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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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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행사

불교 사상과 수행체계

  • 입력 2004.04.04
  • 수정 2025.01.15

그 동안 저희들은 3개월에 걸쳐 전국 선원장 스님을 초청해서 '선원장스님 초청법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포살 법회날이기에 선원장 스님을 초청해 법회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동안 선원장 스님들이 참선수행에 관련된 말씀 가운데 중간 정리 과정으로서 불교사상과 수행체계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불교사상과 수행체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전에 부처님 법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생즉불(衆生卽佛), 심즉시불(心卽是佛), 중생은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존재이다. 중생즉불이라는 것은 중생과 부처님이 차별 없이 똑같다. 중생이 곧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심즉시불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 중생의 마음은 불완전하고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런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흔히 중생은 미완성의 상태인 그런 존재라고 생각을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중생은 원만구족한 존재이다. 즉, 모든 것을 원만하게 모든 능력들 두루 갖추고 있는 존재라는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중생은 부처님과 다른 것이 아니고 중생이 곧 부처이고, 중생은 원만구족한 존재로서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교의 인간관과, 부처님께서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보는가에 대한 것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을 죄인이며 미완성으로 보는 것과, 인간은 완성이고 원만구족하고 무한가능한 존재로 보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입니다.

 

 인간을 원만구족한 존재로 보는 시각은 우리는 완성되었기에 완성된 자로서, 성불한 부처로서, 불보살로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뭔가 수행을 통해 충족시키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채워져 있고 무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기에 그런 존재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완성이고 죄인이며 부족한 존재로 본다면, 우리는 뭔가 채워야 하고, 닦아야 하고, 힘이 없고, 가능성이 없는 그런 존재로서 끝없이 마음속에 비어있는 곳에 채워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태도와 방식은 달라진다는 것이죠. 인간을 원만구족, 완성된 존재,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본다는 것은 내가 부족하지 않고 부처님과 다를 바 없고 남녀노소가 다를 바 없다. 나와 남이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불교는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녀, 계급, 인종 등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 것이 불교입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질병을 치료하지요. 그런데 의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완전하다고 하며 그 능력이 무한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 스스로 내가 앓고 있는 병을 약물로 치료할 수 있고 내 스스로는 치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설사 약물로 치료해서 난다고 해도 더디게 낳게 되고 완벽하게 자기 능력을 회복하지 않는 상태로 낳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치유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심리적, 생리적 능력을 확신을 하면 병이 빨리 치료가 되고 치료가 되면 병이 걸리기 전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실제 과학적으로도 약물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더 잘 납니다. 이것을 믿지 않고 부정하면 병은 낳지를 않습니다.

 병의 치유뿐 아니라 우리가 불교를 믿고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목적에서 할까? 바로 원만구족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만구족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즉, 건강하고 평화스럽고 안전하고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연기사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비 사상입니다. 연기사상은 교리적, 철학적 측면에서 표현한 것이고 실천적으로는 자비사상입니다.

 연기사상은 모든 존재가 관계를 통해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관계를 통해서 서로 의지하고 주고받는 그런 관계를 연기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의지해서 살고 자식이 부모를 의지해 살고, 제자가 스승에게 배워서 의지해 살고, 이웃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고, 형제가 서로 형제애를 나누며 삽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의지하며 삽니다.

 자연과 인간도 의지해서 삽니다. 자연의 제반 요소가 없으면 인간이 살수 없습니다.  물, 식물, 동물, 공간, 햇볕, 온도, 이런 자연의 요소가 있습니다. 동물이 없으면 식물도 없고 식물이 없으면 자연의 존재 자체도 없어집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연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동물이 없으면 자연도 다 파괴된다.

 모두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만물의 존재 구조를 말하는 것이으로서 다른 존재가 존재할 때만이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이 없으면 내가 못살고, 이웃이 없으면 내가 못살고, 부모가 없으면 내가 태어날 수 없고. 이처럼 모든 존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을 살 수 있고 그것은 곧 나의 생명과 하나입니다. 그런 나의 생명과 하나인 존재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 생명의 은혜인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삶의 태도와 방식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자비심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부모에 효도, 스승에게 존경, 이웃에 사랑, 자연에 고마움. 이런 것이 자비심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불교의 자비 사상입니다.

 이렇게 끝없이 중생에 자비를 베푸는 것은 곧 부처로서의 삶입니다. 자비로서 제도를 하고, 가르치고,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부처님이 우리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사상이고 이러한 삶의 태도가 불자의 태도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불보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수행과 기도를 통해 부처, 보살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부처,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합니다.

 

 수행을 하려면 가장 기본적 조건이 자비심을 가져야 하며, 부처님을 존경하고 믿고 보살을 따르고 불교의 사상을 배우고자 하는 보리심을 내야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르쳐주는 선지식이 필요합니다. 선지식은 직접적으로 수행을 지도하는 분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여러분이 바로 선지식입니다. 현실적 이로움을 주는 그런 사람도 선지식이며, 여러분을 불편하게 해 주는 사람도 선지식입니다. 선지식은 우리 마음에 새로운 깨달음을 깨우쳐 주는 모든 분들입니다.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나는데, 어떤 선지식은 높은 수행자이고, 어떤 선지식은 아주 나이 많아서 거동도 못하는 사람이고, 어떤 선지식은 사창가에서 몸파는 아가씨입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다양한 53명의 각기 다른 선지식을 만나면서 그 선지식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서는 화 내지 말아야겠다고 배우고, 어디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은 저렇게 하면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각양 각색의 선지식이 있습니다. 이런 선지식을 볼 줄 알고 배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지식을 못 알아보면 아무리 훌륭한 선지식이 지나가도 못 배웁니다.

 자비심을 갖고 자비심을 실천하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 이것은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조건입니다.

 정리해보면, 부처님, 즉 불교에 호감을 갖고 믿는 마음을 내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고 절을 좋아하는 이런 것들이 발보리심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음에는 스승이 필요합니다. 그런 스승은 절에 많이 있죠. 절에 열심히 나오셔서 예불, 법문, 열심히 하는 것이 선지식을 친견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수행의 중요성을 알고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갖우며 자비심을 갖춰야합니다.

 

 다음으로는 기본 수행법을 알아야 하는데, 예불, 권청(勸請), 수희(隨喜), 회향(廻向), 공양(供養), 참회(懺?) 이런 것들이 있는데, 예불이라는 것은 부처님 앞에 기도 드리고 사찰에 와서 조석 예불하는 것을 말하죠. 그리고 공양이라는 것은 향이나 초 등등을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 앞에 보살로서 헌신적 삶을 살겠다고 발원하는 것도 공양이며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것도 발보리심이면서 공양입니다.

 참회는 잘못을 부처님께 고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는 마음을 돌이켜 먹는 것입니다. 주로 108 참회하거나 1080배 참회하기도 합니다. 참회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이 있습니다.  이참이라는 것은 마음을 다 바꾸는 것입니다. 사참이라는 것은 격식을 갖춰 108참회나 1080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수희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행복하면 기뻐해 주는 것입니다. 사돈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중생의 생각입니다. 열심히 수행하면 기뻐해 주고, 행복하면 기쁘다 생각해야 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서 나와 한생명이기에 그 사람이 잘 사는 것이 곧 내가 잘 사는 것입니다. 내 손가락이 편해야 내 몸이 편해집니다. 내 손가락이라고 잘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처럼 내 생명입니다. 손가락, 머리카락도 생명입니다.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곧 자비심입니다.

 권청은 법을 전하고 선을 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수행법입니다. 기본 바탕 위에 구체적인 수행법이 필요합니다. 구체적 수행법을 불교에서는 다섯 가지로 봅니다. 계율, 간경, 염불, 참선, 보살, 이 다섯 가지가 전통적인 한국불교의 수행법입니다.

 조계종은 선종이기에 참선수행이 중요하지만, 조계종은 여러 종파 아우르는 통불교적 성격이기에 간경, 계율, 수행, 보살행까지 다 아울러서 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특징입니다. 일본은 종파불교이기에 한 종파에서 하나의 수행법 밖에 하지 않습니다.

 

 참선수행에서는 네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앉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행하고 앉아있고 누워있고 걸어가고 말하고 말하지 않고 하는 이 모든 일상생활 모두가 참선이 아닌 것이 없다고 했지만 주로 참선수행에 있어서는 좌선을 말하기에 좌법에 대해서 정확히 배워야합니다. 앉는 법은 한마디로 부처님 자세로 앉으시면 되고 호흡은 단전호흡을 하면 됩니다. 앉는 자세나 호흡을 하는 것은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생각이 한시도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며 이런 망상, 저런 망상을 피웁니다. 이런 망상을 전부 다 버리고 생각을 거두어들여서 한 곳에 고정시키고 집중시키면 이것은 곧 생각 속의 망상을 거두어내게 되고 결국 업장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평소 망상이 소멸되면 흐린 것이 걸러지고 청정한 마음 바닥이 드러납니다. 청정한 마음 바닥이 드러나면 청정한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수행과 기도와 치료를 통해서 질병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건강이 남습니다.

 여기에서 한 단계 올라가면 관법과 화두 단계가 있습니다. 화두 단계는 근본적이고 긍극적인 자기 문제를 타파하는 것입니다. 이런 화두에 대한 것은 선원장 스님들이 다시 말씀드릴 것이니 생략하겠습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지금 내가 수행이 잘되는지 잘 안 되는지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앞에서 수행하려면 선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선지식이 있으면 현재의 수행 상태는 어떻고 다음 단계는 어떻게 나가라고 지도해 줍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없으면 혼자 당도하기 위해서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수행의 점검은 몇 가지로 기준을 정합니다.

 첫째, 기준은 모든 수행의 기준은 계율을 잘 지켰나 안 지켰나 하는 것입니다.

 둘째, 공양, 발원 회향과 같은 기본 수행을 잘 하는가 입니다. 이런 것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생활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꾸 확인하여 내 마음 변화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수행의 즐거움입니다. 여러 체크를 해서 늘상 확인하고 좋은 쪽으로 자기 삶을 이끌어 나가야합니다. 매일 체크를 해서 잘 되면 ○, 안되면 ×로 표시하고, 안 돼는 이유를 정확히 찾아내야 합니다. 안 되는 이유는 제거하고, 잘 돼는 것은 살려나가는 것이 수행의 점검입니다.

 백일기도를 한다면 날자별로 실천하는 항목을 체크해놓고 첫째 아침으로 예불하는지, 내 마음속에 자비심을 갖고 있는지, 보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지, 타인에게 배려하는지, 이것을 다 체크를 합니다. 백일 동안 계속 체크를 해서 동그라미가 많으면 많은 만큼 기도 성취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실천하는 기도를 해야지 복을 주십시오 하고 애걸복걸하면 이것은 기복신앙으로 복을 구하기 위한 구걸행위입니다. 실제 기도를 통해서 자기가 변하고 원하는 내용으로 변하려는 것이 기도 수행입니다.

 기도와 수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수행체계, 기도 방법으로 여러분 바람이 원만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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