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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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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저승길

  • 입력 2004.03.02
  • 수정 2024.11.25

때르릉∼

 

새벽 4시경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친정집 오라버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임종하실 것 같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황망하여 집을 어떻게 나섰는지 모릅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어머니는 이미 사지가 축 늘어진 채 거의 의식이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담당의사는 아무래도 오늘을 못 넘길 것 같으니 집에서 임종을 맞게 하고 싶으면 가족의 동의하에 퇴원을 시켜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앰뷸런스를 부르고 어머니는 당신이 사시던 절(당신의 평생 원으로 창건)로 모셔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신 지 50여일만이었습니다.

대장암 말기였던 어머니의 그때 연세는 여든 한 살, 암진단을 받으신 지는 거의 1년쯤 되어가던 즈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든 살 되시던 해 초봄 어머니는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고, 담당의사가 수술을 권하자 "이만하면 살만큼 살았는데 무슨 수술이냐"며 "몸에 칼을 대면서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시며 완강하게 수술을 거부하셨습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단호한 말씀에 담당의사도 가족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암진단을 받으시고도 어머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계속해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 늦가을에는 아들이며 딸, 며느리 사위들(어머니는 팔 남매를 두셨으며, 그 중 한 분은 스님)과 함께 팔순을 기념하여 제주도 여행을 하며 무척 행복해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모두들 "그 연세에 수술을 하지 않길 참 잘했다"며 "만약 수술을 했다면 지금까지 병상에 계실 지도 모른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흘간은 큰아들네 집에 머무시면서 그 동안 못다받은 효도를 받으셨고, 음력으로 그믐날 절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초하루 아침부터 곡기가 끊어지신 채 물 한모금조차 넘기기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장 전체에 퍼진 암세포로 인해 배는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고, 병원으로 모셔진 어머니는 더 이상 회생불가능한 상태에서 진통제와 영양제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를 50여일, 20년 이상을 공양주겸 법당보살로 살아오셨던 어머니는 다시 절로 오신 것입니다.

 

절에 오신 어머니는 11시경 기적처럼 깨어나셨습니다. 사실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영양제와 진통제로 50여일간 연명하셨지만 암세포로 인해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대장으로 인해 그야말로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복수가 찬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의식이 깨어난 어머니는 변을 보고싶다고 하셨습니다. 깨끗하게 대장 청소를 하듯 얼마나 많은 변을 한꺼번에 쏟아놓으셨는지 모릅니다. 정말 시원하다며 다시 자리에 누우신 채 담담하게 저승 갔다온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저승 가서도 결혼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강 건너 이층집을 깨끗하게 수리하시기에 강을 건너야 했는데 뱃사공이 나에게로 오는가 싶더니 배만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냥 가버리지 뭐냐.

그때 마침 부처님이 나타나시길래 '부처님 너무 고통스러우니 나 좀 데려가주세요.'하자 '이 생의 고통을 저승까지 끌고 가려고 하는가. 이생의 고통은 이생에서 씻고 와야지'하시더라. 아무래도 내가 아직 갈 때가 아닌가 보다."

 

온 몸이 늘어지고 혀가 굳은 상태에서 물 한 모금조차 넘기시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너무나 분명한 의식상태에서 평상시처럼 말씀을 참 잘하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기적이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얘야 큰며늘아! 이 집에 일찍 시집와서 많은 가족들 속에서 고생 많았다. 둘째 며늘아! 내 팔목이 가늘어서 빼두었던 팔지 두 칸 장농서랍 두 번째 칸에 손수건으로 싸두었으니 끼어서 네가 써라. … 네째 사위 자네는 늘 다리가 아픈데 내가 저승갈 때 그 아픔 다 가지고 가고 싶네… ” 심지어는 당신의 한복 중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이 있는데 누구를 주라고까지 하셨습니다.

 

듣고 있던 가족들은 하나둘씩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너무나 담담하게 "애들아! 그렇게 울지 말아라.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 니들이 그렇게 울면 내 갈 길을 막는 것이니 울음을 그치도록 해라"며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을 다하셔서인지 더욱 편안해진 어머니는 그 후 몸속에 있는 모든 이물질들을 다 비우신 채 말끔하고 가벼워진 모습으로 13일을 더 계시다가 아무런 여한도 없이 눈을 감으셨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그 순간에도 부처님께 삼배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누우신 상태지만 힘겹게 두 팔을 올려 합장을 세 번하시고는 이생을 하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3년 전 춘삼월, 이제 막 얼음도 녹고 봄이 오는 길목에 어머니는 당신이 가셔야 할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유난히도 베풀기를 좋아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한 생을 정말 열심히 사시면서 잡을 줄도 알았지만 과감하게 놓을 줄도 알았던 우리 어머니!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원래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으셨지만 언제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셨는지 단촐한 옷가지며 서랍장까지도 너무나 말끔히 정리해두셨습니다.

 

어떻게 왜 이 세상에 왔는 지,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중생살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여든 한 살! 딱 알맞은 연세에 가실 때와 장소를 분명히 알고 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저승길은 소풍가는 그 길처럼 정말 흥겹고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엄마! 내 말이 맞죠?”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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