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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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좀 보내세요!
"엄마, 할아버지 좀 연신내 이모 집으로 보내세요!"
"왜?"
"할아버지하고 함께 방 못쓰겠어요, 불편해서..."
"뭐가 불편한데?"
"책상 밑에 양말을 집어 던져 놓지를 않나,
신문지를 방안에 늘어놓지를 않나,
아무리 치워도 맨날 어질러놔서 공부가 안되요."
2박 3일동안 수련회를 다녀 온 큰 애가 한 말이었다.
수련회 갔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한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다그쳤더니 PC방에 갔다 왔단다.
그래서 야단을 치자,
엄마에 대한 화풀이를
그런 식으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그럼, 양말하고 신문지만 치우면 되겠네?
또? 문제되는 것 있어?"
"에이 참, 그리고 잠 잘 때도 코를 너무 많이 골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연신내가 할아버지가 다니시는 복지관하고도 가깝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연신내 가시라고 하세요."
"넌 그럼,
나중에 니 자식이 엄마, 아빠 싫다고 하면 다른 곳으로 보낼래?"
"엄마, 아빠는 할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잖아요."
"아니지, 할아버지같은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니 자식이 싫어하는 행동을 할 수는 있지."
"..............."
"아무튼 할아버지한테 그건 말씀 드려서 고치시라고 할께.
불편한 것이 있으면 서로 고치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는 아들방을 나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 아버지는,
방안에서 그런 대화가 오고 가는지도 모른 채
마루에서 TV를 크게 틀어놓고 보고 계셨다.
나는 저녁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 왔다.
평소 아들은 어린애답지 않게 할아버지를 잘 챙겼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할아버지를 먼저 갔다 드렸고,
행여 할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면 나보다도 더 걱정을 했다.
아무리 씻어도 냄새 나는 여든 넷의 할아버지를 보듬고 잠이 들었고
걸핏하면 껴안고 얼굴을 부볐다.
그래서 나는, 역시 효도는 말로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직접 실천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아이가 느닷없이 할아버지를 이모집으로 보내자고 했다.
이제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라서 그럴까.
나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아들한테 그 말을 듣고 일을 하면서
감정을 추스렸는데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내 방에 와서 문을 닫고 앉자,
갑자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참았다.
왜냐하면 내일은 하루 종일 약속이 있어서
새벽부터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모처럼만의 만남인데 퉁퉁 부운 눈을 보여 주기가 싫었다.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시켜 주고 싶지가 않았다.
화가 나서 한 말일텐데 그런 걸 가지고 서운해하고...
나도 참...
나는 음악을 들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렇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 때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여드름 좀 짜 주세요."
평소 내가 여드름을 짜려고 하면,
아프다고 도망가는 아이가 제 발로 들어와
코에 난 여드름을 짜달라고 했다.
"그래..."
나는 별말없이 아이의 얼굴을 맞대고 여드름을 짰다.
그런데 그 순간,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 쏟아졌다.
"엄마, 왜 우세요...
할아버지 때문에 그래요? 그건, 제가 잘못했어요.
수련회 갔다 와서 피곤해서 그랬어요...
죄송해요...다시는 안 그럴께요."
"준우야..."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안 그럴께요."
"준우야...엄마한테 화난 것은 알지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알았지?"
"네. 다시는 안 그럴께요. 약속해요."
나는 엄마로서 아들한테 눈물을 보이기가 싫어
아들을 꼭 껴안았다.
"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버지야.
너도 누가 아빠 욕하면 싫지? 엄마도 그래...
아무리 니가 엄마 아들이라도 할아버지 욕하면, 엄마는 싫어...
할아버지 불쌍하시잖아.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의지하고 사셨던 아들들도 세상 떠났고...
할아버지는 엄마가 모시지 않으면 가실 때가 없어...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바빠서 할아버지한테 잘 해드리지도 못하는데,
너까지 이러면...엄마 너무 힘들어..."
"제가 잘못했어요...진심이 아니었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화가 나서 한 말이었어요."
"그래...엄마도 알아.
우리 준우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지 잘 알아...
그러니까 더 서운한 거야...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런 말을 해서...
엄마한테 서운한 것이 있어도 할아버지한테는 그러지 마...알았지?"
그렇게 말을 하는 나의 가슴은 서러움과 회한으로 벌떡거렸다.
말년을 딸집에 얹혀사시며 비참하게 연명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늙은 부모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며 살갑게 대해드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뒤섞여 내 눈물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내일 약속 있으니까 이러면 안되는데,
싶어도 눈물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엄마가 저한테 해 주신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남들처럼 마음대로 돈을 주셨어요, 옷을 사주셨어요?
책 한 권을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샀어요.
이렇게 사는 것, 아주 지긋지긋해요.
어서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어요!"
대학 4학년 때, 난 그렇게 어머니한테 퍼부었다.
내 다시는, 이 집구석에 발도 들여놓지 않으리라..다짐하면서...
그 때, 어머니는 내게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으시고
옥상으로 올라 가셨다...그리고 한참동안 내려오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에 빠져
옥상에 따라 올라가지 못했다.
한참 만에 내려 오신 어머니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그 모습은 내 가슴에 쇠스랑처럼 찍혀서
평생 빠지지 않았다...
준우야, 이 자식아...
너도 나중에 상처받는다...그러지 마라...
네 가슴에도 날카로운 쇠스랑이 박히면 어떡하니...
그럼 너만 아파...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눈물은 어쩌면 아들에 대한 서운함에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에서 쏟아졌을 것이다.
육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는데 남은 것이라고는,
나비를 만들어내지 못한 매미껍질같은 육신뿐인 아버지.
이젠 목발없이는 한발자욱도 걷지 못하시는 아버지. 나의 아버지...
평소에 잘 버티고 있었는데...잘 견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내 가슴속으로 서러움이 고여 들고 있었나 보다...
나는, 나와 똑같이 가슴을 벌떡거리며 우는 아들을 보듬고
그렇게 한없이 서서 울었다. 내 어깨가 젖을 때까지...
아들의 어깨가 젖을 때까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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