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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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날에
<제삿날에>
시할아버지 제사때문에 시댁에 내려 갔다.
게으름 피우느라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해 제삿날 아침까지 컴퓨터앞에 앉아 글을 쓰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달려나가느라 세수도 하지 못한 채 터미널로 향했다. 시댁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시간도 훨씬 지난 오후 2시. 이미 동서가 와서 부침개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앞치마를 둘렀다. 명색이 큰며느리가 되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은 것이 못내 미안했다. 몹시 배가 고팠지만, 감히 밥을 차려먹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피곤한 기색의 동서 보기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을까.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나가자 시어머니가,
"밥솥에 밥 넣어 두었다. 먹고 해라."
하셨다.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나는 볼이 터지도록 크게 상추쌈을 싸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음...정말 상추 부드럽다...쌈장도 정말 맛있네요? 이거 어떻게 만들어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데, 어느새 곁에 오셨는지 시아버지가 물한컵을 떠다 주시며, 체한다...천천히 먹어라...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나의 어머니...아버지... 언제부터인가 시부모님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셨다.
점심을 먹은 후 부지런히 음식 준비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부침개를 만들고 청소를 하고...그 중간에 커피를 끓여 식구들에게 서비스를 하고...그렇게 힘든 제사 준비가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이제 밤 12시 제사까지는 한숨 돌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시장을 보시고 준비를 하신 시어머니, 나보다 먼저 와서 더 많을 일을 한 동서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또한 허리가 부셔지게 아팠다. 그 모든 피곤을 털어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되었다.
바로 가까운 온천으로 목욕하러 가는 시간이다. 시댁에 올때마다 가장 행복한 시간. 두 동서는 그 곳에 살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이 없겠지만 어쩌다 한번씩 가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설레이는 시간이다. 나와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손수 운전하신 차를 타고 온천으로 향했다. 저는 1시간 반 할거예요. 어머니 먼저 가세요, 그러면서 나는 이층 사우나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일하느라 피곤했던 기억마져 깨끗이 씻겨져 나갔다. 그래, 바로 이거야...내가 시댁에 올때마다 행복했던 것은 일 끝난 후 온천물에 담글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어. 온천 가까이에 시댁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내돈 들여 일부러라도 갈 온천인데, 제사와 목욕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서 내내 행복했다.
나는 막내로 자랐다. 공부만 하느라 막 결혼했을 때, 라면도 끓일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장손 며느리로 시집을 왔을 때, 시댁의 연례 행사를 감당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제사 음식 만드는 것이 그랬고, 명절과 생일, 결혼식 등등의 행사가 그렇게 분주하고 힘들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을 치를 때마다, 내가 꼭 일하러 팔려 온 사람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힘들고 무의미했던 것이 바로 제사였다. 나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분을 위해 뼈빠지게 음식 준비를 해야한다는게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열렬한 페미니스트는 아니었지만 가부장제적인 전통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혼 초에는 무척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집에 시집와서 말없이 일을 하던 올케 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올케가 우리 집에서 정성 들여 일을 했듯 나도 시댁에서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마음을 담고 정성을 담아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 속에서 평화와 따뜻함이 내려 앉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15년을 살면서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후 시댁이 나의 집이 되었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할아버지가 나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마음 한 번 돌리니까 평화가 찾아왔다.
온천에서 나는 갑자기 찾아든 행운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처럼, 열탕과 사우나탕을 오가며 마음껏 온천욕을 즐겼다. 104℃의 사우나탕안은 후끈후끈한게 몹시 뜨거웠다. 바닥에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렇게 여러차례 사우나와 열탕을 오고간후 마무리를 하기 위해 샤워기가 있는 벽쪽에 앉았다. 조금 나른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잠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등 미셨어유?" 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육십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예요. 제가 밀어드릴께요."
그러면서 나는 지친 몸을 일으켜 그 분의 등을 밀어 드렸다. 마치 엄마 등을 밀듯이 정성들여 꼼꼼하게 밀어드렸다. 엄마 살아 계실 때, 단 한번도 내 손으로 등을 밀어드리지 못했던 나. 엄마...미안했어요. 대신 이 분이 오늘은 엄마가 되시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나는 마지막 비누질까지 해드리며 때를 밀어주었다. 때가 밀리면 물을 뿌려 닦아 주고 다시 때를 밀며, 마치 나는 엄마 제삿날에 제사상을 닦듯이 그렇게 등을 밀어드렸다.
"아이고, 젊은 색시가 어쩜 그리도 등을 잘 민대유?"
마지막 물을 끼얹고 옆에 앉았을 때 파마 머리를 한 건장한 그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자, 이리 등 돌려봐유. 이번에는 내가 밀어줄께유!"
그러면서 그 분은 내 등뒤로 가서 섰다. 나는, 아니예요, 저는 됐어요, 안밀어도 되요, 라고 했지만,
"아, 사양하지 말아유, 내가 싹싹 밀어줄께유...이래뵈도 가진 건 힘밖에 없는디."
나는 원래 피부가 약해서 이태리 타올로 때를 밀지 않는다. 그런데 사양하는 나의 모습이 그 분에게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미안함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분은 건장한 모습만큼이나 씩씩하게 내 등을 밀었다. 나는 등이 너무 아파서, 이젠 됐어요, 그만 해도 될것 같아요. 라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그분은, 가만 있어봐유, 아이고 무슨 놈의 피부가 꼭 어린아이 같디야? 하시면서 더 세게 밀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등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았다. 몇차례의 사양과,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아주머니의 배려 사이에서 어느 덧 등의 통증이 극에 달했을 때 그 분의 보시가 끝났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몸을 헹구었다. 등은 그분의 자신감있는 목소리만큼이나 완벽하게 때를 민 탓인지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매끈했다. 대신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아이고, 이런... 거울에 등을 비춰보니 여름날 바캉스 다녀온 사람처럼 벌겋다.
나는 훈장같은 등의 상처위로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싸아한 밤공기가 시원했다. 올 때만해도 훤하던 세상에 짙은 어둠이 내리고, 화려한 불빛은 그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눈부신 불빛 때문에 바닥에 가 닿지 못하는 어둠은 마치 하강을 기다리는 비행기처럼 공중을 맴돌고 있었다.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살다 가리라...비록 등이 불에 데인것처럼 쓰라리고 따갑더라도, 짜증내지 않고 즐겁게 받아 들이리라...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 내가 어쩔 수 없이 가슴 아프게 했던 모든 사람들. 그 마음들에 일일이 변명하지 않더라도 오심(吾心)이 여심(汝心)이라던 말을 믿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리라. 내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인데...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2004년 2월 20일)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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