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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와 암리스

  • 입력 2004.10.10
  • 수정 2024.11.18

홈리스와 암리스 이른 아침,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 내려 서울역 앞 지하 보도를 건너게 되었다. 집에서 나설 때는 괜찮았는데 어느 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지하도 입구까지 급하게 뛰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어두침침한 지하도에서는 눅눅하면서도 역한 냄새가 풍겨 왔다. 이제 지하도를 가로 질러 가면 기차역까지는 비를 맞지 않고서도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공기도 답답하고 불결한 냄새 때문에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부지런히 걸어서 기차역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다보니까 지하도내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종이 박스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신문지를 깔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있기도 했다. 머리는 산발한 채 엉켜 붙어 있는 사람, 허리띠가 풀러져서 속옷이 삐어져 나온 사람, 신발을 벗은 채 땟국물 흐르는 발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사람, 쓰러진 소주병을 옆에 끼고 자는 사람 등 그 모습도 다양했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목까지 흘러 내려 범벅이 된 사람도 있었고,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하게 차려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잠든 사람도 눈에 띄었다. 모양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 남루함과 자포자기의 이불을 덮고 있었다. 눈이 반쯤 풀려 생의 의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중년의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에는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도 더러 들어 있었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 곳에 있게 만들었을까. 지하철에서 걸어 나와 바삐 걸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누워 있는 홈리스(homeless)의 모습이 비 오는 아침에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사로 향했다. 최신식 건물로, 지하철을 타는 곳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서울역사는 홈리스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불과 오십여미터도 안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들은 최신식 건물 옆으로는 오지 않았다. 오줌냄새와 곰팡이냄새가 뒤섞인 구역사쪽이 훨씬 편안한가 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한 나는 커피를 한 잔 빼들고 개찰구로 향다. 넓고 깨끗해 보이는 역사에는 홈리스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서 무료한 시간을 떼우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적어도 땅바닥에 누워서가 아니라 앉아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울역에서 부산까지는 3시간정도 소요될 예정이라 했다. 느리게 출발한 기차가 서울역을 빠져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 새 한강다리를 건너고 수원을 지나고 있었다. 창 밖은 비 때문에 어두컴컴했고 개성 없는 집과 전선주와 유배당한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곤 했다. 빨리 뒤바뀌는 풍경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더러는 잠을 자고 더러는 신문을 보고 더러는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무실을 옮겨 놓은 듯 책을 보고 메모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세시간 내내 책을 읽었다. 얼마나 감동적이든지 밑줄을 그어가며 심호흡을 크게 들이키면서 책을 읽었다. 오후부터 해야 할 특강을 잠시 잊어 버리고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부산에 도착해 있었다. "바쁘신 줄 알지마는 쪼매만 실례를 하겠십니더." 부산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쯤 갔을까. 기차 안에서 책을 읽느라 눈이 아픈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그다지 붐비지 않는 사람들 사이로, 물건을 팔려는 오십대 후반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부산에서도 지하철 풍경은 똑같군, 하면서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내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자가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려는 듯, 지갑에서 급하게 돈을 꺼내는 그녀의 행동이 새삼스레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급하게 천 원을 꺼낸 그녀는 그 돈을 들고서, 내가 외면했던 '잡상인'에게 가더니 물건을 사고는 급히 내렸다. 도대체 무엇을 팔기에 그녀가 꼭 사려고 했던 것일까, 하면서 그 잡상인을 보는 순간 그녀의 모든 행동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칫솔을 담은 가방을 걸친 그 잡상인은 왼쪽 팔이 절반밖에 없었다. 팔 접히는 부분에서 조금 더 내려와 잘린 팔에 가방을 걸친 그는, 왼발 또한 잘려 나간 듯 무릎 밑에 기계로 만든 발을 딛고 있었다. 정도가 조금 심했지만 그런 사람의 모습은 서울이라면 지하철 안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급히 내리려던 여자의 지갑을 열게 만든 것은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얼굴이었다. 살아 계신 부처님의 얼굴이 저러했을까. 예수님의 인자하신 눈동자가 저러했을까. 얼굴은 주름 투성이에 잘린 몸에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온통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얼굴 주름살 하나 하나가 전부 웃는 모습을 위해 그어진 것 같았다. 지하도에 누워 있던 홈리스와 기차 안에서 진지하게 책을 읽던 사람들 얼굴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 표정 속에는 뭐랄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감사함과 생명을 지닌 자의 겸손함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자의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목숨을 담보로 존재의 허무와 싸워본 자의 초연함이 남아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가진 한계와 부조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간 수행자의 향기가 풍겨 나왔다. 그의 얼굴은,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다. 홀린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그 잡상인이 내 앞을 지나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그를 불렀다. 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동안 그는, 칫솔 괘안습니더, 추석 때 손님들한테 내놓아도 아마 조으실 겁니더, 라면서 위로와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내게 칫솔이 필요하고 안하고는 무제 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웃음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서 있는 성자에게 푼돈을 내놓는 게 부끄러워, 정작 그가 가까이에 왔을 때는 감히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내게 돈을 받고 칫솔을 준 그는 환한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다음 칸으로 걸어 갔다. 부자유스럽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하루의 고단함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잡상인이라기보다는 인생이라는 축복속에 마치 소풍 나온 사람처럼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비록 팔이 없는 암리스(armless)였지만 그의 미소는 어떤 군대나 무기로도 빼앗을 수 없는 약속의 땅처럼 보였다. 문득, 나도 그 약속의 땅에 닻을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무진당편집: 일지향음악:여행자의 노래 /임의진사진:제러미 리프킨의 포토 <소유의 종말>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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