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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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속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처소는 일자식 대나무집 입니다. 몇 년 전 계월암 불사 때 인부들이 머물며 일할 수 있도록 임시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별채로 쓰이고 있습니다. 현재는 방 3칸과 욕탕을 갖추고 창고까지 곁들여져 제법 그럴싸한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처음 영국사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참으로 볼품 없는 창고 같은 판자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잠을 자고, 책을 보고 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걱정어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스님은 절집의 방을 소개하면서 요사채의 깨끗한 방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판자집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장 보기에는 낡고 보잘것없는 누추한 집이었지만 나름대로 멋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건물은 남동향으로 지어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문을 열면 바로 코앞으로 작은 개울물이 흐릅니다. 방안에 누워서도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길 수도 있고, 한낮에는 햇빛바라기도 할 수 있는 한 뼘의 작은 툇마루까지 놓여있으니 말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본 채와 외돌아서 비어 있었던 판자집은 그야말로 나만의 집으로 거듭났습니다.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가을철에 절속의 판자집에 들어 물소리와 더불어 겨울을 났습니다. 이듬해 봄 스님은 판자집을 대나무 집으로 바꾸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절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판자집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방사가 충분하지 않은 절 측으로는 당장 그 건물을 헐어 없앨 수도 없는 것입니다. 허술해 보이기는 하지만 간단한 목욕과 세탁을 할 수 있는 곳이 그 곳 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집을 가꾸고 꾸미는데 필요한 각종 연장과 기계들을 한곳에 모아 놓는 곳이기도 합니다.
판자집 뒤에는 작은 대숲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대숲에 보금자리를 튼 새들의 인사를 받으며 잠에서 깨어나고, 오후가 되면 햇빛에 반사되는 댓잎의 싱그러운 초록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 고마운 대나무로 집을 바꾸어 보자는 스님의 말씀에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그러나 스님과 같이 대나무를 베고 쪼개면서도 과연 그런 집을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었습니다. 설령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붙인다 해도 과연 오랫동안 붙어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비바람을 온전히 버티어 낼 수 있을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스님은 대나무 조각을 판자 위에 촘촘히 빈틈없이 붙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판자보다 대나무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벽부터 붙이기 시작한 대나무 집이 지붕까지 덮여지더니 어느날 판자집이 아닌 대나무집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 보기 흉한 집이 푸르른 대나무 집으로 바뀌다니, 참으로 신기하게만 느껴졌을 뿐입니다.
영국사를 찾는 사람들은 대나무집이 보이는 곳에서 발길을 멈춥니다. 어떤 사람은 이곳이 찻집인줄 알았다며 집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곤 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 안에서 찻잎을 우려내어 마시기를 즐깁니다. 지금은 색이 바래 허옇게 변했지만 처음 대나무 집을 만들었을 땐 마치 내가 푸른 대나무 숲 속에 들어와 사는 것 같았습니다. 대숲의 터줏대감 박새들과의 동거인 셈이지요.
아침마다
몸을 푸는,
창 밖 대숲을 본다
깊고 푸른 절정,
한 생을
브레이크도 없이
절 속의 새가
날고 있다
나, 해진 몸을 이끌고
대숲 속으로 입주(入住)하고 싶다
― 양문규, 「대숲 속으로」전문
절집 대나무집에 사는 나는 틈만 나면 창호지 대신 비닐을 친 여닫이문을 열고 대숲을 봅니다. 청청한 깊고 푸른 생, 대나무는 무욕의 삶을 온 몸으로 보여줍니다. 대숲에 이는 바람은 죽비처럼 나의 정신을 맑게 일깨워 줍니다. 속을 비우면서도 곧게곧게 뻗는 대나무를 보노라면 이곳에 들어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사는 내가 왜 이렇게 못나 보이는지요. 서걱이는 댓잎에 베인 가슴이 얼마나 더 피를 흘려야 저 새들처럼 대숲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는지요.
미혹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대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새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어둠이 찾아오면 새들은 대숲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깨어나 대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닙니다. 집은 없으나 분명 새들의 집은 대숲입니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집을 가지고, 죽어서도 집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 집은 더 크고 호화스런 집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절집의 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대숲 속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생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나도 해진 몸을 이끌고 대숲 속으로 이사가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스님은 내게 대나무집을 지어주신 것이 새들처럼 살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대숲에서 무욕의 삶을 살고 있는 새들처럼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님은 영국사를 떠나셨지만 또 다른 곳에서 대나무 집을 짓고 계실 것 같습니다. 오늘도 창 밖 대숲을 봅니다. 댓잎 속에 바람이 놀고 있습니다. 한 생을 브레이크도 없이 절 속의 새가 날고 있습니다. 깊고 푸른 생, 절 속의 새가 무욕의 삶을 노래합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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