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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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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간절함

  • 입력 2004.05.26
  • 수정 2024.11.17

얼마나 간절했을까. 얼마나 지극했을까.

나를 잊고, 너를 잊고,

시간의 흐름까지도 잊어 버린 상태에서

30년이란 세월동안 돌을 쌓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지순했을까.

가슴 속에 얼마만한 열망과 바램이

담겨져 있으면 그리 할 수 있었을까.

 

마이산 돌탑을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한 생애를 바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를

돌탑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를 그토록 모질게 몰아세우고

다그쳤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맹수와 독충이 들끓는 돌산 언덕바지에서

생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막신으로

돌산을 오르내리며 숭숭 뚫린 무명옷으로

겨울 추위를 견뎌냈던 사람.

그의 이름은 이갑룡(李甲龍:1860-1957)이라 했다.

19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3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면서

인생무상을 깨달았다는 사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 갈까 하는

시시한 문제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때,

그는 인생이라는 큰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큰 사람은 범인하고는 출발부터가 틀린가 보다.

 

부모님이 세상을 뜨고,

전봉준이 처형당하는 현실 속에서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꼈던

그는 6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게 울부짖는 젊은이의 손을 이끌어 준 곳이

바로 마이산의 산신령이었다.

6년 동안 목숨 걸고 찾아 헤매이던 화두.

그 대답을 마이산에 와서 들었다.

시멘트 블록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는

돌산 계곡이 연꽃으로 피어 나는 환영을 본 것이다.

 

 

그 뒤의 그의 인생은

환영 속에 본 연꽃을 심는데 바쳐졌다.

돌을 떼어 져 나르고 다듬느라

손톱이 빠지고 피가 흘렀다.

돌을 쪼개고 다듬는 소리가 계곡을 울릴 때마다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은 살을 섞었다.

 

이윽고 30년이 흘러 해산달이 되자

마이산은 몸을 풀었다.

108명의 연꽃같은 자식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갑룡은 마이산이 낳은 자식들을 받아 씻기고

옷을 입혀 계곡 사이에 뉘였다.

그렇게 생명을 집어 넣고

입김을 불어 넣은 탑이 108기였다.

이갑룡의 손으로 받은 산신령의 자식들이었다.

이 자식들이 커서 도탄에 빠진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하게 해 주소서...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뜯어 말리게 하시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함께 나누어 먹게 하소서...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않게 해 주시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손을 잡아 주게 하소서...

산신령의 자식들을 씻겨,

어미 옆에 늬일 때마다 그는 그렇게 축원했다.

 

그 간절한 축원으로 산신령의 자식들은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었다.

뒷산, 앞산 통나무들이 폭풍우에

뿌리가 뽑혀 쓰러질 때도

탑들은 머리카락 하나 빠지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이 심심풀이 삼아 쓰러뜨릴 때까지

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을 내려 오던 날,

삼신불을 모셔 놓은 바위 틈새로

손가락만한 도롱뇽이 고개를 내밀었다.

도무지 먹을 것이라곤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바위산에서 그 작은 몸으로

바위를 더듬고 다니는 그 도롱뇽의 모습이

무모했던 이갑룡이란 사람의 분신처럼 보였다

 

맨 처음에 그도 그랬을 것이다.

맨 손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저 가슴속에 담은 소망 하나만으로

첫 돌을 놓았을 것이다.

돌 위에 돌을 얹을 때마다

그의 고뇌도 얹혀졌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흔들리는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수북히 쌓여 있는 의구심을 허물어 내고 그 자리에

돌을 쌓는 행위가 무망해 보일 때도 허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절망할 일이 아니다.

첩첩산중 험한 바위 계곡 사이에서

30년 세월을 돌만 쌓는 사람도 있었는데,

쉽게 절망할 일이 아니다.

마음 다쳐 조금 쓰라리다 해서,

엎어진 무릎에 피가 흐른다 해서

함부로 절망할 일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세계가

허망해 보일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 것이다.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지레 겁부터 먹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집에 돌아가면 나의 첫 돌을 놓아야겠다.

쓸모 없이 세월만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회의가 들더라도 시작 할 것이다.

더 화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 텐데...하는

유혹이 죽순처럼 고개를 쳐들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나의 돌탑을 쌓을 것이다.

 

그래서 종내는 나만의 탑을 완성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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