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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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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행사

비우고 쉬는 공부가 선

  • 입력 2004.03.14
  • 수정 2025.01.15

■현산 스님

 

1943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 화엄사 조실 도천 스님을 은사로 19살(61년) 때 출가, 64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경봉 동산 전강 스님 등 한국 근ㆍ현대 대표 선지식들을 두루 모시고 공부했으며, 이후 40여 년 동안 범어사 용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 정진했다. 6년 전부터 화엄사 선등선원장을 맡아 수좌들의 공부를 이끌고 있는데 자상한 법문으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노동을 통한 선 수행을 하고 있는 금산 태고사 조실 도천 스님의 ‘선농일치(禪農一致)’의 가르침을 받아 직접 목장갑을 끼고 절 살림살이를 돌보며 수행하고 있다.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비우고 쉬는 공부가 선”

 

하늘의 해가 떠올랐다 지고, 또 계속 떴다지고 하면서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 사람은 금방 죽음 문에 당도합니다. 세월이 무상할 뿐만 아니라 이 삶이란 것도 역시 고달파서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법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석자(三尺)도 못 되는 땅에 내 몸이 묻힐 것을. 요즘에는 납골당이라고 해서 화장해 버리면 금방 한 줌 재로 변해 버립니다. 금생에는 이 몸뚱이가 나(我)라고 생각했지만 한 줌 재가 되어버릴 것 같으면 과연 어떤 것이 나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은 이 몸뚱이를 ‘나’라 하고, 보이고 들리는 것, 냄새 맛 느낌 생각이 조건 지어지는 것들을 ‘마음’이라 잘못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역대 조사 스님들은 말씀하시길, “이것이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고, 혀에 있으면 맛을 알고 몸에 있으면 촉감을 느끼고, 손에 있으면 물건을 잡고 발에 있으면 걷는다.” 아는 이는 이것을 ‘불성’이라 하지만 모르는 이는 ‘영혼’이라 부릅니다. 영혼과 불성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둘 다 알맹이가 없는지라 모습 아닌 모습 모습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바늘 하나 가져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처자권속이 많더라도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올 적에도 혼자 왔지만 갈 적에도 이렇게 혼자만 가는 것이 인생.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르게 사는 삶이겠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나 바른 삶이라는 것은 가장 가깝게 있는 나를 바로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잘 사는 방법입니다. 나를 모를 것 같으면 바르게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참 행복은 얻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대중 여러분은 오직 이 순간에 가장 가깝게 있는 내 면목을 깨닫는, 그런 법문을 듣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을 선(禪)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 선을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압니다. 컴퓨터다, 인터넷이다 해서 들어가 보면 갖가지 법문이 다 실려 있어요. 아는 것을 가지고는 절대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진리입니다.

 

 

오조년래적학문(吾早年來積學問)하야 역증토소심경론(亦曾討疏尋經論)이로다.

 

분별명상(分別名相)을 부지휴(不知休)하니 입해산사도자곤(入涇算沙徒自困)이로다.

 

 

이것은 영가현각(永嘉?覺, 675~713) 스님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영가 스님은 일찍부터 학문을 쌓아 공부를 많이 했고, 출가해서는 경론(經論)과 주소(註疏)에도 밝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인생 문제, 즉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명(名)과 상(相)을 분별하고 매일 이렇게 여러 가지를 알아봤자 바다 속에 들어가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아서 그칠 날이 없구나. 아무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 많이 듣고 알아봤자 소용이 없다, 이 말입니다.

 

아난 스님이 부처님 시봉을 40여 년을 했는데 부처님이 꾸짖기를 “네가 천 날 만 날 배우는 것이 한 날 참선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팔만 사천 대장경을 다 외우다시피 해도 결국엔 생사 문제를,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다. 금생에 비록 네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지만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렇게 부처님이 아난 스님을 꾸짖으신 바가 있습니다.

 

많이 안다고 해서 내 삶에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부처님 열반 후에 가섭 존자가 부처님 대를 이었는데, 고심하던 아난 스님이 가섭 존자에게 가서는 “사형님이시여, 금란가사 외에 어떠한 법을 부처님께 전해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난아.” “예”하고 대답하니까 가섭 존자가 하는 말이 “절 문 밖의 찰간(刹竿)대를 꺾어버려라. 네 묻는 것이 분명하고 대답한 것이 진실하니 바로 이 법을 전수받았느니라.” 이게 무슨 소리여? 찰간대를 꺾어버리라는 소리, 묻고 답한 것이 분명한 그 자리. 그 정도는 여러분이 법문을 하도 많이 들었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하려면 첫째,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이은 유명한 거사님이 인도에는 유마거사가 있고 중국에는 방거사라는 분이 있는데 방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있는 것을 비울지언정 비운 것을 채우려고 하지 말라.” 수많은 생각이 얽히고 설켜 한 찰나간에, 찰나라고 하는 것은 손가락을 탁― 튕기는 순간을 말하는데 우리 중생들은 한 찰나에 생각이 900번이나 일어났다 죽었다 한다 그래요. 그러한 중생념을 다 지우고 비워야 되는데, 그걸 다 비울 것 같으면 본래 물질이라는 것이 없고 마음이라는 것도 없어서, 물질과 마음이 없을 때 온전한 참 법계가 드러나고 내 마음자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 스님께서 육조혜능 스님(六祖慧能, 638~713)을 찾아갔을 때, “어떻게 이렇게 왔느냐?”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육조 스님이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하고 다시 물으니까 딱 막혀. 그 딱 막혔을 때 알 수 없는 그것이 이 몸을 끌고 다니며 법을 배우러 왔다는, 그 자리를 그렇게 공부하기를 8년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선이라. 그 ‘이뭣꼬’하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공부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래서 8년 만에 확철대오해서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답을 올렸는데 이렇게 많이 아는 것 다 지워버려야지,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오로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화두를 들었을 적에  그것이 공부에 바로 들어가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를 깨닫는 가장 빠른 길이요 가장 바른 길이 참선법이요, 부처님께서 역대 조사에게 전해준 법도 바로 이 법입니다. 화두 하나 잘 들어서 나 하나 바로 깨달을 것 같으면 더할 나위 없는 무한공덕, 무한지혜가 드러나서 현실의 삶 속에서 신심이 저절로 실해지고, 현실을 바로 보니 욕망과 그 증애(憎愛)에서 저절로 벗어나게 되고, 지혜심성이라, 마음 편안해지고 깨끗해지고 고요해지게 됩니다. 현실에서 자족을 못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도가 아니에요.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하야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한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무나니 세간상 이대로가 상주불멸이라. 세간사 이대로가 법이라.

 

부처님 법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서로 싸우고, 부부간에 자식간에 불화하고. 이게 무슨 도 닦는 사람이에요. 그건 바로 참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짓이에요. 진실로 허망한 것을 느껴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것을 다 하는 것, 이것이 법이라는 것이에요. 열심히 수행한 사람은 절대 싸우는 법이 없습니다. 다투는 일도 없고 항상 신심이 쓰이고. 그렇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을 상대하고 지혜가 드러나서 삿된 데 떨어지지 아니하고 욕심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법이에요.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마음이라고 하느냐. 잘 들어요. 내 말이 아니라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 <유심결(唯心訣>에 있는 말입니다. “무한한 지혜와 모든 공덕이 이 마음 가운데 다 들어 있느니라.” 그래서 이것을 마음공부라고 합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같이 증득한 것이 이 마음을 증득한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 표현한 것이 이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스님들이 찾아가는 것이 이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요 모든 역대의 조사가 전해준 것이 바로 이 마음을 전해준 것이로다. 천하의 총림에, 선원의 납자들이 참구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을 참구하는 것이니 온갖 것이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말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산산 수수, 싸우는 소리, 게송 읊는 소리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무한한 공덕과 능력이 넘치는 이 마음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몰라. 어려운 점이 생기면 생각이 복잡하고 혼동이 와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되지도 않고 여러 가지 걱정만 생기고 그럴 때 기도를 하긴 합니다만, 이렇게 바로 인생의 모든 고뇌에서 해탈하는 법. 이 부처님의 법 만나기가 그렇게 힘든 거예요.

 

여러분도 순간순간을, 하루하루를, 시간시간을 내 마음 깨닫는 데 전력할 것 같으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바로 깨끗하고 맑고 고요한 마음자리가 드러날 것 같으면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큰 보배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라는 것은 항상 눈앞에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게 아닙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지극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닦는 사람이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은 항상 큰 서원을 가지고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마음가짐, 넓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 중에 최고 가는 경전이 <화엄경>인데 <화엄경> 중에도 현실에서 바로 도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보현행원품’입니다. 이것을 보면 부처님은 자비심 덩어리입니다. 어떤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미워하는 바가 없습니다. 다 당신 탓이고 다 내 몸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게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되려고 하면 그런 마음을 현실에서 쓸 때에 가능합니다. 그럴 때에 현실의 삶 속에서 바로 번뇌가 끊어지면서 도가 발현하는 마음가짐이 넉넉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미우면 ‘저 사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하고. 사람은 그렇습니다. ‘아이고, 저게 인간이냐’ 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악한 중생도 다 자비심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감싸 안아서 부모가 자식 생각하듯이 감싸 안아서 간절한 자비심으로 말할 때 그 사람도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심을 현실에서 행할 적에 내가 편해지고 현실에서 사람들한테 이익을 줄 수 있고 그런 것이지, 밉고 독한 말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서로 싸우고 뜯고 하면 그 사람은 공부가 잘 안됩니다. 서원을 세우고, 모든 중생을 다 내가 건져주리다. 모든 사람을, 지혜를 대신 받아서 해탈케 해 주겠다. 그런 원을 가지면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훨씬 빠릅니다.

 

오늘 이렇게 인연 있는 법회에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한량없는 서원을 세우고 속마음으로 발원을 하면서 공부를 할 적에 공부가 더 빠르게 성취가 되고, 그때부터 가정에서부터 평화가 깃들게 되고 여러분 자신의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정리=권형진 기자

 

  

 

 

 

■‘묻고 답하기’ 현장

 

이날 법회에서는 유일하게 법문 후 질문이 없었는데, 현산 스님은 “열심히, 바르게 공부하면 질문한 것이 없는 법입니다”라고 웃으며 격려했다. 대신 법회가 끝난 후 공양 시간에 한 불자가 찾아와 개인적인 것을 물었다.

 

▲‘능엄주’를 열심히 암송하는 보살입니다. 평소 존경하던 서옹 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능엄주’ 구절 사이로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등 도무지 마음이 안정이 안 됩니다. 이 경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길을 알려주세요.

 

“형상적으로 스승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맑고 깨끗한 본마음을 드러내 내 안의 선지식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보살님의 경우 영이 혼이 되어서 들어있습니다. 빙의 현상입니다. ‘능엄주’를 하는 사람 가운데 보살님과 같이 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지리산에서도 여러 사람 삿된 길로 인도하는 이들이 있기도 했고요. 총기는 좋은데 현실에 끄달리다 보니 영이 들어온 것입니다. 속세의 탐하는 마음도 작용한 것이고요. 그저 열심히 참회하면서 보시행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맑고 깨끗한 본마음이 유지되도록 무심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기자가 만난 현산 스님]

 

 “평생 걸망 지고 다녔는데 걸릴 게 뭐가 있나요. 아직 힘도 있고.”

 

법회 시작 전 조계사 주지스님 집무실에서 잠시 만난 현산 스님에게 “어떻게 시봉하는 스님도 없이 혼자 올라오셨습니까?”하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스님은 “큰 차가 좋아” 법회 하루 전날 고속버스 타고 올라와 도봉산 밑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했다. 15~6년 전 은평구 수국사 이후 서울에서의 대중법문은 처음이라는 스님은 “양력으론 43년 3월 14일에 태어났으니까 세속적으로 치자면 오늘이 생일이네요”라며 봄 햇살처럼 수줍게 웃었다.

 

―출가는 언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였으니까 19살 때 했죠. 한문 선생님이 대흥사 스님이었는데, <능엄경> <반야심경>을 배우면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또 그때는 부정부패도 많고 깡패도 많을 때였는데, 깡패들이 시민들 괴롭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못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무술을 배워봤자 총 한 방이면 끝이고, 대자대비한 부처님 가르침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출가했지요.”

 

―수행담도 한 자락만 들려주시지요.

 

“경봉 스님, 동산 스님을 모시고 수행했고, 그 뒤 전강 스님 밑에서도 한 3년 공부했어요. 24살 때 구산 스님 모시고 있을 때는 조계총림 유나 소임을 맡기도 했죠. 비구계는 동산 스님한테 받았는데, 정일 스님, 무비 스님, 법주사 무상 스님이 그때 같이 받았어요. 그리고…, 출가하자마자부터 일찍부터 선방에만 다녔지, 뭐. 화엄사 선등선원장은 6년 전부터 맡고 있고.”

 

―가장 영향은 많이 받은 스님을 꼽자면….

 

“동산 스님은 열반할 때 있었는데, 말년에도 계행이 청정하고 신심이 대단하셨어요. 제일 소탈한 분은 전강 스님이었던 것 같아요. 선방에서만 오래 계셔서 그런지 소탈하고 구김살이 없고…. 법문도 잘 해 주시고,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은사이신)도천 스님은 천진하시고 사심이 없는 분이에요. 세속의 일은 관여를 안 하시고 공부하고 일밖에 모르시죠. 낮에는 울력하고 저녁에는 참선하고…. 구산 스님도 원력이 대단하신 분이었죠.”

 

여기까지 말하다 스님은 “스님들 모시고 살아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혹 스승에 대한 평가로 세간에 잘못 전해질까를 걱정한 듯하다.

 

법회 끝머리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실 거냐고 묻자 스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법상에서는 그런 얘기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개인적 자리에서 얘기할 수는 있지만 법이란 정치적 거래가 있어서는 안 돼. 그러나 잘 될 거야. 국민들이 깨어있고 다 알기 때문에.”

 

 

 

정리: 현대불교신문 권형진기자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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