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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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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속에 한국 문화유산 탐방 ①

  • 입력 2005.08.19
  • 수정 2024.11.16

조계사 중·고등학생회 5명은 8월 6일부터 11일까지 5박 6일 동안 파라미타에서 주최하는 “일본 속에 한국문화유산 탐방”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최근 독도문제와 교과서 왜곡문제로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극으로 치닫는 시기였지만, 일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불교문화유산을 알아보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자는 마음으로 캠프에 임하였다.

7월 28일과 8월3일 일본을 가기 전 두 번의 사전 교육을 받고, 8월 6일 드디어 일본으로 출국했다. 교토, 나라, 오사카를 다니며 탐사를 하였다.

 

첫번째날

우리가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간 곳은 다이가꾸지(?覺寺)라는 절이였다. 그 곳은 이케바나라는 꽃꽂이가 유명한 절인데 하룻밤 템플 스테이를 하였다. 꽃꽃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몇 송이의 꽃과 그 꽃과 조화를 이루는 화병으로 여백과 조화의 미를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의 불교는 한국불교와 달라서 종파도 많고 스님들도 모두 결혼을 하시고, 고기도 그냥 드셨다. 그래서 저녁식사에는 불고기와 같은 반찬도 나왔다. 우리나라 음식보다 더 달고 느끼한 맛이긴 했지만 이것도 일종의 문화체험이라는 생각으로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반야심경 사경을 하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열심히 참여하였다.

 

 

 

둘째날

둘째날 새벽5시에 일어나 우리들은 아침 예불에 참관하였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가 하는 반야심경을 하는구나’ 하고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예불이 끝나고 스님께서 참선에 대해 말씀을 하시면서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다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는 다이가꾸지를 떠나 일본의 국보 제1호 「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는 코류지에 갔다. 코류지는 신라사람 진하승이 만들었는데 불상을 안치할 곳이 없어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재질과 크기 면에 차이가 있다.「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적송으로 만들었고, 크기도 1m가 좀 넘어보였다.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말 그대로 금동으로 만들어 져있고 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보다 작다. 우리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목불이 오랜 세월을 버티는 것이 힘들어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섬나라인 일본은 목불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 되어있는 것이 부러웠다.

 

그 다음으로 간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킨카꾸지(金閣寺)였다. 이 사찰의 정식 명칭은 로꾸온지지만 2,3층에 금박을 입힌 킨카꾸(金閣)가 유명해져서 킨카꾸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킨카꾸를 중심으로 조성된 정원은 극락정토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킨카꾸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전이다.  멀리서 볼 땐 금박 때문인지 엄청 화려해보였는데 가까이서보니 금박만 씌워 놓아서 그런지 밋밋한 면도 없잖아 있어 실망했다. 

킨카쿠지에서 일본 다도체험도 했다. 일본 ‘말차’를 먹었는데 많이 썼지만 굉장히 깔끔한 맛이었다. 말차가 써서 그런지 작은 케이크와 함께 나왔는데 케이크를 먼저 먹고 말차를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차가 맛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거품까지 다 먹어야 하는 것이 일본의 예의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소리를 내면 안 되는 것에 비하면 정반대의 예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간곳은 역시 세계문화유산인 료안지(龍安寺)였다. 선(禪)의 경지를 나타내는 카레산스이 정원의 대표적 명소인 료안지는 귀족의 별장을 개조해서 만든 선종사찰이다. 15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정원은 돌의 모양, 이합, 집산, 원근, 기복 등으로 바다, 우주 등 다양한 사물을 상징하며, 보는 이의 사상과 신조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해석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바위의 개수나 모습이 달라 보이며, 어디서 보건 절대로 15개의 돌이 한꺼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한 번에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깊은 뜻이 들어있다지만 어떻게 세계문화유산까지 지정될 수 있었는지 정말 의문스러웠다.

 

다음은 키타노텐만구으로 갔다. 이곳은 신라 제신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곳이다. 일본의 으뜸가는 ‘학문의 신’으로 떠받들여 지고 있는 그는 헤이안시대의 문장박사이자 정치가이며 신라계의 고대 한국인이다. 그래서 이곳은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합격을 기원하러 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히라노 신사와 헤이안 신궁은 백제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제신들이 백제왕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을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이 실정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라노 신사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헤이안 신궁으로 떠났다.  바닥엔 흰 모래가 깔려있고, 건물은 선명한 주황색인 헤이안 신궁은 1895년 헤이안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신사이다. 헤이안 신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술병들이 있었다. 이 술병은 각 지방에서 그해에 만들어진 술중에 가장 우수한 술들을 이 신궁에 바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단청과는 달리 주황색과 초록색만 사용해 지어진 이 신궁이 조금 밋밋해 보였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이 신궁을 칠할 때 페인트로 칠한다는 것이다. 페인트를 칠하면 많은 손상이 갈 텐데 왜 페인트로 칠하는지 모르겠다. 헤이안 신궁을 끝으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세번째날

삼일 째 되는 날, 첫 번째로 간곳은 교토의 상징인 히가시야마 5중탑이였다. 일본은 탑이 쌓여있다고 생각해서 5층탑이라 안하고 중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목탑인데 처음으로 이탑을 만든 사람은 고구려 사신이었던 이리지였다.

 

그 옆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키요미즈데라(?水寺)은 나무기둥이 139개가 조립되어있는 위에 있는 본당이 명물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면 세줄기로 떨어지는 오또와노카끼가 있다. 이는 키요미즈데라의 성수로 통해있어 여기 왔다면 한 모금씩 마시고 간다고 한다. 

 

 

도지(東寺)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57m짜리 오중탑으로 유명한 절이다. 비로자나 부처님과 수인이 같은 대일여래가 안치되어있는데 둘의 차이는 경전에서부터 라고 한다. 이 사찰의 강당에는 21개의 불상과 대일여래가 안치되어 있었다. 도지의 5층탑은 아침에 봤던 히가시야마 오중탑보다 훨씬 컸다. 그렇게 큰 크기임에도 안정감을 주는 탑이었다. 탑까지 다 둘러보고 우리는 뵤도인으로 갔다.

 

뵤도인(平等院)은 1052년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세운 절이다. 지금은 봉황당, 관음당, 종루만 남아있는데 봉황당은 1053년 한 귀족이 자신의 꿈에 나타난 극락정토의 모습을 현실로 재현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지붕에 봉황이 세워져 있어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에 새겨져 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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