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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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 행원품_유통분
오늘은 보현행원품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유통분(?通分)을 공부하겠습니다.
가이없는 시방국토 장엄하온바
온갖 보배 부처님께 공양하옵고
일체세계 인천대중 미진겁토록
가장 좋은 안락으로 보시한대도
어떤 사람 수승하온 보현원왕을
한번 듣고 마음에서 믿음을 내고
무상보리 구할생각 간절만하면
이 사람의 얻는 공덕 저를 넘나니
유통분(流通分)은 보현행원품을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설하신 부분으로서 보현행원품을 공부하고, 읽고 외우고 실천하는 사람은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가이없는 시방국토 장엄하온 바
온갖 보배 부처님께 공양하옵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하는 것,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과 이 보현행원을 한번 듣고, 믿음을 내어 무상보리를 구할 생각이 간절한 사람과 비교를 해 보면 이 보현행원품을 듣고 발심한 사람의 공덕이 더 크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을 비교했는데, 보현행원품에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중생에게 보시를 해야 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결국에는 보현행원품을 읽고 외우고 실천한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는가 하면, 예를 들어 자기 이익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과 보현행원품을 올바르게 공양하고, 보시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보현행원품을 듣고, 발심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겠죠.
무상보리를 구할 생각이 간절하다면
발심을 하는 것인데요.
발심 한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발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기신론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직심(直心)이라고 합니다.
진여(眞?)를 늘 생각하고 있는 것. 즉, 깨닫고자 하는 마음, 무상보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심심(渙心) 입니다.
일체의 모든 선행을 즐겨하는 마음입니다.
세 번째는 대비심(??心)입니다.
일체의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전부 없애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세가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발심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발심한 공덕이 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을 갖고자 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다음 부분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나쁜 것을 멀리 여의며,
나쁜 것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모든 악도 만나지 않고,
지옥이나, 축생, 아귀 이런 삼악도 세계에 영원토록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량광 부처님을 속히 뵈어서
아미타 부처님을 무량광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위 없는 보현원을 모두 갖추리
보현원은 10가지 원을 다 갖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길이길이 수명 얻으며
난데마다 항상 좋은 사람몸 받고
머지않아 마땅히 보현보살의
크고 넓은 보살행을 성취하리라.
보현보살님과 같은 그런 보살행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현행원품을 공부하면 성불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 부처님의 공덕은 한량이 없는데, 그 공덕을 이루려면 다음 보현보살의 10가지 원을 행해야 이룬다는 것입니다.
지난 날에 어리석고 지혜 없어서
무간지옥 빠질 중죄 지었더라도
보현행원 대원왕을 읽고 외우면
일념간에 저 중죄가 소멸하리니
여기에서는 지난날 자신이 어리석어 무간 지옥에 빠질 만큼 큰 죄를 지었더라도, 보현행원품을 읽고 외우면, 일념간의 중죄가 소멸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것을 놓고 보면 오히려 이해가 안되고 신비스럽고 이상하게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보현행원품의 열가지 원중에 자기 참회를 해서 업장을 소멸하는 내용의 참죄업장원이 있습니다.
자기 업장 소멸의 가장 좋은 방법은 참회하는 것입니다. 참회를 하지 않고는 업장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업장이라는 것은 자기가 지은 죄가 두터워서, 도를 닦거나, 행복하게 사는 것에 방해를 받는 것. 즉, 장애가 되는 것을 업장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업이 자신의 수행이나 행복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지은 죄를 참회하는 것만이 업장을 소멸하는 길입니다.
첫 번째 자기 죄를 먼저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거나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두 번째는 그 잘못을 뉘우쳐야 합니다.
세 번째는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그런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대개 사람들이 잘못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회를 하면 그런 중죄가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날적마다 좋은 가문 좋은 얼굴과
좋은 상호 밝은 지혜 원만하여서
모든 마와 외도들이 범접못하니
삼계중생 온갖 공양 능히 받으며
오래잖아 보리수 밑에 나아가
파순이도 마군중도 항복받고서
무상정각 성취하고 법을 설하여
모든 중생 빠짐없이 이익주리라
보현행원 열가지를 닦으면 결국에는 성불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이렇게 출가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왔던 것, 하고자했던 것 그것이 전부 이런 내용입니다.
부처님을 찬탄하고, 경전공부 하면서 부처님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가 한평생 수행하는 내용을 보면 바로 보현행원을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현행원품에서 가르친 대로 읽고 외우고 실천하면 결국에는 성불하고 무상보리를 얻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보현원을 읽고 외우고
받아갖고 대중 위해 연설한다면
그 과보는 부처님만 능히 아시니
어김없이 무상보리 얻게되리라.
어떤 사람 보현원을 능히 외우는
그 선근의 소분만을 말씀한다면
일념간에 일체공덕 원만하여서
중생들의 청정원을 성취하리라.
아주 조금만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 공덕이 원만해지고, 일체 중생들의 청정원을 다 이루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가지은 수승하온 보현의 행의
가이없는 수승한 복 회향하오니
바라건대 고행중의 모든 중생이
하루속히 극락세계 얻어지이다.
이렇게 해서 게송이 끝나고 마지막 결론이 나옵니다.
그때 보현 보살 마하살이 부처님 앞에서 이 넓고 큰 한량없이 보현원안 청정게송을 설하시니 선재동자는 한량없이 뛸 듯 기뻐하였고, 일체 보살들은 모두 크게 환희 하였으며, 여래께서는 옳다 옳다 하시며 칭찬하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거룩하옵신 여러 보살마하살과 더불어 이와 같은 불가사의 해탈 경계의 수승한 법문을 연설하실 적에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을 상수(上首)로 하는 대보살(?菩薩)들과 그 보살들이 성숙(成熟)하신 바 육천의 비구들과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상수로 하는 현겁의 일체 대보살들이시며, 무구보현보살(無垢普賢菩薩)을 상수로 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이시며 관정위에 이르신,
여기서 일생보처라는 말은 한 생만 지나시면 성불한다는 보살을 보처보살이라 합니다.
흔히 부처님이 가운데 계시면 양쪽보살을 보처보살이라고 하는데 좌우보처라고 합니다.
대보살들과 널리 시방 여러 세계에서 모이신 일체찰해(땅과 바다) 극미진수(먼지 수만큼)의 모든 보살마하살과 대지 사리불 마하 목건련 등을 상수로 하는 대성문들과 인간과 천상과 세간의 모든 임금과 하늘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인비인 등 일체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들 크게 환희하고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그때 모인 대중들이 이 보현행원품을 듣고서 환희심을 내고 그대로 신수봉행 했다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전을 듣고서 얼마만큼 환희심이 나는가 또 얼마만큼 믿고 따라서 실천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현행원품에서 회향하는 내용 중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현보살이 원을 세우기를 일체 모든 중생들이 나쁜 일을 하려고 애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착한 일은 쉽게 이뤄지게 해달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생들이 나쁜 것은 쉽게 되고, 좋은일 한번 하려면 큰 맘 먹여야 될까 말까 하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친구 잘못 사귀어 잘못되는 것은 쉽게되고, 착한 일하려면 큰 맘 먹어야 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이 좋은 일 잘하고, 나쁜 일 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그렇게 되도록 특히 가족들이 나쁜 일은 하려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고, 착한 일은 쉽게 빨리 이루어지도록 원(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願)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 부처님께서 설법해주시기를 원한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설법해 주시길 원하는 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책으로 만들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설법을 직접 듣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경전을 공부한다면 부처님 말씀을 직접듣는 것이 되고, 직접 부처님 설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 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루에 30분 정도시간을 내어서 경전 읽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천수경도 좋고, 금강경 등 경전을 매일 읽고 그 내용을 공부해서 실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경전을 독송함으로서 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읽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굉장히 거룩한 것 같지만,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열심히 공부하게 해 주세요' 하는 것과 '공부야 하던 말던 무조건 합격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다른 학생은 떨어지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똑같이 기도를 해도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하는 보살이 되게 해주세요'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물론 있겠지만, 자식이 바르게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가 자식을 길러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아들딸들이 잘 자라 주었다 해도, 만족할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후회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대승보살의 기본적인 사상인 일체 중생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그것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행복하도록 해주는 마음과 일체 모든 중생들의 불행을 고통을 없애주고자 하는 마음을 합쳐서 대승 보살의 자비심이라고 합니다.
대자한 마음은 모든 중생들을 행복하게 즐겁게 해주고자하는 마음이고 또, 대비심은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자대비라 하지요.
제가 첫머리에 얘기한 발심에는 3가지 마음이 있다고 했지요?
직심(直心)이라 해서 깨닫고자 하는 마음
심심(渙心)은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
대비심(??心)은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주고자 하는 마음이라 했지요.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도 3가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들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과 좋은 사람 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온갖 사랑을 붓고 싶지만, 너무 과보호하면 훌륭한 사람이 않되기 때문에 그때는 올바르게 길러야 되겠다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세 가지 마음이 조화를 잘 이루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습니다.
부부가 자식을 같이 키우지요?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서로의 의견 차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지만, 어떻게 길러야 할 것인가 하는 의견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점점 좁혀 가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중생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견해의 차이와 성격의 차이가 있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러한 견해차이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려는 노력을 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 고통과 불행을 없애주려고 하는 대자대비의 마음이 갖추어 지면 모든 것은 쉽게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로서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다 마쳤습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요.
-정리: 문영란 (조계사 보도부 법문녹취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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