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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주지 원담스님이 들려주는 여름나기

  • 입력 2005.07.16
  • 수정 2024.11.19

 

독서삼매경 빠지면 무더위 이겨

이열치열, 더운 차 한잔이 보양식

 

한국불교 일번지인 조계사의 총 살림을 맡고 있는 원담스님이 바라보는 피서법은 무엇일까?

원담스님이 권하는 피서법은 엄밀히 말하면 ‘피서(避暑)’가 아니라 ‘투서(鬪暑)’이다. 즉 더위는 피해야 되는 게 아니라 분연히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는 게 원담스님의 설명이다.

 

 

 

법랍 29년을 맞는 원담스님이 여름나기의 첫째 방법으로 권한 것은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일이다.

“출가한 지 7년째 되던 해 여름이었습니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할 정도로 무더위가 계속 됐습니다. 그해 여름 제가 택한 피서법은 독서였습니다. 평소 읽고 싶었던 《능엄경》과 《화엄경》을 독파했습니다. 마치 화두 참구에 든 것처럼 독서삼매경에 빠지니 마음 속에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가사 장삼이 땀에 절면 등목을 하고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하늘은 높아져 있었고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책에 빠져 있느라 가을이 왔던 것도 몰랐던 것이지요.”

 

여름나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원담스님이 지적한 것은 피부병이다. 습한 체질이라 여름이면 곧잘 피부병을 앓는다는 스님은 오래전 일화를 예로 들었다.

“은해사에서 머물 때였습니다. 당시는 청정비구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모든 스님들이 하얀속옷을 입었는데 성격이 어지간히 꼼꼼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특별히 속옷에 표시를 안했던지라 빨래를 하고 나면 자기 속옷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른 스님의 속옷을 입고 진균성 피부염에 걸려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온몸에 곰팡이균이 퍼져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은 후에야 치료가 됐습니다.”

여름은 전염병이 돌기 좋은 때이니 만큼 각별히 개인위생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원담스님의 설명이다.

 

스님들만의 여름 보양식을 묻는 질문에 원담스님은 주저치 않고 차를 꼽았다. 차 중에서도 냉차가 아니라 온차를 들어야 이열치열이 될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주장이다.

“육식을 삼가는 산중에서는 특별한 보양식이 따로 없습니다. 국수를 공양하고 수박 한 조각 베어물면 그게 바로 보양식이지요. 대신 스님들은 차를 많이 듭니다. 잘 우러난 뜨거운 찻물은 텁텁해진 목을 씻어주고 온몸을 데워줍니다.”

 

원담스님은 범어사에 머물면서 여름내 감자농사를 지었던 일화를 들려주면서 “일에 빠지면 여름해도 금방”이라고 말했다.

“범어사에서 지허스님과 감자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쨍쨍 내리쬐는 땡볕 속에서 밭에 쟁기질을 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렵게 키운 감자를 이웃 암자에 나눠줄 때 기쁨은 무엇으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원담스님은 가장 좋은 여름나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더위는 피하면 피할수록 따라붙는 마구니같은 존재여서 더위가 오고 가는 것에 초극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법주사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 2평남짓한 방에 10여명이 함께 자야했습니다. 모로누워 칼잠을 자도 옆에서 자는 이의 체온이 불덩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더위를 느끼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가파른 둔덕길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영상이었습니다. 고통이 부처고 고통이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한 여름밤의 바람이 유난히 시원한 까닭은 땡볕 더위를 이기고 불어오는 바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반들의 체온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일 때면 한 여름밤의 바람 같은 깨달음을 얻자고 서원을 세우곤 했습니다.”

 

스님은 여름에 떠나볼 만한 곳으로 산사를 꼽았다. 운수납자로 30여 년을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다보니 산사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스님은 멋쩍게 웃었다.

“도시는 자연의 반대말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햇볕이 내리쬐면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꽃이 지듯 자연은 스스로 운행합니다. 도시문명은 자연의 운행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에어컨 바람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은 대숲에 불어오는 바람소리의 그 시원한 느낌을 모를 것입니다. 제발 산사에 가거든 도시생활에 찌든 마음의 때는 벗고 가되 쓰레기들은 바랑에 챙겨가시기 바랍니다.”

 

여름에 읽을만한 책으로 스님은 종단 내 대표적인 문학가답게 시집을 꼽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스님은 1990년 ‘걸망 속에 세계를 담고’라는 배낭여행기를 펴내 10만부가 팔리는 인기를 끌었고 1995년에는 자신이 직접 쓴 ‘뜰 앞에 잣나무’라는 희곡을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여름은 시를 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심신이 지친 때일수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시는 마음밭을 풍요롭게 하는 거름입니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주간불교 855호 2005년 7월 19일자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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