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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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을 위한 동안거 ~ 열네번째 이야기
3월의 따스한 봄빛과 함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한결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달이다. 어느덧 생활인을 위한 동안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꽃샘추위가 가는 겨울이 못내 아쉬운 듯 아직은 제법 쌀쌀하다. 2004년 3월 2일, 보현행원을 강의해 주실 이종린 거사는 자신을 순수한 아마추어라고 소개하며 안내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겠다고 서두를 밝혔다.
“왜 깨쳐야 하고 수행을 하는가 하면 인생이 괴롭기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불교에서는 그 해결 방법으로 성불하여 부처가 되는 거라 했습니다. 부처가 되는 여러 방편의 수행 중에 가장 전통적으로 인정받는 성불법이 바로 견성성불입니다. 즉 본성을 바로 알아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본래 고향인 부처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수행에 있어서 부처 자리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인 방편요소에는 부처, 중생, 수행이 있는데 수행이 쉽지 않은 이유는 깨닫기가 어려운 수행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의 업장이 많고, 수행의 택법이 잘못되어서인 경우와 수행 자체의 난이도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 수행의 일반적인 어려움은 보편성의 문제와 특정한 장소와 때, 눈 밝은 스승이 필요하고 전문가 위주의 프로를 위한 수행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들이 할 수가 없는 수행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입니다. 대체적으로 나의 괴로움만으로 되어 있어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현행원은 언제 어느 때이건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습니다. 칭찬으로 사회가 달라질 수 있으며 보현행원은 억지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보현행원입니다.“
수행에도 어두운 수행과 밝은 수행이 있는데, 구하는 수행을 하게 되면 수행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밖에 있다하여 밖에서 찾아도 어두워지는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선지식들이 마음은 모두 내 안에 있다고 했으며 하심, 하지 말라, 집착하는 것도 어두운 수행이다.
“보현은 하심 대신에 공양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라는 마음으로, 밝은 마음으로 이끌어야 하며 공경을 하다 보면 팔정도의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게 되며 공경, 수순, 회향하다 보면 아상을 저절로 없애고, 지계를 강조하지 않아도 계를 안지킬 수가 없게 됩니다. 종교가 이론적으로 그럴 듯해도 현실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 허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생의 눈물과 고통을 닦아주지 못하면 불교가 아닙니다.”
발심과 올바른 수행을 하지 못하면 힘없이 살게 된다고 한다. 보현행원은 모든 수행의 종착지이자 재출발의 시점이라고 했다. 모든 수행은 부처님으로 시작해서 부처님으로 끝나야 하고, 설사 부처님이 아니었더라도 종국에는 부처님 품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야 하며 그래야만 수행이 원만하고 완벽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부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염불은 부처님 자리로 바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참선 수행을 많이 했어도 부처님의 공덕과 가피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니 법성게를 지으셨던 화엄승인 의상대사께서도 그렇게 기도를 많이 올렸던 겁니다. 용수보살께서도 염불을 강조했고, 병중에 계셨던 몽산스님께서도 참회와 발원 속에서 기사회생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업장만 될 뿐이며 보현행원은 깨달음의 다음 행위입니다. 깨치고 나면 섬기고 공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깨달음이 끝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 끝이어야 합니다. 중생의 삶은 성처투성이며 상처를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누구나 깨닫습니다. 다만 깨달음의 시간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은 단지 우리보다 조금 빨리 깨달았을 뿐입니다. 내 생명은 부처님과 같은 생명이며 내가 부처이기 때문에 남을 섬기고 공양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깊이 행할 때 조견이 오온함을 알아 일체 고액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처님 말씀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행이 없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원입니다. 화엄경은 원으로 가득 찬 경입니다. 하엄경의 꽃(화)은 생명을 의미하여 그 생명은 진리를 상징합니다. 부처님은 생명으로 나타난 진리이신 분입니다. 원은 완벽한 나침반의 역할을 합니다. 원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행원입니다. 재가자들은 우리의 삶 자체를 수행의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출가자는 출가자 방식으로 성불하고, 일체 중생은 재가자식으로 성불을 하면 됩니다. 삶 자체가 거대한 행원 도량이며 고달픈 나의 삶 자체를 화두로 삼아 용맹정진하면 됩니다.
보현행원의 구성은 예경예불, 칭찬여래, 광수공양, 참회업장의 네 가지로 기본행원인 신해와 수희공덕, 청전법륜, 청불주세, 상수불학, 수순중생, 보개회향의 응용행원인 행증이 있습니다. 신해, 즉 믿음을 일으키는 것에 해당하며 불교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깊은 믿음과 눈앞에 나타나는 지혜로 믿고 이해하는 것을 시작합니다. 올바른 믿음은 신해행증이 같이 가는 것이며 맹신은 신해행증이 따로 노는 것입니다. "
절망, 고통, 상처가 있는 자리에서 부처님을 보아야 하며 모든 행의 근본은 공경으로서 공경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모든 잘못의 대전환점은 참회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수행이 깊어지면 남의 허물을 보지 않게 된다. 또한 수희공덕으로서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보현에는 반드시 원을 붙여서 행하고, 우리 모두의 삶은 보현행원의 근간이 되며 내 삶으로 보현행을 지어 나가면 된다고 했다. 부처 자리로 돌아가서 부처의 눈으로 보라 했고, 내 깨달음,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니 내 고통만을 안타까워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상구보리를 하고 나서 하화중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 둘이 함께 행해져야 한다고 한다. 보시란 말이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높은 자가 낮은 자와 못난 자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공양은 그러한 마음 없이 모시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양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 더욱 와 닿는 강의였다. 보현행으로 보리를 이루길 바라며 깨달음의 자리로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로서 늦은 시간의 강의가 끝났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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