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문화

자연과 어울어진 도량, 청평사

  • 입력 2005.10.20
  • 수정 2024.11.15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오봉산 제1봉인 부용봉아래 아늑한 곳에 자리한 청평사(주지 : 청화스님) 이곳은 사찰 뒷 편에 오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지고 전면에 계곡이 흐르는 전형적인 산지가람(山地伽藍)의 풍수를 따른 곳이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光宗) 24년(973)에 영현선사(永賢禪師)에 의해 백암선원(白岩禪院)으로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후 보현원(普賢院), 문수원(文殊院)으로 불려오다 조선 명종 때 허응당(虛應堂) 보우선사(普雨禪師)가 절을 크게 중건하고 이름을 경운산 만수성 청평선사(慶雲山萬壽聖?平禪寺)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계사 불교기본교육 도반 몇몇이 청평사 성지순례를 가기로 날을 정하고 기다리다 이날 경춘선열차에 몸을 실어 소양호의 물줄기를 가르며 3시간 30여분만에 청평사에 도착하였다.

 

청평사 선착장에서 내려 25분가량 숲속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제일 먼저 거북바위가 나타나고 그 뒤로 높이 7m에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구성폭포가 이어지며,  노송사이 바위 언덕에 이끼 낀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일명 공주탑 이라고도 하며 이에 관련한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고려 정원으로 알려진 영지가 있어 오봉산의 근엄한 모습을 한 폭의 동양화로 그려내고 있다.

선동교를 넘어 거북머리 모양의 석조에서 생수를 받아 마시면 청평사에 온 기분이 한결 상쾌해 진다.

 

청평사 앞 돌계단을 오르면 높이 곧게 자라 천연의 일주문 노릇을 하고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일품이다. 한 걸음에 경내의 중문인 회전문(보물164호)내에 들어서면 경운루, 경운루 아래로 계단 몇 개를 오르면 대웅전 좌우로 관음전, 나한전이 위치하며 대웅전 뒤편으로 극락보전과 삼성각이 자리 잡고 있다.

 

통상의 사찰에는 경내에 탑이 있는데 이곳은 예외이다. 경내에 탑이 없는 이유인즉 절 입구에 석탑을 세워 부처님께서 입구까지 나오셔서 중생을 맞이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부처님의 가피가 모든 불자님들에 다다르기를 기원해 본다.

 

이날 몇일 후에 있을 관음전과 나한전에 점안식을 위하여 스님과 신도분들이 분주하게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도와드리지 못하고 극락보전에서 도반들과 예불을 올리고 공양간에서  한상 가득히 차려진 공야만 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청평사 삼층석탑

강원도 문화재 자료 8호로서 청평사 입구의 환희령이라 불리는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삼층석탑을 말한다.

 

이 탑에 얽힌 슬픈 전설이 있다. 당나라 평양공주에게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당태종의 노여움을 사 그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죽어서도 공주를 잊지 못한 청년은 상사뱀이 되었고, 평양공주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 탓에 공주는 점점 야위어 갔으나 달리 해결방법이 없었다. 공주는 중국의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렸으나 허사였다. 이때 신라에서 온 구법승의 말들 듣고 공주는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된다. 공주와 시녀는 지금의 공주 탑 부근에서 여장을 풀고 상사뱀에게 "내가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올 터인즉 몸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상사뱀은 슬며시 몸을 풀고 내려오더란다. 절에서는 마침 가사불사 법회 중이어서 공주는 목욕재계하고 가사를 꿰맨 다음 법당에 들어가 염불을 하고 있었다.

 

공주를 기다리던 상사뱀은 기다림에 지쳐 마침내 공주를 찾아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뇌성벽력 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갑자기 물이 불어나 막 절문으로 들어서려던 뱀을 쓸어 가버렸다. 법회를 마치고 돌아온 공주는 폭포에 죽어 있는 뱀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시원하기도 하고 가 련하기도 했다. 공주는 뱀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묻어주고 본국의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 당태종은 재상 춘축랑에게 금덩어리 3개를 보내 법당을 세우게 했다. 공주는 또 이곳 구 성폭포위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얼마간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이때부터 이 탑을 공주탑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금덩어리 3개 중 한개는 중창불사를 위해 어딘가 묻어 두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청평사 회전문

청평사에서만 볼 수 있는 회전문은  본래는 천왕문의 기능을 담당했던 조선시대 제2산문, 즉 중문에 해당한다. 유일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로서 가운데 넓은 한 칸을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의 좁은 공간으론 벽을 둘러 그 안에 사천왕상의 입상을 안치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 실제로는 사천 왕상이 들어설 공간이 못된다. 아마도 불화로 대신했던 것 같다.

 

회전문이라 해서 얼핏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을 연상하겠지만, 중생들에게 윤회 전생을 깨우치 기 위한 '마음의 문'이다. 특히 절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홍살을 천장에 가로로 배열한 문이어서 주목된다고 한다 조선시대 불교와 유교의 화합이라는  춘천시 문화유산 해설가(이성실)의 설명에 고개를 그덕여 본다.

 

청평사 고려정원 (문수원정원)

청평사의 고려정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이자현이 문수원에 머문 1089 ~ 1125년 사이 만들어졌고, 청평사 들목의 구성폭포에서 오봉산 정상 바로 아래 식암(?庵)언저리 까지 3km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의 계곡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고려 선찰의 계획된 정원이 펼쳐진다.

 

지금은 거의 자연에 묻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얼마 안 되지만 조사 연구한 바에 따라 방대한 규모의 문수원 정원은 동서남북의 네 구획으로 나뉜다.

 

중원(中苑)은 절 아래 구성폭포 일대의 적석(積石)과 연못 , 인공석실, 정자 터로 꾸며진 서쪽 냇가 까지. 남원(南苑)은 복희암과 연못, 동굴 석실, 좌선대(座禪臺) 2기 항상 물이 가득 담긴다는 수만식 돌 정원 주변 까지. 동원(東苑)은 동쪽의 작은 계곡을 중심으로 정자와 소규모의 적석군(積石群)이 으로 구성 되며. 북원(北苑)은 청평사 왼쪽 계곡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 해탈 문을 지나 만나는 가파른 선동과 인공 석산, 오봉산 정상아래 적멸보궁의 아스라한 인공 석실과 그 왼편바위에 이자현이 새긴 각자 청평식암, 그 주변의 좌선대와 돌계단등 가히 선경(仙境)을 이루는 이 일대를 말한다.

 

 

이자현은 이렇게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계곡에 수로를 만들고, 물길을 끌어들여 정원 안에 영지를 만들어 오봉산이 비치게 했으며 물레방아를 돌렸다. 오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높고 가파른 계곡을 돌로 쌓고 다듬어 선 도량과 암자의 수도 분위기에 걸맞게 도량 전체를 하나의 자연숲으로 절묘하게 가꾸었던 것이다.

 

그 일부나마 마음과 몸으로 느끼면서 청정한 도량에서 잠시나마 번뇌의 휴식을 가져본다

 

청평사 영지

이 연못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연못인 영지다. 영지 밑바닥에서 고려 말 청자편과 조선시대 백자편이 발견됐으며, 못의 규모는 남북 19.5m, 북쪽 호수 안이 16m, 남쪽 호수 안이 11.7m로 뒤쪽이 약간 넓은 사다리꼴이다.

 

이는 감상자의 시각을 배려 한 것으로 추측되며, 연못 속에 큰 돌 셋을 놓아둔 것은 삼산의 봉우리를 상징한다. 또 연못을 영지라 함은 물이 맑고 깨끗하여 아름다운 오봉산 부용봉 이 비치기 때문이다.

 

이자현은 청평사를 중건하고 정원을 만들면서 이 영지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정원을 꾸몄던 것이다. 누석식 정원을 중심으로 영지와 정자, 청각적 효과를 위한 수구식 정원까지 동원, 평지의 정원과 계곡에 자리한 정원, 산 속의 정원등 지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정원을 마련해 수도하는 선원의 특색에 걸맞도록 꾸몄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구성을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물씬 느껴진다.

 

대충 대충 보이는 것만 보았더라면 연못에 투영되는 아름다음도 회전문의 홍살문도 보지 못했을 것 현지에서 확인해 보고 출발 전 또 다녀와서 자료를 점검하고 그리고 부처님 앞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가까이. 청평사 적멸보궁 앞에서 도반들이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등산객이 지나며 하는 말 "부처님도 안 계시는데..."

 

적멸보궁에 참배하고 서둘러 수로와 육로 철로를 이용하여 무사히 돌아 왔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