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도로위에서
"어떡하지요? 너무 막히네..."
지리산 천은사에서 돌아 오는 길이 너무 막혔다.
지리산에서 점심 때 출발했는데
광주를 지나면서부터 붉은 신호등이 켜진 듯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 내가 제안한 것이 서해안 고속도로였다.
경부선은 버스 전용차선 때문에
더 막힐 테니 서해안으로 빠지자는 것이었다.
내 목소리가 너무 자신만만했기 때문일까.
함께 차를 탄 일행은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들어선 서해안 길이었다.
그런데 서산에서부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 아예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시계(視界)는 흐리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전주에서 서해안쪽으로 향하던 시간이 4시 30분이었는데
서산 휴게소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함께 답사를 다니는
우리 일행은 모두 5명이었다.
3명은 박사 과정 동기였고,
한 분은 사진 전공, 다른 한 분은 화가였다.
그런데 다섯명 중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유일하게
사진 전공하신 선생님 한 분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먼길이라도
운전은 오로지 그 분의 몫이었다.
언젠가 학회가 끝나고 뒷풀이하는 자리에서
우리 공부가 너무 현장감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1년에 한 두 번 가는 정기 답사로는
그 많은 유적지를 볼 수 없으니 틈나는 대로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떠나자는 의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답사팀이었다.
그때 사진 전공하시는 선생님이
조금 엉뚱한 제의를 덧붙였다.
예술을 전공한다는
우리들이 그동안 자연을 너무 외면해 온 것 같다.
그러니 가끔씩은 유적지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겨 보자.
공부한다는 의식, 뭔가 얻겠다는 욕심 다 버리고
순수하게 자연 그대로를 받아 들여 보자.
이젠 우리 나이가 뭔가 얻기 위해
악을 쓰며 살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그렇게 해서 생전 처음으로
경이로운 자연을 무심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금강 하구의 철새의 군무, 안면도 낙조,
정령치의 신령스러움, 섬진강의 흐드러진 매화,
만경 평야의 석양...
월출산 아래 보리밭 위로 흐르는 바람...
생전 처음으로,
답사를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어쩌다 심심하면 유적지 한두군데를 들렀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먹기가 무섭게
헐레벌떡 탑을 보러 다녔던 나는,
그 여유로움과 사치스러움이 처음에는 이상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탑을 보기가 무섭게 뒷 산, 앞 산 한 번 쳐다 볼
겨를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습관 때문에
탑도 없는 강가에서 한가롭게 흔들리는
갈대잎을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가,
하는 조바심 때문에 안절부절했다.
이미 상환 기한을 오래 전에 넘긴 글빚이
계속해서 나의 뒷덜미를 잡아 당겼다.
월요일이면 아침부터 시작되는 강의 때문에
행여라도 늦게 도착하면 어쩌나 초조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의 짐과 번뇌를 지고서도 일요일이면 무조건 떠난 길.
그 시간이 어느 새 여덟 번째의 달력을 넘겼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가을산과 겨울강과
봄밭을 헤쳐다니며 이젠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계 부품처럼 살았던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왜 그리 여유 없이 살았던지...
무얼 손에 잡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는지...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고, 상처를 받아 왔는지...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
내 시간 뺏는 사람이라고 서슴 없이 말하던 나였다.
그런 나의 영혼이 얼마나 황폐했는지를
시간을 낭비해보고서야 알았다.
석양빚에 물드는 눈빛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바다빛에 눈부셔하는 마음이 얼마나 숭고한 지를,
산바람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여유가
얼마나 고귀한 지를 가장 귀한 시간을 내주고서야 알았다.
그런데,
도로 위에서 차가 밀려 낭비하는 시간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았다.
고귀하기는커녕, 짜증만 더했다.
게다가 나의 주장으로 벌써 여덟 시간째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른 일행들은 피곤에 지친 듯 잠이 들었는데
운전석 옆에 앉은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차가 너무 막히네요? 경부선으로 갈 걸 그랬어요.
피곤하시지요?
마치 나의 잘못된 판단을 만회라도 하듯
나는 운전하고 있는 분의 눈치를
힐끗 힐끗 보며 자꾸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분의 표정은 의외로 너무나 담담했다.
처음 운전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피로한 탓인지 붉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분은 전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번 답사는 오지 말 걸 그랬어요.
어버이날과 겹쳐서 이렇게 밀리는 것 같은데,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몰라요...
말없이 웃기만 하는 그 분이 미안해, 나는 말이 더 많아졌다.
그 때 그 분이 말했다.
나는 운전하는 이 시간이 바로 수행하는 시간이요.
밀리면 밀리는 대로,
막히면 막히는 대로 그대로 받아 들이면 되요.
조금 일찍 도착하고 늦게 도착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소.
그 모든 시간이 전부 우리 인생인 것을...
짜증나고 답답해하는 자신을 바라 보고
인정하는 것도 마음 공부하는 것이요...
어찌, 절에 앉아서 참선하는 것만이 수행이겠소.
이런 생활 속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다스리는 것이 진짜 수행이 아니겠소?
그렇게 말하는 그 분의 목소리에는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천은사 부처님 전에 절을 하던 모습만큼 숙연해 보였다.
그 분은 절에 가서 절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했다.
운전하면서 막히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도 기도라 했다.
그래...그럴 거야...그게 바로 기도일 거야...
평생 기도하면서 살아가야지. 평생 수행하면서 살아가야지.
비록 절간에 앉아 있지 못하고 아이들하고 북적거리며
살아야 하더라도 기도하는 걸 잊지 말아야지...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30분.
천은사에서 출발한 지 열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분은 나를 내려 주고서도
다시 두 시간은 더 달려야 그 분의 집에 도착할 터였다.
빗속에서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나는 그 분의 말을 생각했다.
나는 이 시간이 바로 수행하는 시간이오...
기도와 수행이 하나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행복하다.
아무리 지루하고 막힌 길을 거쳐야 하더라도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과 함께 하는 인생은,
그래서 행복할 것이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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