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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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평생 살다가 죽은 후에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사이를 중유(中有)라고 합니다.
중유 기간동안을 중유신(中有身)이라고 해서 금생도 아직 안 끝났고 내생도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그렇게 중유신으로 사는 기간이 49일 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49일째 되는 날 49재를 지내 주는 것은 다음 생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해 주십사하고 영가를 위해서 비는 것이 49재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영가를 위해 49일 기도를 하고 7-7재를 지내는데 지장경 제 7품에 보면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천도제를 지내 주면 그 복덕이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7분의 1일은 돌아가신 영가에게 가고 7분의 6은 제를 지내준 제자(祭者)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장경 제 칠품은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고루 이익이 된다는 뜻의 이익존망품(利益存亡品)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재를 지내는 의식을 보면 물론 앞에 관욕을 하는 등의 의식도 있습니다만 그 의식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불보살님께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하는데 그것은 제자(祭者)가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베푸는 의식인 시식을 하게 됩니다.
시식의 가장 핵심은 돌아가신 분이 공덕을 짓게 해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첫 번째가 거불(擧佛) 이라고 해서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시는 의식을 합니다. (조계사 신행법요집 관음시식(p195) 참조)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南無 極樂導師 阿彌陀佛)
극락세계에 주불로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나무 관음세지 양대보살(南無 觀音勢至 兩?菩薩)
아미타부처님의 좌우보처인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나무 접인망령 인로왕보살(南無 接引亡靈 引路?菩薩)
영가를 인도해주는 인로왕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그 다음 거불의식을 하고 나서 청혼(請魂) 의식 즉. 시식을 할 때 재를 올리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영가를 청하여 모시는 염불을 합니다. 청혼은 조상님 영가를 불러 모시는 의식입니다.
영가(靈駕)는 사바세계 남섬부주(사대중에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에 소재한 청정수월도량 조계사에서 재를 지낸다는 뜻입니다.
백중 49일 초재를 맞이하여, 000 거주하는 행효자 (녀, 손, 등 영가와의 관계가 있는 가족) 등이 복위 누구누구 영가해서 영가를 청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 모신 영단의 영가를 주인공으로 해서 영가가 선망부모이거나 조상님들이든 전부 영가가 청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렇게 재를 지내면 그 공덕의 7/1이 돌아가신 영가들에게 가고 7/6의 육이 재를 지낸 제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이야기했는데 여러분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영가에게 너무 적게 간다.'라는 생각을 하셨나요. 아니면 '옳거니 내가 더 많이 가져가는 구나!' 라고 생각을 하셨나요.
아마도 여러분들은 영가가 너무 적게 가져간다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연있는 다른 영가를 청해서 많은 공덕을 짓게 해주는 것입니다.
불교의식을 보면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 그대로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들을 생각해 보세요.
세상을 훌륭하게 잘 살아간다고 하는 것. 가장 훌륭하게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자기 행복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자식이 부모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 편안하게 봉양하는 것 그것이 큰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신도님들도 세상을 살아 보셔서 아시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자기의 노력이나 능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복력이라고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데에도 똑같은 노력과 능력을 가지고도 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 차이가 납니다.
그것을 공덕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지은 공덕만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면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내 공덕을 쌓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했다시피 7분의 6이라는 공덕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게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가족들끼리도 서로를 위해서 살면 다같이 행복해 지는데 자기 욕심만 내다보면 서로가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를 위해서 살면 자기의 공덕이 쌓여서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들딸을 기를 때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답니다.
자식들이 내가 베풀어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식들이 잘 자란 준 점도 있겠지요.
여러분들도 어찌 생각하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잘 자라 주어서 고마운 생각도 들지요?
자식도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자기가 행복해 지고 복이 자라는데 반대로 부모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면 복을 감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이 가장 큰 자신의 행복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영가를 위해서 재를 지냄으로서 복을 짓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공덕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복을 짓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 전에 향을 하나 올릴 때에도 처음 절을 찾은 초심자에게 향 하나 올릴 수 있게 권하는 것이 더 큰 공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가로 하여금 공덕을 짓게 해주는 것을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남에게 공덕을 짓게 해주는 것이 더 큰 공덕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가를 위해서 공덕 짓는 일은 부처님께 불공드리는 일입니다.
내가 영가를 위해서 불공을 드림으로 인해서 공덕을 짓지만 시식은 주안점이 내가 모시는 영가들로 하여금 공덕을 짓게 해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착어(着語)입니다.
영원담적(靈源湛寂) - 영혼(근원)은 맑고도 고요해서
무고무금(無古無今) -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다
묘체원명(?體圓明) - 묘한 본체는 원만하고 밝아서
하생하사(何生何死) - 어찌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겠는가
죽고 태어남이 없다는 것을 최상근기의 영가가 알아듣는다면 여기까지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변시 석가세존 마갈엄관지시절(便是 釋迦世尊 摩竭掩關之時節) - 석가모니부처님이 마갈타국에서 모든 침식을 잃어버리고 하루 쌀 한 톨 가지고 지내는 생활을 6년간이나 계속하셨던 이치
달마대사(達磨?師)께서 소림면벽지가풍(少林面壁之家風) - 달마대사께서 소림굴에서 9년 면벽을 하던 이치
소이 니련하측 곽시쌍부 (所以 泥蓮河側 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관에 모셨는데 곽시쌍부(槨示雙趺) 즉, 부처님께서 두발을 관 밖으로 보이셨습니다.
가섭존자가 멀리 다른 곳에서 법문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부처님 돌아가시고 나서 늦게 도착했는데 그때 발을 관밖으로 보이셨다는 것이 곽시쌍부 일화입니다.
달마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양무제를 만납니다.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궁중으로 청하여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양무제는 자기가 추진한 불사의 공덕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많은 탑사를 지었는데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 공덕도 없소."
달마대사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였습니다. 화가 난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단칼에 처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천축국을 다녀오던 사신이 총령에서 달마대사를 만났습니다. 대사는 짚신 한 짝을 주장자에 매달아 어깨에 걸고 총령을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가. 무제가 얼마 전 궁궐에서 달마대사를 처형하는 것을 보았는데, 처형된 대사가 살았으니 모골이 송연하도록 놀랐습니다. 게다가 달마대사는 사신에게 "양무제도 안녕하시냐"고 안부까지 묻는 것이였습니다.
궁궐로 돌아온 사신은 이 사실을 양무제에게 보고하였다.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장사지냈던 무덤을 파 보았습니다. 그런데 관 속에는 달마대사의 시신은 없고, 오직 짚신 한 짝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는 겁니다.
이 예화는 삶과 죽음이 없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총령도중(?嶺途中) 수휴척리(手携隻履) 제불자(諸佛子) 환회득(還會得) 담적원명지(湛寂圓明底) - 천도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에게 한 생각을 돌이켜서 깨달으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면 일체의 번뇌와 죄업이 사라진 자리, 진여의 세계가 드러나 맑고 고요하고 뚜렷하게 빛나는 근원을 얻는다고 한 것입니다.
일구마(一句 ) - "제일구는 무엇인가?"라는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교의 참뜻은 무엇인가?"라는 말입니다. 선가에서 상용하는 말입니다.
제일구라는 것은 진리 당체를 직접 지칭하는 말입니다. 제일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 직후에 곧바로 요령을 세 번 울리는데, 요령을 세 번 울리는 것이 바로 제일구에 대한 대답입니다.
선 법문에서 세가지 대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자가 "무엇을 법이라고 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냥 몽둥이로 한 대 때리는 예도 있고, 임제스님은 억! 하고 크게 할을 하셨고, 그중에 최고는 양구 인데 양구는 아무말도 않하는 것을 말합니다.
몽둥이로 때린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는지 하는 것은 몸짓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아무말도 않하고 앉아 있는 것을 선가에서는 최고 법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양구라고 합니다.
부앙은현현(俯仰隱??) 시청명역력(視聽明歷歷) 약야회득(若也會得) 돈증법신(頓證法身)
영멸기허(永滅飢虛) 기혹미연(其或未然) 승불신력(承佛神力) 장법가지(仗法加持) 부차향단(赴此香壇) 수아묘공(受我?供) 증오무생(證?無生)
진여 법계는 원만하여 일체의 걸림이 없고 생사가 없는데, 중생들이 고개를 구부리고 쳐들듯이 번뇌를 일으켜서 진여 법계를 배반하였습니다.
그 배반으로 말미암아 생사윤회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고개를 수그리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요, 고개를 드는 것은 태어남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죽고 사는 가운데서도 참 마음의 작용은 뚜렷하여 보고 들음이 밝고 역력합니다.
한 생각, 번뇌 즉 아집을 일으키면 곧 나고 죽는다는 생각이 일어나 생사의 관념에 떨어지고, 한 생각을 돌이켜 아집을 버리고 진여 법계를 바로 보면, 거기에서 법신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런 법신 자리에 무슨 배고픔이나 목마름 따위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참마음 자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거듭하지 않는 법의 자리를 얻어 해탈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먹고 마시지 않더라도 목마름과 주림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목마름과 주림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따라 이 향기로운 단에 내려와서 삼밀가지에 의하여 행하는 법의 공양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태어남이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해탈하라
진령게(振鈴偈)
이차진령신소청(以此振鈴伸召請) - 종소리(법)를 떨쳐서 널리 청하니
명도귀계보문지(冥途鬼界普聞知) - 귀신의 세계에 있는 여러 영가들은 널리 들을 지어다
원승삼보력가지(願承三寶力加持) - 바라건데 삼보님의 위신력을 입어서
금일금시래부회(今日今時來赴會) - 오늘의 이 법연에 모두 왕림 하옵소서.
여기까지는 생사없는 도리를 깨달으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영가들을 오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고 천수경을 읊어 주고 지옥문을 활짝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시게 해서 스님들이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영가를 위해서 제를 지내드리면 그 공덕이 영가에게는 7/1밖에 않가지만 인연있는 다른 영가들도 불러 재를 지내게 해서 7/6의 공덕을 입도록 해준다는 것 하나와 이 관음시식의 제일 앞에 부분은 회고 법문을 해서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게 해주는데 그래도 그 법을 못 알아듣는 영가들을 위해서 의식을 행하는데 그때 그 의식을 하기 위해서 요령도 흔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영가가 오지 못하게 되면 그 다음 염불을 계속해서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 초재 이니까 영가를 위한 마음으로 정성껏 제를 지내시고 그 공덕으로 영가도 천도되고 우리도 수행하는데 장애없이 행복하게 복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정리: 서혜정| 조계사 보도부 법문녹취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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