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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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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 붙이기

  • 입력 2004.06.07
  • 수정 2024.11.17

이사 하는 날.

아침 밥을 먹기가 무섭게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어젯 밤 늦게까지 짐 정리를 한 탓에

방과 거실은 어수선했다.

나는 귀중품과 서류를 넣은 가방을

차에다 옮기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아직 맨발을 한 채 방문을 나서려는데,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섰다.

내가 어제까지 쓸고 닦았던 마루 바닥인데,

당연한 듯이 신발을 신은 채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순간적으로

그들이 점령군처럼 느껴지면서 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내 안식처를 파괴하라고 그들을 고용한 듯한 묘한 자괴감마져 들었다.

 

우리 가족이 맨발로 다니던 소중한 마루 바닥을

흙먼지묻은 신발로 함부러 밟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생소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 가족이 안온하게 몸을 뉘였던 안방과 마루,

공부방과 부엌을 신발을 신은 채 사정 없이 걸어 다니며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차에 가방을 내려 놓은 후,

관리 사무소에 가서 관리비를 정산하고,

가스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 사이 남편은 동사무소에 가서

폐기물 처리 신고를 하고 허가증을 받아 왔다.

그 폐기물은 돌아가신 엄마가 쓰셨던 낡은 장롱이었다.

이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셨던 엄마의 흔적이

이제는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언니 집에 가신 아버지가 돌아 오시면 허전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새로 이사 한 곳에는

붙박이장이 있어서 굳이 장롱이 필요하지 않았다.

낡은 장롱을 굳이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엄마도 안계신 터에...

 

이사 할 절차가 끝나고,

사람들이 짐을 싸는 동안 남편과 나는 새로 살 집으로 갔다.

이사할 집은 지금까지 살던 아파트 바로 앞 동이었다.

 

그런데도 아파트를 지은 회사도 틀리고

동과 동 사이에 도로가 놓여 있어 완전히 다른 구역이 되었다.

더구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기는 터에

이사 가는 마음이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왠지 새로 이사 온 집이 도저히 정이 붙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2년을 살 집인데,

행여 마음 붙일 만한 것이 한두개는 있지 않을까 싶어

집주위를 서성거렸다.

 

지은 지 10여년 가까이 된 아파트지이지만

구색 맞추기로 심어 놓은 나무와 꽃들이 여전히 불협화음을

이루며 불편한 자리 다툼을 하고 있었다.

"출입금지"라는 금줄이 쳐진 화단 위로는 북어처럼

비쩍 마른 소나무가 십여그루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강제 이주당한 천막촌 사람들처럼

근근히 목숨만 연명하는 듯이 가련해 보였다.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자라는 소나무는

그늘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빚더미에 넘겨진 사람처럼

마지못해 이사온 집으로 들어 왔다.

이 곳에서 2년동안 살면서 "세월"을 빚 갚아야 할 것이다.

살다보면 정들겠지...

이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기꺼이 살리라.

맘에 안들더라도 정 붙이고 살아, 라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마스크를 쓰고 빗자루를 들더니

묵묵히 먼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도

도무지 함께 거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렇게 넋 놓고 앉아 있지 말고,

창틀에 먼지가 많던데 좀 닦아."

남편 말을 듣고 나는 마른 걸레에 물을 묻혀 창가로 갔다.

격자창을 짜 넣은 창틀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젖은 걸레질에도 쉽게 닦이지가 않았다.

팔에 힘을 주고 문질러도 닦여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찌들은 먼지는 한두번의 걸레질로

깨끗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집에 살다 간 사람이 참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창틀 한 번 안닦고 살았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쌓였으면 이렇게 안 닦여질까.

 

그러다 문득, 떠나 온 집이 생각났다.

내가 살았던 집 창틀에도 이렇게 먼지가 쌓였을 것이다.

날마다 쓸고 닦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 창틀이나

책장 뒤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였을 것이다.

그럼 그 곳에 들어온 사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어떻게 이런 먼지속에서 살 생각을 했을까, 라고.

 

정작 그 먼지 속에서 살았던 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떠난 자리를 본 사람이라면 금새 알 것이다.

내가 어떤 먼지를 날리며 살아 왔는가를...

 

내가 죽을 때,

내가 떠나 온 자리를 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남긴 자취는 어떤 먼지가 쌓여 있을까.

 

나는 물통에 물을 담아다 창틀에 부어가며 닦았다.

바닥이 젖을 정도로 물을 부어 놓은 후 닦아 내자

비로소 먼지가 닦이기 시작했다.

 

그 때 문득 3천배가 생각났다.

가벼운 먼지같은 업장이라면 걸레질 한 두 번같은 참회나

108배만으로도 사라지겠지만,

물을 부어야 닦여질 것 같은 두터운 업장이라면

3천배나 만 배 정도의 혹독한 참회라야만이 닦여질 것 같았다.

그럴 것 같았다.

횟수가 중요하지 않다지만,

그러나 횟수도 중요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절 한 번 하려면

만 번의 헛절을 해야 하고, 제대로 된 염불 한 번 하려면

천 번의 헛염불이 필요하다는 법문이 생각났다.

 

아직 나는 헛절을 하고 헛염불을 하는 중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창틀을 닦듯 헛염불을 하고,

헛절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짜 절과 염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가 끝난 후 남편은 예전 집으로 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

23층 뒷베란다를 통해 밖을 내다보자 10층 집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저 곳에 살았었지...

내가 저 곳에 살았었는데...

 

내가 살던 곳에서,

내가 쓰던 물건들이 박스에 담겨지는 모습을 보자,

문득 살던 집에서 내쫓겨난 아이처럼 서러움이 몰려 왔다.

내가 살던 곳이 바로 저기인데...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앞 베란다로 왔다.

높은 층으로 올라온 만큼 전망이 시원했다.

눈밑으로 아파트와 집,

내가 매일 거닐었던 냇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멀리 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산등성이가 시야를 감쌌다.

 

아, 이제부터는 저 산을 의지해서 살아야지...

아침에 눈을 뜨면 저 산 위에서 해가 솟아 오르겠지.

그 해를 바라보며 살아야지.

살다보면 정들겠지...

 

점심을 먹고 난 후,

사다리를 타고 내려 온 짐이

새 집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화분이 들어 오고 안방 장롱이 들어오고

거실 책장이 들어 왔다.

트럭 속에 있는 짐을 집으로

옮겨놓기만 하는데도 밤 9시가 넘었다.

겨우 다섯 사람 사는데 저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짐은 넘칠 정도로 많았다.

값나가는 물건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버릴 물건도 없었다.

그러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짐들일까.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떠나고 나서도 남편과 나는

늦은 시간까지 짐을 정리했다.

고단한 몸을 누일 안방을 닦을 때는

새벽 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어느 곳에 무엇이 들어 있는 지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이 된 이삿짐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많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갈 것이다.

비록 썩 내킨 이사는 아니었지만,

이곳에 왔으니까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다시 108배를 시작하고, 천수경을 독송하고 염불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기 위해

걸레질하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집과의 인연이 다하여 또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스스로가 벗어놓은 먼지를 보고 놀라지 않도록

날마다 정갈하게 청소를 하며 살 것이다.

마지막 날 사람들이 내 삶의 흔적을 보고

눈살을 찌뿌리지 않도록 그렇게 살 것이다.

 

나는 이사한 다음 날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짧게 잘랐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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