 이롭도록 하여지이다.
그렇게 많은 몸을 나투어서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고자 한다 그런 뜻입니다.
많은 중생을 제도하려면 한량없는 몸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천수천안 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원을 세우고 자비심을 가지고 신통력을 얻어야지 그런 신통력을 얻어놓고 자비심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대로 다 된다면 큰일 납니다.
우리가 살다 만약 신통력을 가지게 되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을 갖추기 전에 자비의 힘과 같은 다른 힘들이 많이 필요 합니다.
지혜의 힘 광대하여 시방에 퍼져
일체중생 이롭도록 하여지이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다하고
업과 번뇌 다하면 모르거니와
이와 같은 일체 것이 다함없을 새
나의원도 마침내 다함없으리
이렇게 끝까지 중생을 이롭게 해야 되겠다는 서원을 세웁니다..
요즘이 정초 7일 기도 기간이지요?
올해 정초는 동지와 입춘의 사이가 45일정도 됩니다. 그 기간에 정월이 끼어있는데, 동지는 시간을 말해요.
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때(時)의 시작입니다.
입춘은 공간적인 즉, 지상에 봄이라는 것이 와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정초 정월은 인간이 만든 달력으로 인해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럴 때 모든 시간적으로 잘 맞아야 하고 좋은 때를 만나고 좋은 인연 만나고 우리 삶이라는 것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난다는 것이죠.
극단적인 예를 들면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있었죠. 그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 장소라는 곳이 지하철 안이고 그 시각 서울에 있는 분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잖아요.
그때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 불이 날 때 있었고, 불을 지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때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은 불 지른 사람과 악연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모면한 사람도 있겠지요. 예를들면 지하철을 타려고 숨이 가쁘게 뛰었는데 지하철을 놓쳐서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이번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졸다가 화를 입은 사람도 있었겠지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관계라는 것입니다.
평소 생활속에서 나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데 전생인연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고, 그때 기관사가 지혜롭게 전기를 끊지 말고 조치를 잘 취했더라면 그때의 화를 면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일년동안 좋은 사람 만나고 가는 곳마다 그 자리가 좋은 곳이 되고 때를 또 잘 맞출 수 있는 그런 한해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정초기도를 열심히 하신 공덕으로 일년내내 건강 하시고, 부자 되시고 마음 편안하시길 부처님 전에 기원하면서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정리: 서혜정(조계사 보도부 법문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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