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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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 특별영화 시시회
송환(送還)
송환(送還)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12년간 쓴 긴 편지 (감독 김동원 )
‘사르륵... 사르륵... ........................... 사르륵...’
어느 결엔가 늦봄 저녁의 조계사 경내는 사륵거리는 바람소리에 염원과 함께 서원을 담은 발원지가 오색 연등의 끝자락에서 하염없이 푸르른 소리를 낸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봉축행사의 일환으로 조계사에서는 해마다 한편의 영화를 선정하여 방영한다. 불기 2548년을 맞이한 5월 21일에는 12년 동안 촬영된 비전향장기수의 애환과 함께 그들의 삶과 여정을 생생한 기록으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송환이 7시 30분부터 대웅전 앞마당에서 상영됐다.
송환은 남한으로 남파하여 간첩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남파간첩의 수감에서부터 출소, 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담은 영화이다. 사상이나 이념 등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들의 일상이 영상 가득 펼쳐졌다. 수감생활과 그들의 사상, 이념을 해제하고 전향시키기 위해 무수하고도 잔혹한, 그리고 혹독한 고문과 인권을 유린한 실태를 담은 영화이며 이들이 끝까지 전향을 뒤로 한 채, 자신들의 뜻과 그들의 바람대로 송환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영화이다.
비전향장기수인 조창손과 김석형이 봉천동으로 오게 됨으로서 이 영화는 시작되며 한 동네에 머무르고 호흡하면서 교류가 시작된다. 채 1평 남짓한 공간에서 30~40년의 수감생활을 복역한 이들은 끝없는 회유와 그에 굴하지 않음으로서 되돌아오는 고문과 학대를 참고 견뎌야만 했다.
제 7차 남북회담은 그들에게 석방과 함께 송환을 꿈꾸었던 기대와는 달리 엄청난 고통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으며 구타, 물고문 등 상상을 초월하는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전향 방법이 동원되는 시발점이 됐다.
보통인이라면 견질 수 없는 처절한 고독과 철저한 전향 공작에 그들은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그들은 말했다. 정치적 신념을 포기할 수 없어서, 서로간의 교류를 통한 사상학습을, 존재의 이유를 잃지 않기 위해 채찍질을 하며 그 속에서도 공작활동을 펼쳤다고 했다.
이들을 지킨 힘은 비단, 사상과 이념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민족주의라든가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이 아닌 그 힘은, 버틸 수 밖에 없었던 힘은 전향 공작의 부당성, 폭력성에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그 혹독한 전향공작을 당하면서 그들이 저항해야 하는 정당성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비인간적인 폭력은 결국 그들의 마음을 닫히게 한 것이다. 전향공작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폭력이나 전향서 한 장이 사람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차라리 그들에게 부드러운 회유를, 너그러운 아량의 전향 공작을 펼쳤더라면 그들 모두가 전향하여 지금도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이념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네들은 전향에 굴하지 않은 것은 ‘내가 옳은 것을 지키는 것, 이것 밖에 없었다.’고 했으며 반평생을 그 신념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386 운동권 세대들은 이들을 통하여 장기수, 비전향인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이들이 모든 것을 뛰어넘은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부딪히는 이념의 벽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모습은 철저한 정신무장을 한 장기수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순박한, 시골 어느 한 귀퉁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민적인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그들을 지탱한 것은 이념보다는 존재, 그 자체가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고.... 오랜 수감생활동안, 얻은 것은 병고와 고문의 후유증, 그리고 쓸쓸한 죽음이었다. 반평생을 걸어 온 혁명의 길에 대한 보상이었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안 학섭(44년 복역)씨의 말 한마다는 아직도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최장기수로서 기네스북에 오른 김 선명(76세/45년 복역)씨에게는 온전한 축하의 화환을, 한 장호씨와 그에게는 차례로 복역 년 수에 따라 차별화된 화환을 걸어 주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하나를 스타로 만들어 내세움으로서 끝까지 상품화시키는 거라고 했다. 그 초라하고 볼품없었던 화환은 차라리 주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을...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전쟁을 해야만 했고, 피를 흘렸으며 한 민족, 한 핏줄이 그토록 처절한 싸움을 하였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념이라는, 전쟁이라는 허상 앞에서 모두가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출소한 그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방침을 해주었더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의 생계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병마를 치유할 수 있는 아량이 그들과 함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회유하겠다는 전향 공작이 고작 무분별한 그 방법 밖에는 없었는지...
영화의 후반부는 전향자와 비전향자의 갈등,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찾아 온 송환을 앞두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표출되어지는 이들의 인간적인 심리와 고뇌가 투영됐다.
그들이 염원했던 송환의 날도 역사 속으로 묻히고, 북에서의 그들의 생활이 공개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북으로 송환되어 영웅 대접을 받으며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화면 가득히 채워졌다. 가슴에 달린 훈장이 조금은 낯설고 작위적인 모습으로, 또 하나의 수단으로 비춰지긴 했지만 언제까지나 그들이 오래도록 건강한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반평생을 그들이 신념처럼 지켰던 것들에 대한 보상으로 말이다.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매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란 마지막 가사가 왜 그리 슬프고도 애절한 것인지....
그 구슬프고 슬픈 노랫가락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더욱 더 아련하게 남겨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송환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수상 (한국영화 최초 수상)
2003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관객상 수상
2003년 한국독립영화협회 선정 (올해의 독립영화)
2003년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진출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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