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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웰빙족’과 ‘아침형 인간’들에 대한 단상

  • 입력 2004.01.28
  • 수정 2024.11.18

 A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작은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각국을 다니며 수집한 불상이 모셔져 있는 ‘명상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는다. 30분을 가만히 앉아있던 그는 집 뒤 뒷산을 가볍게 걷는다. 때로는 뛰기도 하지만 땀에 젖을 정도로 무리하지는 않는다.   5시30분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는 아들과 딸이 그제서야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온다. 그나마 지난 몇 달간의 싸움 끝에 앞당긴 시간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에는 고등어조림과 시골 집에서 보내온 도토리묵, 시금치, 콩나물, 김, 우묵에다 느타리버섯을 넣고 끓인 된장국이 현미밥과 놓여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고기가 없다며 투덜거리던 아이들도 지난해 말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조류 독감, 돼지 콜레라, 광우병 이야기에 더 이상 이의를 달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 출근길 짜증도 사라졌다. 서울로 출근하는 차량으로 꽉 막히는 도로지만 A씨가 집을 나선 오전 6시20분은 출근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다. 집을 나선지 20분이면 회사가 있는 강남까지 OK다 . 1시간만 늦어도 출근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지만 이제는 남의 일. 아직 7시전. 오늘도 1등이다. 

 

이른바 요즘 유행한다는 ‘웰빙족’과 ‘아침형 인간’들의 사는 모습이다. 또 ‘족’(族) 타령이냐고 불만인 사람들도 많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농약과 비료를 하지 않은 우리 농산물을 즐겨 섭취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40대가 된 사람만 해도 어릴 적 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70년 대 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늦게 잘 이유가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지게지고 뒷산에 올라 저녁 참에 쓸 갈비(소나무 낙엽) 한짐 지고 내려온뒤 소여물 끓이고 나면 벌써 저녁. 상을 물리고 난 뒤 그제서야 내일 배울 책을 챙기고 밀린 숙제 하고 나면 9시가 되기 전에 졸음이 몰려온다. 더 이상 눈떠고 있어야 할일도 없다. 동생들도 잠든지 오래고 사랑방도 조금 전에 불이 꺼졌다. 바쁜 농가에서 새벽 5시 기상도 늦다. 겨울 새벽에는 딱히 할일이 많지 않아 평소보다  1시간 더 잘 수 있는 호강(?)을 누리지만 봄이 오고 농사일이 바빠지면 새벽부터 서둘러야한다. 이불 속에서 잠시라도 뒤척거렸다가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시조처럼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고 상기 아니 일렀느냐”는 소리듣기 십상이다. 밥상 ?. 고기국은 상(喪)이나 결혼이 없으면 구경하기 힘들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없이 채식을 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불과 20~30년전, 아니 지금도 시골 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을, 먹고 자는 일상이 ‘웰빙족’ ‘아침형’ 인간이라는 거창한 이름아래 최상의 생활로 포장되고 있다. ‘아침형 인간’에 관한 책은 몇 달 째 경영부문 서적 베스트셀러를 달리고 있고, 사회에서 성공할려면 하루 빨리 ‘저녁형 인간’을 버리고 아침형 인간으로 환골탈퇴 하라고 다그친다. 식생활은 어떤가. 고기먹는 인간은 하급으로 전락할 지경이다. 이른바 웰빙족을 위한 기업은 주식 전문가들 사이에 추천 유망종목이 됐다. 

 

‘웰빙족’과 ‘아침형인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스님이다. 저녁 일찍 자고 만물이 소생하는 새벽에 일어나 명상(참선)하고 채식을 직업적으로(?)하는 사람이 바로 스님 아닌가. 한마디로 이 사회에서 출세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는 방법은  바로 스님이 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 요즘 사회의 추세다. 실제로 스님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여여(??)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서도 병치레 없이 편안하게 임종에 드니, 스님처럼 사는 것 만큼 제대로 살아가는 길도 없어 보인다. 굳이 포교를 하지 않아도 세속의 사람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스님처럼 살아가겠다고 돈을 들여가면서 까지  저 안달이니 불교가 위대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하지만 왠지 ‘웰빙족’과 ‘아침형 인간’에서 수행자의 향기를 느끼기보다  도시민의 돈냄새가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 까. 그들에게서 자연에 안겨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순박한 촌사람의 풋내음이 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채식을 하는 수행자의 일상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지 생활 그 자체는 아니다. 수행자의 마음에는 나를 버리고  천하를 그 속에 담는다. 하지만 웰빙족의 마음속에는 남과 다른 선민의식이 짙게 깔려있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건강과 부귀다. 그 원리는 남을 이겨야 사는 경쟁관계와 강자가 이기는 정글의 법칙이 도사리고 있다. 일찍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가 밤생활을 청산하기 힘들게 돼있다. 늦게 까지 일하고 새벽 같이 일어나도 좋으니 직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하는 실업자들이 늘려있다. 조류 독감에 걸린 닭고기, 광우병에 걸린 소를 버리고 채식을 하기보다 이참에 고기값이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자칫 수행자처럼 살아가는 생활은 예기치 못한 사회적 부작용을 가져 올 수 있다. 우리 불교계가 사회에 퍼지는 수행 열풍을 선뜻 환영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스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불교신자라면 스님을 무작정 뒤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스님들의 생활이라도 배우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교신자가 아닌데도 돈들여 가며 스님들 생활을 따라하기위해 안달인데 정작 불교신자들은 좋은 모범을 보고도 따라 할줄 모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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