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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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제야의 종, 조계사 범종의 슬픈 역사
보신각에서 진행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셨을 겁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한번 쯤은 생각해 보았을 문제가 있습니다. ‘왜 보신각에서 칠까? 언제부터 했을까? 종은 몇 번이나 칠까?’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조계사 범종이 제야의 종으로 처음 사용되었던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저도 이순우의 글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근대 우리나라에서 제야의 종 최초 시발은 경성방송국에서 1929년 1월 1일 시작하였고, 행사에 쓰였던 종은 다름 아닌 지금 조계사 대웅전에 보존되어 있는 바로 그 ‘범종’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성방송국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은 당시에 범종이 ‘상원사 동종’이라는 이름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처음으로 사용할 만큼 상징성이 있었겠지요.
조계사 범종, 일제시절 국보로 지정
조계사 범종이 있었던 사찰은 양평 상원사였습니다. 1907년 상원사가 불타버리자 남산에 세워진 일본 불교 사찰인 동본원사(東本願寺) 별원으로 이전됩니다. 이전 과정의 여러 문제가 후에 상원사 동종이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다시 해제되는 비운의 시발이 됩니다. 일제가 상원사 동종을 이전시키려 하자 (동종을 일본으로 반출되는 시키고자 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차례 방해하였으며 급기야 헌병의 도움을 통해서 서울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범종이 국보로 지정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으로 추청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계사 대웅전에 모셔진 종을 보더라도 보통의 우리나라 종과 모습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일본종과 유사하다고들 합니다. 종의 가치에 대하여 논란이 있지만 『① 황수영 박사처럼 ‘본래의 상원사’ 종은 일본으로 반출되었거나 없어졌으며, 현재의 조계사 범종은 가짜다 ② 범종이 중국으로부터 건네와 우리나라 전통 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형식의 종이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③ 일본 학자가 주장하는 것이지만 일본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온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종의 역사적 가치에 대하여 문외한인 제가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계사 범종은 일제 시절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1929년 제야의 종 행사가 처음으로 시발될 때 사용되었으며 , 해방이 된 1962년 ‘일본인들이 만든 가짜 종이다’라는 판단에 의하여 국보에서 제외되는 흔치 않는 아픔을 지닌 문화재로 현재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야의 종 최초 시발이 현재 조계사 범종이라면, 어디에서 울렸을까? 현재의 보신각이 아닌 남산에 있었던 동본원사 별원이었 겁니다. 경성방송국이 라디오 방송이었기에 굳이 범종을 옮길 필요가 없었고, 방송은 이후에도 종소리를 바꾸어 가면서 제야의 종 행사를 진행했을 따름이기에... 범종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지금은 일상화된 ‘제야의 종’ 행사가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제야의 종은 현재의 보신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아침을 알리던 보신각 원각사 종
매년 초에 이루어지는 제야의 종 행사가 우리나라 전래 풍속인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본 사찰의 풍속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우리나라 사찰에 범종이 걸려있지만 아침 28번, 저녁 33번 칩니다. 제가 과문한지 그믐에서 신년으로 넘어가는 저녁, 사찰에서 종을 친다라는 것은 생소한 것같습니다. 오히려 일본 사찰에서는 그믐날 저녁에 107번, 새해 들어가는 시간에 1번 하여 108번의 종을 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던 제야의 종은 일제시대에 행해졌고, 해방 이후 어느 때부터 관례화된 행사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조선시대 운종루라 불리웠던 지금의 종로 보신각에서 이루어집니다. 운종루라 불린 이유는 당연히 그곳에 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복궁안에 모셔진 원각사 종이 지금의 보신각 자리 근처에 수백년의 역사를 지키며 있어왔습니다. 보신각이란 이름도 1895년에 현액된 것이고, 이전에는 종루(鐘樓), 종우(鐘宇)라 불리웠다 합니다. 사대문의 열고 닫음을 소리로 알려주던 기능을 기나긴 조선 시대의 대부분 시간을 차지했었습니다.
본디는 사찰에서 시작과 끝을 알리며 웅장한 소리로서 중생을 제도하던 조계사 범종과 원각사 범종, 지금은 조계사 대웅전과 국립박물관의 한켠을 차지하며 세월의 인고를 회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 종간의 역사적 만남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제야의 종’이라는 어색한 인연을 통하여 조우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이순우, 제야의 종 꼭 쳐야하나? www.ohmynews.com
남천우, 한국종 형식의 발생과정과 조계사 범종이 차지하는 위치,
역사학보 Vol.53, 역사학회, 1972
김형규, 조계사종 위작인가 진품인가, 조계사보 2001년 7-8월호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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