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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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온 곳이 있으니 갈 곳도 있음을 알고 미소 지으며 떠나가기
“뭐라고요. 내가 죽는다고요. 하필이면 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나는 절대 죽을 수 없어요. 나는 꼭 살아야 합니다. 스님 저 좀 살려 주세요. 부처님 은덕으로 살 수는 없는가요. 이렇게는 죽을 수 없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 앞에 선 사람들,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누구나 이와 같을 수밖에 없다. 떠나는 것도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 같이 기다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처럼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설렘으로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다시 한해가 저물고 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위로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IMF이후는 물론 경쟁사회에서의 현실은 물질과 탐욕의 난무로 흘러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라는 말도 점점 낯설고 황폐해 가는 이때 추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한권의 책이 나와 참으로 가슴 뭉클하다.
불교수행자들이 호스피스로 일하는 정토마을에서 지금까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며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세계로 인도한 능행스님의 산문집이다.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선고받은 환자들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 환자들이 죽음을 접할 때마다 느꼈던 좌절과 절망,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여운 등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보석 같은 책이다.
지난달 불교방송 법당에서 가진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출판기념회 자리에는 그동안 스님을 도와 함께 일해 온 관자재 회원들과 여러 지인이 모인 뜻 깊은 자리였다. 스님께서는 1999년 교계 최초의 전문 호스피스 요양시설 정토마을을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개원했다. 평생을 선객으로 살아 오셨던 한 스님이 마땅한 거처를 찾지 못해 결국은 이웃 종교 병원에서 입적하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정토마을은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고 선고받은 사람들이 모여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다.
앙상한 뼈만 남은 식어가는 어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피보다 더 짙은 오열을 쏟아내는 어린아이, 다이아몬드 반지가 담긴 보따리를 안고 고통 속에서 혼자 외로이 죽어가는 장교부인, 비닐을 깔고 휴지를 통째로 넣어 입관을 해도 시신에서 나오는 심한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는 사람, 결혼을 두 달 앞두고 급성 위암을 판명 받은 스물여섯 살 아가씨의 죽음, 자식들이 잘 돌보지 않아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 등 우리 인생에서 삶과 죽음이 진정 무엇인지를 깊이 되돌아보게 하는 절절한 내용들이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매일매일 울어야 했던 스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임종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각자 지어온 업력에 따라, 그리고 마지막 길에서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따라 죽음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느 큰스님께 불명(佛名)을 받고 30년을 꼬박 절집에서 삼보를 받들며 살아오신 어느 노보살님의 기쁨 가득하고 거룩한 열반으로 니르바나에 드실 때는 어디에선가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을 했습니다. 필시 극락정토의 향기라고 주위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그 그윽한 향기를 맡았으며 고인의 모습 또한 너무나 거룩하여 차마 얼굴을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마지막 모습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온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느냐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으며 고통 없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루하루를 잘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고통 받고 있는지, 그들이 외로이 죽어가고 있는지 가족이나 본인이 아니면 모릅니다. 정토 일을 해보겠다고 처음 오시는 자원 봉사자들은 날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흘이 못되어 어느 누구도 견디지 못하고 돌아들 갑니다. 살아온 모습이 서로 다르듯 죽어가는 모습 또한 모두가 그렇게 다릅니다.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짐승보다 못하게 살다가게 됩니다. 초여름 복날 끌려가는 개처럼 죽음에 끌려가지 말고, 성인처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생도 아름답습니다. 미래를 계획하듯 내 죽음도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살아간다면 부질없는 일로 주어진 삶을 소진하지는 않겠지요. 잘 죽는 법을 생각하면 지금 내 삶의 문제가 풀릴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베풀고 나누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현대인들이 사는 모습은 어찌 보면 ‘아수라’라고 하셨다. 자기를 낳아준 하늘같은 부모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 부모가 병들어도 제대로 한번 찾지도 않는 자식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모르셨다. ‘정토 관자재병원’ 은 벌써 오래전에 있었어야 했던 일이었는데 오늘에 스님께서 시작하셨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호스피스다. 이를 우리가 수행으로 받아들인다면 참으로 멋진 수행자가 되는 것이라고 스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밤이면 하늘로 간 사람들이 별빛이 되어 내려온다는 정토마을, 들꽃이 바람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정토마을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또한 그들은 스님의 품속에서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던 시절처럼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으로 떠나가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 스님께서는 탁발을 하러 전국을 다니신다. 지금까지는 너무나 어려워 환자가 먹을 약이 없거나 밥을 굶는 일도 많았는데 부처님의 가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하신다. 이제는 여기저기에서 따뜻한 자비의 손길들이 환자의 기저귀며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오기도 하고 지극한 사랑이 담긴 격려의 전화도 많아졌다. 이런 것 말고도 정토에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밭도 갈고 환자가 입은 빨래며 부엌일까지, 누구나 시간이 허락이 된다면 단 며칠이라고 정토 사람을 위해 달려가 보면 어떨까?
스님께서 지난 6년간 그토록 갈망해왔던 관자재병원 설립도 이제 가능해져 가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 8000평 부지를 마련해 내년 5월 이곳을 말기 환자들을 위한 무료공간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누구나 나는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이 삶은 꿈결같이 지나가고 어느 날 죽음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가져간다. 우리 모두 꿈같은 현실을 빨리 흔들어 깨우고 몸으로 실천하는 원력을 다시한번 마음깊이 가져보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산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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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연춘 (조계사보 취재팀, 가림문예원장)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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