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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혜명보육원 아이들

  • 입력 2004.02.13
  • 수정 2024.11.18

'따뜻한 마음을 담은 정(情)이 먼저입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혜명보육원이라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있다.

이 혜명보육원은 도선사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만3세에서 18세까지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따라서 만 18세이상 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곳을 떠나 독립적인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대학시절 나는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스님의 소개로 혜명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학교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1주일에 한번씩 시흥을 다녀오곤 했다.

혜명보육원에서 내가 맡은 일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성적을 평균 60점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평균 60점이상이 되어야만 학교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중학교도 의무교육인 시대라 이미 사라진 제도일터이지만, 당시에는 보육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중학교를 다니는 경우, 등록금을 정부에서 보조해주고 있었다. 단 평균점수가 60점을 넘지 못하면 정부의 등록금 보조를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혜명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중학생이 60점을 넘지 못하는 경우 아이들 등록금은 고스란히 보육원에서 부담해야 했으니, 빠듯한 재정형편에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은 보육원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돈을 받고 하는 아르바이트보다 더한 부담감으로 나에게 다가왔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적표가 나오는 시기에는 60점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간 날, 담당 선생님은 “아이들이 과자를 사달라거나, 돈을 달라고 한다고 해서 그냥 응해주면 안됩니다”라는 당부 말씀을 나에게 주셨다.

그 말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해 의아스런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자,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처음 오셔서 이해가 안될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다니시다 보면 이해가 될겁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외부에서 사람들이 처음 오면 일단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이런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닙니다. 연말연시나 명절 때가 되면 어른들이 먹을 거리와 입을 거리 등의 물품을 갖고 우르르 몰려와서는 사진찍고 돌아갑니다.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 마음속에는 아!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은 먹을 거리와 입을 거리 등을 갖다 주고 사진찍고 가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인식만이 자리잡게 됩니다.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굶고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이 담긴 정인데, 때만 되면 반복되는 어른들의 시혜성 생색내기 및 자기과시형  방문으로 인해 오히려 외부사람들에 대해 마음의 담장을 쳐버리는 겁니다. 심하게 말하면 방문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시켜 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담당 선생님의 그 말씀이 없었다면 나도 아마 귀여운 아이들이 “형 100원만 줘”라는 말에 쉽게 응했을지도 모른다.

그 선생님의 안내말씀 덕분에 나는 일년여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극복하고, 서로의 과거를 얘기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면서 주어진 역할을 마칠 수 있었다. 

오래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아직도 사회복지시설을 후원하고 봉사하는 분들의 일부가 보여주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경계하자는 뜻이지, 후원자와 봉사자들의 실천행을 폄하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지시설이나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은 자신들이 동정을 받는 대상으로 인식되기를 원치 않는다.

때문에 후원자나 봉사자들이 그들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고정화시키게 되면, 본래의 선한 마음과는 달리 그들에게 더 많은 소외감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동생이고, 친구이기도 하며 또한 우리의 부모님이라는 열린 마음으로 비추어 보면, 동정과 시혜의 대상자는 사라지고 공업중생(共業衆生)·동체대비(同體??)의 세상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연이란 바로 이런 관계의 형상화를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을 담은 정이 우선되어야 함을 바로 보고, 후원과 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후원자, 봉사자가 아니라, 그들과 즐겁게 웃으면서 마음과 정이 오가는 대화를 나누며 활동하는 불자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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