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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쓰지 않는 기독교, '선교'를 못쓰는 불교...

  • 입력 2004.02.20
  • 수정 2024.11.19

기독교 순복음교회가 발간하는 종합일간지 ‘국민일보’내에서  ‘화두’ ‘이심전심’ ‘삼보일배’ 등 불교용어를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자들로 구성된 지면 쇄신위원회가 반기독교적 내용이 아니면 종교금기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출했는데  편집국 분위기는 대환영이라고 한다.

 

 

 

국민일보는 불교용어 외에 붉은악마, 메카 등의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불교관련  문화재, 샤머니즘적 전통과 민속문화, 스님들의 열반, 통일교 관련 체육행사 등도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미디어오늘’ 인터넷판을 통해 알려졌다. 국민일보 편집국의 이같은 방침은 신문 운영 특성상 기독교계의 허락이 없으면 시행이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일로 인해 기독교계 신문의 타종교 보도 방침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불교신문도 그와 비슷한 보도원칙을 갖고 있다. 기독교 측에서 주로 사용하는  ‘부활’ ‘선교’ ‘회개’ 등은 가급적 다른 용어로 대체한다. 물론 이같은 표기준칙을 명문화하지는 않았다. 간혹 신입 기자 중에서 이런 용어를 무심코 쓰다가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랑’ ‘소망’ 같은 단어도 기독교 용어가 아니냐며  항의하는 독자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현재 우리가 쓰는 단어를 놓고 보면 불교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국민일보가 몇몇 불교용어를 금기어(禁忌語)로 정했다고 하지만 엄밀하게 적용하면 국민일보는 한글 신문을 발간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의 기원을 따라가면 불교에서 나온 용어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할일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을 일컫는  ‘건달’은 불교의 이상세계인 수미산(須彌山)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하늘 나라의 음악을 책임진 신(神)이다. 이 ‘건달바’가 광대의 의미로 쓰이다가 불량배라는 뜻으로 변했다. 집안과 밖을 이어주는 ‘현관’은 원래 선(禪)의 세계에 들어서는 시작이란 의미의 불교용어다. 처음에는 선종 사찰의 객전(客殿)에 들어가는 입구를 일컫다가 오늘날 집안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다. 구약성경에는 다윗이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장부의 원 뜻은 위대한 사람 즉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낮에 먹는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다는 뜻으로 <금강경>과 관련이 있으며,  불교의 보살을 일컫는 ‘상사’(현재는 직장에서 상관을 가리킴), 강원에서 예습할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던 ‘산통깨다’를 비롯 말세, 살림, 야단법석 항복 등 불교에서 나온 단어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의 지명도 대부분 불교에서 나왔다. 이는 신라시대에 들어온 불국토 사상 때문이다. 즉 이 땅이 바로 불보살이 상주하는 국토라고 여겼던 신라인들에 의해 전국 산천에 불교식 지명이 붙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법기보살이 상주한다는 금강산과 일만이천봉은 법기보살이 일만이천의 보살을 거느리고 있다는데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거제도는 지옥중생을 제도한다는 지장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지장보살의 본원력 즉 중생들을 크게(巨) 제도(濟) 한다는 뜻에서 나온 지명이다.

 

 

 

 <80화엄경> 「보살설계품」에 나오는 유명한 사구게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응관법계성(應觀法界?)/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일 삼세의 모든 붓다를 알고자 한다면/마땅히 법계의 본성(本?)을 관(觀)해서/일체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었음을 알아야 한다)에서 남해의 아름다운 섬 ‘욕지’가 나왔다. 이 사구게는 조계사 대웅전 어간(御間, 스님들이 드나드는 문) 주련에 담겨있다.

 

 

 

우리가 쓰는 말이나 지명 속에 불교가 스며든 것은 불교가 1700여년간 우리민족의 문화 사상을 철저히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가 사용하는 '선교'나 '사랑' '소망' 등도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기독교가 100여년전 이 땅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용어를 차용해서 쓴 것 뿐이다. 특히 '선교'는 단어는 불교가 기독교에 '빼앗긴' 대표적인 용어다. 불교에서 쓰는 ‘포교’는 일본의 대곡파가 부산에 포교당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즉 우리 불교는 우리 단어는 기독교에 내어주고 일본이 불교를 한국에 알린다는 뜻에서 사용한 일제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어 속에는 역사와 사상이 담겨 있다. 이제 100년이 조금 넘은 외래 종교가 아무리 교세가 뛰어나더라도 1700 여년간 민족과 함께 고락을 같이해온 불교를 뛰어넘기는 힘들다. 그 많은 불교용어를 없앨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 불교용어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하지만 지금은 불교용어라고 해도 ‘선교’처럼 다른 쪽에서 자꾸 사용하게 되면 주인은 금새 바뀐다. 더군다나  불교신자들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관습 말 속에 배어있는 불교를 너무 모른다.

 

 

 

  불교신문 등에서 몇해전부터 사라져 가는 불교용어를 찾아 소개하고 있지만 신도들이 찾아서 읽고 깨치지 않는다면 이 모두 허망한 노릇에 불과하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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