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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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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식모살이하러 가는 엄마

  • 입력 2004.10.10
  • 수정 2024.11.18

"내일 아침 8시, 부산행 표 한 장 주세요."

통도사에서 특강이 있기 전날, 동네 전철역에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평일 날이라 굳이 예매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신발도 살 겸해서

나선 길에 표를 사게 된 것이다.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6년 동안 신었던 신발 두 켤레가 모두 바닥이

닳아지고 갈라지더니 급기야는 물이 새어 들어왔다.

맨날 돌아다니며 서 있는 일을 하다보니 맵시 있고 품위 있어 보이는

하이힐은 신발장에 곱게 모셔놓기만 하고 신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남들은 늙어 보인다고 외면하는 '효도신발'만 줄기차게 신고

다닌 것이다.

"한양 아파트쪽으로 갈라믄 어디로 간다요?"

표 확인해 보세요, 라는 역무원의 말에 기차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낯익은 전라도 말투가 들렸다.

육십을 훨씬 넘긴 듯 주름살 투성이의 구릿빛 시골 아낙네가

역무원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한양 아파트요?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서 안경 낀 젊은 총각이 고개를 갸우뚱하는데,그 할머니같은

아낙이 다시 물었다. 그라믄, 7번 출구는 어딨다요? 7번 출구는 없는데요,

라며 무신경하게 대답하는 창구 너머의 녹색 복장의 총각은 다른 손님의

표를 건네주느라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시는데 그러세요?"

아마 전라도 말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색빛으로 바랜 잠바에 몸빼같이 헐렁한 황토색바지를 입은 그녀에게

내가 관심을 보인 것은. 말끔한 아파트 숲으로 둘러 쌓인 이 도시에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선 사투리가 그녀를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마치 구원병이라도 만난 것처럼

얼른 종이를 내밀었다.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는 '남원추어탕'이라는 글자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남원추어탕' 밑에는 국밥집과 쌈밥집의 전화번호가 하나씩 더 적혀 있었다.

내가 그 쪽지를 보는 동안 그녀는,

여그를 찾어갈라고 그란디 으짜면 쓰겄소, 라며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아 그 집에 일자리를 얻으러 찾아가는 것 같았다.

 

 

 

 

 

 

 

"너를 낳고 백일인가 지났을 것이다.

돈을 벌어 보것다고 서울로 식모살이를 안 갔겄냐.

근디 끼니때만 되믄 젖이 불어 일을 헐 수가 있어야제...

아, 글고 눈물은 워째 그리 쏟아지던지...

당최 일이 손에 안잽히드라 이 말이여...

에이, 내가 설마 굶기야 허것냐, 싶어 걍 열흘만에

도로 집으로 내려가 부렀다."

그 열흘동안 젖먹이인 내가 엄마젖을 찾을 때면 일곱 살짜리

셋째 언니는 언니밥을 말아서 내게 먹였고 홍시감을 주워다

먹여 키웠다고 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자신이 먹고 싶은 감을 어찌 동생에게 먹일 수 있었을까.

"여보세요? 그곳을 찾아 가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가면 되지요?

이 곳에는 한양아파트가 없는데요...?"

그녀에게서 엄마 모습을 발견한 탓일까. 나는 쪽지에 적힌 곳으로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다리를 건너서 주택단지 쪽으로 오면 골목이 하나 나오는데

그 골목을 끼고 들어오면 비빔밥 집이 나와요. 그 비빔밥 집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그 전화를 받는 여인 역시, 도시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아 보였다.

주택 단지내에 얼마나 많은 골목이 있는지, 비빔밥집이 얼마나 많은 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그녀는 오로지 그녀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적한 마을에서, 대추 나무 집을 돌아 다리를 건너서 쭉

가다보면 두 번째 집이라는 설명과 같았다.

이 마을에 산지 꽤 오래된 나조차도 그녀의 설명대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주변에 있는 큰 건물을 얘기 해 보세요, 라며 나는 미지의

장소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물어보고 메모하는 사이에

거의 이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앞장서는 게 낫겠다, 싶을 때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는 사람 중에서 관대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

사정을 얘기하고, 이 분 좀 느티 마을 사거리까지 안내해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이 분을 따라가면 그 음식점 가까운 곳까지 도착하실 거예요.

그곳에 가서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보세요, 그 곳에서는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라면서

나는 길 모르는 어린 아이를 보내듯 그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 때였다.

"오메, 고마워서 어쩔께라우. 이거밖에 웂어서 그란디 이거라도 받으쇼잉..."

그러면서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동전을 전부 모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하잖아 보이는 그 동전 몇 개가 타향에 온 그녀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큰 돈인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예요, 이 핸드폰은 공짜로 쓰는 거라서, 돈이 안들어요.

저 분 놓치지 말고 어서 따라가세요.

그러면서 나는 얼른 뒤돌아서 지하철을 타러 몸을 돌렸다.

그녀는 가면서도 계속 뒤돌아 보며,

복 받으쇼잉, 존 일 했응께, 복받으쇼잉, 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개찰구로 들어 갔다.

 

 

 

 

 

 

 

식모살이하러 가는 엄마를 뒤에 남겨둔 채 지하철을 타러 들어 갔다

 

 

 

글: 무진당

편집: 일지향

음악 :신영옥/별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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