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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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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명의 소리

  • 입력 2004.03.02
  • 수정 2024.11.15

  천태산 영국사에는 1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은행나무 오른 쪽과 앞으로는 산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린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있습니다. 이 물들은 은행나무 앞에서 한줄기로 합쳐져 흐르는데, 남고개 쪽에서 흘러내린 물들과 북고개 쪽으로부터 돌아 내려온 물들이 한 몸을 만들면서 큰물을 만들어 나갑니다.  

  은행나무 앞에는 망탑봉을 향해 소신 공양을 올리고 있는 듯 납작 엎드린 다랭이 논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물은 이곳으로부터 100여 미터를 흘러가다가 다랭이 논들이 끝나는 계곡 아래로 떨어져 나아갑니다. 저 오랜 세월 동안 은행나무는 천태산을 품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은행나무는 천태산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사를 드러내주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절을 절답게 하는 은행나무는, 영국사의 내력에 대하여 모든 것들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객관적 실체입니다.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살아 있는 천연 부처인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은행나무 곁으로 다가갑니다. 영국사에 거처를 마련한 이후 은행나무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은행나무와 함께 한 시간들 속에 시가 들어 있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같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듯이 나에게도 은행나무는 삶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겨울의 끝에는 봄이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와 경칩에 이르면 얼어있던 물상들이 깨어나 기지개를 폅니다. 산과 계곡의 얼음장이 풀리고, 은행나무 앞 다랭이 논에서는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합니다. 만물이 새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저 울음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려고 은행나무 곁으로 갑니다.     

 

           

  이른 봄날 영국사 은행나무 곁으로 간다

  검둥개도 따라 간다

 

  우수 지나 경칩

  먼저 우는, 큰 울음 울기 위해  

  산그늘 아래 우뚝 귀를 세운다 

  하늘 우러러,

  길 따라 마을 따라

  천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 애끓는 은행나무의 울음

 

  어둠 뉘이고

  不問曲折, 마을과 사람을 감싸안고      

  황소 눈으로 운다

  누구 그 울음 따라 운다

  나뭇등걸 한 가운데로 운다

  검둥개도 운다

  새벽이 올 때까지   

  엎드려,

  나무 밑둥으로 운다     

 

  언 계곡 물줄기 꼬리를 풀며 울고  

  무논의 개구리도 알집으로 운다

 

  천태산 국사봉에서

  망탑봉 지나 누다리

  뜨거운 천둥 번개 개똥 소똥으로 운다     

                                              ― 양문규,「은행나무 곁으로」전문

 

   

  저 늙은 은행나무는 봄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파란 순이 돋아납니다.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함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여름이면 푸른 물이 짙게 배어 있는 작은 부채 모양의 잎들이 바람을 친구 삼아 흰 그늘을 내려줍니다. 그 그늘은 사막을 걷는 낙타가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동화 속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꿈의 궁전을 펼쳐줍니다. 비로소 은행나무는 생의 절정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잠시입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면 은행나무는 산중의 폭설 속에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묵상의 시간을 가집니다. 동안거에 들어가 있는 수도승처럼 묵묵부답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입니다. 

  영국사에 머물고 있는 동안 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풍문으로 듣던 은행나무 울음을 들은 것입니다. 한달여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그 소리와 함께 하였습니다. 해가 천태산 넘어 서해바다 무창포 검은 물밑으로 떨어질 무렵 이미 영국사는 어둠에 묻혀 있습니다. 그때 나는 능구렁이 울음 같기도 하고 황소 울음 같기도 한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도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공양을 끝내고 포행에 나섰습니다. 동안거를 끝내고 잠시 영국사에 머물기 위해 오신 원묵 스님과 함께였습니다. 다랭이 논에서는 겨울잠을 깬 개구리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큰 울음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은행나무 곁에서 우는 소리 같았습니다. 우리는 처음 그 소리를 황소개구리 울음으로 치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고개까지 걸으면서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나는 황소개구리를 보거나 울음을 들은 적이 없지만 그 심각성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 황소개구리 울음은 아닐 것이라 단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깊은 산중에까지 올라올리 없거니와, 만약 황소개구리라면 아직까지 그 소리를 못 들었으리 없기 때문입니다.

  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은행나무 곁에서 멈춰 섰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울음소리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별안간 울타리 넘어 들어가 은행나무에 귀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나에게 손짓으로 어서 다가와 은행나무에 귀를 대보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신비롭기보다는 무서운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국사 은행나무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울음과 관련된 전설은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아픔을 더해주는 것입니다. 은행나무가 울면 그것은 곧 국난이나 국상 등 나라의 재난을 예고하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상잔의 비극을 안겨준 6·25 동란, 고 육영수, 박정희 내외가 죽었던 해에도 은행나무는 어김없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전설을 믿지 않습니다. 은행나무의 울음은 어떤 재난이나 환난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봄을 알리는 전령, 생명의 소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봄입니다. 산중의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몰아치지만 한낮의 바람은 봄날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무릇 봄은 소리의 계절입니다. 소리는 생명의 눈을 틔웁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러 은행나무 곁으로 갑니다. 검둥개도 따라갑니다. 하늘 우러러, 길 따라 마을 따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 애끓는 은행나무의 울음을 듣기 위해 은행나무 곁으로 갑니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천년을 넘게 중심을 잃지 않고 서 있습니다. 나뭇등걸 속에 울음을 내장하고, 더 큰 울음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 봄 내내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은행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소리였습니다. 누대에 걸쳐 좌절과 절망을 제 울음으로 감싸고 누군가에게 사랑과 꿈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나의 삶에도 큰 울음이 배어 있길 바랍니다. 내가 오늘 다시 은행나무 곁으로, 그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다가서는 것처럼 먼 훗날 누군가도 나처럼 또 은행나무 곁으로 다가서길 소망합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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