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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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의 사회적 의미
부처님 말씀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했지만 요즘 우리 주변은 너무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주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21세기 최대 화두는 환경문제입니다. 환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갔느냐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겪는 환경공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수행하는 사람들의 화두입니다.
모든 성인이나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지만 부처님도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킬 것은 버리고 버릴 것은 구하고 있어 우리가 여러 문제들을 겪는 것입니다.
계는 살생 말라, 도둑 말라 라고 단순히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사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입니다. 생명이 있는 일체 모든 것과 허공, 물, 바위처럼 생명 없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식간에, 동양인과 서양인, 국가와 국민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들입니다. 지금 그 관계들이 잘 안돼서 모든 불신 문제가 팽창되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회사 근로자, 스님과 신도, 선생님과 제자와의 사이에 신뢰가 없습니다. 이것은 지켜야 할 것을 안 지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과소비가 문제입니다. 물건만 아니라 생각도 과소비합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이 과소비입니다. 절제하는 것은 돈뿐입니다. 뺐길까봐 종이조각 바짝 쥐고 있습니다. 과욕과 과소비가 서로의 관계를 훼손합니다. 많이 생산하지 않고 많이 소비 않는 시대가 와야 훼손된 자연이 원상복구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필요 없는 요구 사항만 가지고 법당에 옵니다. 필요한 것은 버리고 불필요한 것만 가지고 법당에 오니 결과가 서로 불신이 만연하여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서로의 관계는 속된 말로 정치입니다. 나와 남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정치입니다.
옛날 임금이란 존재는 백성이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정치하는 사람은 어떡하면 국민이 편히 살 것인가가 과제인데 그것을 문 밖에 버리고 당리당략과 개인 이익에만 얽혀있습니다.
계율 중에 살생하지 말라는 것을 풀어서 설명한 것이 지금까지의 내용입니다. 살생하지 말라하니까 기도 끝나고 물고기 방생하러 가고 있는데 살생 말라는 것은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것도 있지만 서로의 관계를 믿음으로 유지시켜나가라는 것이며 곧 정치입니다.
우리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흔히 많은 생산과 과소비를 하는 나라는 선진국이고 적게 하는 나라를 후진국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얼마만큼 공업화가 되었느냐에 따라 선진국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 가치 때문에 과생산이 오늘날 어려움을 만들고 있습니다. 많이 생산하는 것은 과소비 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어서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말과 생각과 행동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비열한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가정사이고 사회 현상입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해야하고 용어도 잘 선택해야합니다. 감정대로 내 뱉기에 부부 관계, 부모, 스승 제자 관계에서 말이 순화가 안됩니다.
도둑질 말라하는데 그런 것이 절제하는 것입니다. 절제하면 남의 것 탐낼 이유 없습니다. 절제하면 남의 것에 관심 없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절제 못하는 지도층의 사람들이 사회를 주도하기 때문에 온통 사회가 절제 못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참선하고 도인 되는 것은 차후 문제이고 이런 것이 선결 안되면 화두나 염불삼매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수행하기 이전에 해결할 것을 지키는 것이 계율입니다. 술, 고기 안 먹는 것이 계율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누가 선생이고 제자인지, 누가 대통령이고 장관이지 모릅니다. 완전히 비빔밥입니다. 노소, 남녀, 계층 간에 서야할 부분이 무너졌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나하면 여러분들이 가정생활을 절제 있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율은 부부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입니다. 신성해야 합니다. 요즘은 부부와의 관계가 부부인지 친구인지 원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무질서합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부부관계는 귀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소홀히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로 간에 업어주며 모시고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젊은 부부들 말하는 것을 보면 유치원생인가 할 정도로 유치하고 저속할 용어를 다반사로 쓰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한 생의 부부인연은 오백생의 인연이 성숙되어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주고 받은 인연이기에 신성하고 귀한 것입니다. 싫다고 이혼하고 별거 할 거 아닌데도 요즘 우리 사회는 완전히 그런 부분이 깨져서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이것이 안 되는데 다음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만큼 우리 사회가 썩고 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양철학 서양문학 서양역사는 꿰차도 한국 역사 문학은 모릅니다. 우리나라 모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가서 정상회담 하는데 석굴암 부처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는데 몰라서 망신을 당했는데 이런 것이 한국사람입니다. 우리 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 것만 압니다. 요즘 젊은이는 더합니다.
그런가 하면 교육환경은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자식 교육을 돈으로 해결하려고만 하지 한 사람도 자기 자녀를 끼고 앉아서 교육시키는 가정이 없어요. 훌륭한 인격자 되라는 말은 안하고 학원비 많이 내니까 공부나 잘 하라는 말만합니다.
지금 우리의 실정입니다. 인성교육은 안 시키고 출세하고 돈 벌라는 교육만 시킵니다. 서울대 가는 것이 최대의 원입니다.
교육이 엉망이니 사람이 진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진실과 진지함이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그때그때의 이용가치로만 하지 진실한 우정이 없습니다.
GNP가 이만불이면 뭐합니까? 과소비만 하고 절제 없이 욕망만 더 늘어나게 되는데. 우리가 진지함이 없다는 말은 철학이 없다는 말이고 절이나 교회에 다녀도 헛일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가정이나 자녀교육, 인간 관계에서 진지함과 진실함을 지키라는 것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율입니다.
술 먹지 말라는 계율은 술 먹고 취해서 정신을 잃지 말고 건전하게 살자는 말입니다. 술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혼돈 속에서 살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살자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선행이 되어야 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한 이야기는 사회적 문제들입니다. 그냥 오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온 사회, 인류가 다 지켜야 되는 귀감을 부처님이 말씀한 것으로서 불교인만 지키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가 건전하게 존속하려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도덕의 다섯 가지가 올바로 지켜져야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오계이다. 오계가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 계율을 잘 지키며 일상생활을 해야 참선, 염불이 됩니다. 이렇지 않고 절 다니면 대학 합격한다 하니까 다니면 될 것도 안 됩니다.
그러니 다섯 가지 계율을 사회 속에서 현실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도인이 됩니다. 지키지도 않은 채 도인 됐다는 사람, 되겠다는 사람은 잘못입니다. 기본적으로 지키려는 것을 지키면 그 속에 도가 다 있는 것입니다. 도는 멀리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계정혜라는 것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계를 지켜야 정에 들 수 있습니다. 생각이 진지함이 있는 것이 정의 세계입니다. 일상생활 통해서 진지함을 구축해야 합니다. 한 철씩 스님들이 참선하는 것은 진지함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없이 화두가 진일보하지 못하고 한치도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계율은 불자 혹은 인류가 일생생활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 계율이 이루어지면 지상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 선종의 제3조 승찬(僧璨)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설한 석가의 대도(?道)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지은 책으로 <신심명(信心銘)>이란 책이 있는데 그 중에,
일체이변 양유짐작이로다
一切二邊 良由斟酌이로다
이 말은 모든 상대적인 견해는 짐작으로 인해서 생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일체가 상대적입니다. 내 견해 다르고 여러분 견해가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미리 예견하기에 두 가지 견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옮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 크고 작고, 모든 것이 양변입니다. 그렇기에 천국 지옥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미리 짐작하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비가 있는 것입니다.
짐작하기에 시비가 있고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생깁니다. 그리니 짐작하지 말아라.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보고 짐작하지 않으면 됩니다.
몽환공화 하로파착
?幻空華 何勞把捉
모든 것은 꿈과 같은 것이고 빈 꽃과 같은데 어찌 그런 것들을 잡으려고 노력하는가라는 말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했는데, 그런 관계를 허망하고 꿈속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전체이고 진실인지 알고 거기에 매달려 갑론을박하니 괴로움만 커진다는 말입니다.
21세기 중요한 화두는 환경이라 했는데, 표현을 환경이라고 했지만 21세기 인류의 화두는 참선입니다. 종교를 떠나서 화두입니다. 왜 참선이냐? 지금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참선수행이 유행입니다. 우리와 같은 불공 기도나 발원이 아니라 참선수행입니다.
기도는 중생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자 하는데서 생기는데, 선진국은 중생이 필요한 욕구를 물질적으로 해결했습니다. 물질적 다 해결했지만 여전히 괴로움은 해결이 안 됩니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부자로 살고 싶고, 9급 공무원일떼에는 5급 되고 싶고, 그러나 성취했는데도 여전히 안에 괴로움이 없어지지 않고 더 많아집니다. 많이 소유하고 출세할수록 괴로움은 더 많아집니다. 그렇기에 선진국은 외형적으로는 해결했는데도 인간의 고뇌가 해결이 안 된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다 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활활 타는 욕망을 다 내려놓았을 때만이 활활 타는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시비, 행 불행, 지옥 극락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지옥 안 가기 위해 절에 와도 안된고, 천국 가기 위해 교회에 가도 안 됩니다. 참선은 그 이치이다. 그러니 외형적으로는 다 얻은 선진국 국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참선입니다. 그래서 미국에는 선방이 오륙백개가 됩니다. 우리 선지식이나 조실 스님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끼리 선방을 합니다. 그 방법 밖에 인류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각 스님도 다 찾다가 안되니까 찾은 것인 참선입니다.
자신도 모르면서 허우적거리고 잘났다고 사는데 너 자신이 무어냐고 물으면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누구냐 아는 것입니다.
참선하고 법문을 듣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내 마음에 달렸습니다. 여기 많은 분이 계시지만 이해한 각도는 다 다릅니다. 얼마만큼 말한 분의 뜻대로 이행하는냐. 그래서 염화시중의 미소의 뜻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고도 통해야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어도 어느 만큼 이해하느냐가 관건이고 거기에 따라 참선하고 법문 듣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고 무용지물일 수도 있습니다.
스님들이 말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내게 와서 마음에 푹 젖도록, 마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혜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고마운 스님이죠.
성불하십시오.
정리 : 장훈 (조계사 보도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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