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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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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 입력 2004.02.17
  • 수정 2024.11.20

불교에는 '겁(kalpa)' 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있다.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 만한 바위를 뚫어 없애는 시간이나, 혹은 사방 40리의 철성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한 알씩 꺼내 다 비워질 때까지를 겁이라고 한다.  인연이라는 이야기로 말하는 불교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인연의 확률은  1000겁에 한 번, 형제로 만나는 인연의 확률은  9000겁에 한 번, 부모와 스승으로  태어나는 인연의 확률은  1만겁에 한 번 이라고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순수 제작비 147억원  엑스트라 2만5000명 동원, 또 사전기획 기간 1년3개월, 시나리오 준비 기간 2년 5개월, 촬영기간 9개월 등 5년이 넘는 시간이 투자로 거대한 물량투입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고 하나 이보단 이 영화의 감동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1950년 6월 서울 종로 , 진태(형)는 소중한 동생(진수)과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구두 닦기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진태는 힘든 중에도 약혼녀 영신(동생 3명을 보살피며 가장으로 살아간다)과 결혼을 앞두고, 집안의 희망이자 자랑인 진수는 서울 대학 진학을  앞두고   행복한 날을 보낸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며  진태와 영신 가족은 피난 길에 오른다. 대구에 도착한 진태와 진수는 군인들에게 의해 강제 정집 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두 형제는 훈련 받을 시간 없이 실전에 투입되고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태극무궁훈장을 받아 동생을 징집 해제하게 만들어 집으로 무사히 보내기 위해 모든 일에 앞장선다. 형은 이념과 사상과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만 동생은 전쟁속에서 변해 가는 형을 원망스럽게 느끼며 형과의 갈등이 점점 커간다 .결국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 들인다.

 

형은 전장의 영웅이 되어 간다. 그리고 형은 여러 곳에서 전쟁에서 공을 세워  태극무궁훈장을 가슴에 달게 된다. 동생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동생은 반드시 함께 살아 돌아가야 한다며 거부한다. 그 와중에 방첩대에게 공산당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약혼녀 영신이 두 형제가 보는 곳에서 죽게 된다. 동생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기를 애쓰지만 후퇴하는 전장에서 동생이 불에 타 숨진 것으로 잘못 알게 되고, 약혼녀 마저 잃은 슬픔으로 형은 북쪽 인민군이 되어 나타난다....

 

유일무이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룬 6·25전쟁 이야기 하지만 좌·우익의 극단적인 대립을 뒤로 하고 9000겁에 한번의 확률의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형제를 통해 형제애를 유감없이 나타내는 것이다. 또 영화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힘든 전쟁 속에서도 형제는 일만분의 일의 확률의 인연인 홀어머니를 향한 가족애까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분단 상황이라는 한국의 상처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념의 문제를 넘어 형제애와 가족애를 보여준  '인간적인 이야기'로 최고의 감동을 주고 있다.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에게는 과거로부터 아픈 기억,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는 간접적으로 보여 지는 전쟁의 아픔을 보여 줌으로써  영화 상영 2시간 20분 동안 내내 누가 먼저 랄 것이 없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영화 상영이 끝난  무대 스크린은 죽음을 의미 하는 것인가  검은색으로 마지막을 알리고 있었다. 검정  스크린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숨소리 조차 내지 않고 의자에 앉은채 몇분이고 거동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동생을 살려서 집으로 보내기 위해 전쟁의 중심에 나서 길을 자처하는 형과 그런 형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동생과 갈등은 남과 북을 가른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린 반드시 함께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동생의 절규에

"내가 무엇 때문에 죽기 살기로 뛰어 다녔으며, 너만 집으로 보낼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형은 소리치며 대답한다.

형은 왜 나만 생각하냐고 반문하면서,  고향에 계신 엄마랑 영신누나 생각을 해 보라고 애원하는 동생에게

"탱크를 무찌르라고 하면 무찌르고 자폭하라면 자폭도 할 수 있으면 할거야. 너가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 형이 선택한 일이야."면서 동생을 향한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배어 나오는 우리들 어머니 모습은 막바지까지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고 있다.

전쟁이 있기 전  아버지 제사를 올리는 두 자식을 대견스러운 듯 그윽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모습, 어머니께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맞춤법 틀린 형의 편지에서, 강제 징집되어 가는 대구 역사 앞에서 두 형제를 보내며 소리 없는 울음 소리를 내는 어머니, 살아 돌아온 한 아들을 안고 또 다시 소리 없는 울음 소리를 내는 어머니..

 

[ epilogue ]

 

실화로 만들어진  1971년 사건 '실미도' 영화에서도 죽음과 같은 상황을 맞는 훈련병 역시 빛바랜 어머니 사진 한장으로  모든 어려움을 겪어 낸다.

 

보잘것 없고 초라한  백발의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영화 속 형제의 어머니 모습처럼  모든 자식들에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 마음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 가족회귀 귀거래사(歸去來辭)인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삶이 힘들지라도 즐거울지라도 가족은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가족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절절한 사랑 가족애와 형제애로 말이다. 어머니들이 형제끼리 제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힘주어 말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에 비친 그들을 위해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을 소리 내고 있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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