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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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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신문화의 향기 茶 - 차 씨를 심는 마음

  • 입력 2006.05.25
  • 수정 2024.11.22

차(茶)란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라 마시는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나아가 그 나라 문화수준의 향상에 기여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시대를 대표해 온 차인들을 보면 원효대사(元曉?師), 진각국사(眞覺國師) 등의 고승들은 물론 이규보(李?報), 김시습(金時習), 다산정약용(丁若鏞) 추사김정희 등의 문인·학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우리에게 차(茶)를 통하여 선(禪)과 민족정신문화의 향기를 심어준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草衣1786-1866)스님은 당시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새로운 정신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신분이다. 이렇듯 차 문화의 흐름은 불교의 품격있는 진리와 함께 면면히 그 맥이 이어져 왔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스님 좋은 차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좋은 차 맛을 아는 사람이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차 맛을 모르고 어찌 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해마다 각지를 다니면서 그 지방 차의 독특한 성질을 찾아내고 맛보고 만들면서 차 안거에 들어가 20년의 세월을 보낸 혜우스님께서 다반사(茶飯事)라는 책을(초롱출판사)출간했다. 내용에는 오랜시간 차를 만들어오며 익힌 전통 덖음차 제다법을 공개하고 차를 마시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는 귀중한 책이다. 다만 글로써 차가 만들어지는 미묘한 변화를 표현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성분변화를 밀도 있게 설명하여 지금까지 차 만드는 일을 해 오신 분들이 보아도 도움이 될 만큼 자세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른 봄부터 남쪽에다 온 마음을 두고 햇차 소식을 기다린다. 비온 뒤 젖은 신록이 햇살에 더욱 눈부신 날 차향가득 가지고 달려오셨다는 혜우스님을 반갑게 찾아가 뵈었다. 십 수 년의 안거생활에서 오직 차를 만드는데 마음을 다하게 된 계기와 스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제다기술을 이토록 자세히 발표하게 된 연유를 여쭈어 보았다. 

  

‘평소 차를 만들어 나누어 마시는 것을 즐기고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400~500통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산꼭대기에 계시는 스님을 산 밑으로 내려오시라고 해서 길에서 차를 전해주기도 했는데 그때 주고받는 기쁨은 너무나 컸습니다. 수입원이 없어 힘들어 할 때는 주위 분들이 차를 돈을 주고 사 먹기도 했습니다. 그냥 만들어 나누어 마실 때는 몰랐는데 조금이지만 돈을 받다보니 책임감이 생겼고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무서움이 들었습니다. 절집스님들에게 차는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스님들 대부분이 차를 즐기고 좋아합니다.

 

옛날스님들의 바랑 속에 빠지지 않고 들어있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차와 차씨 율무염주였다고 합니다. 차는 수행(修行)중 잠을 깨우고 머리를 맑게 하여 늘 가까이하는 것이고 율무는 수년가 묵은 씨앗도 흙냄새만 맡으면 싹이 돋는 생명력이 강합니다. 어느 인적 드문 산길을 가다가 무성한 율무덤불을 만나면 그 곳이 이름 모를 수행승이 몸을 벗은 자리라 생각하고 예(禮)를 올렸다고 합니다. 예전의 스님들은 외딴 곳 산기슭에 토굴을 지어 홀로 머물면서 주변 틈틈이 차 씨를 심었습니다. 토굴을 들고 남에 있어서도 항시 한 철 살 수 있는 양식과 땔감을 뒤에 머무를 누군가를 위하여 마련해 놓고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 차를 만들 수 있도록 나무가 자라는 데는 3~4년이 걸리는데 차 씨를 심는 마음도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 차를 본격적으로 한번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낸 것은 제가 어느 해 동안거를 해제하고 쓰러져가는 암자에서 살 때였습니다. 시누댓잎 사이로 온기 가득한 바람이 부는 날 문득 차향이 그리워서 뒷산에 올라가 다관 하나를 놓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토굴 처마 끝으로 새들이 집을 지으려고 검불이며 작은 나뭇가지를 물고 바쁘게 드나드는 것을 무심이 바라보다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미물들도 저렇게 제 살 집을 제가 짓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사는가싶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내 삶에서 모든 것이 남의 손을 빌어 여기까지 왔지 지금 내가 의지하고 살아온 이집도 흙벽돌 한 장 쌓아보지 않았고 입고 있는 옷 또한 수없이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왔을 뿐. 내가 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홀로 선 줄 알았던 나는 홀로 선 것이라고는 벌거숭이 이 한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사를 누리며 즐겨 마시는 이 차만이라도 내 손으로 만들어 마시리라 생각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요즘 차를 좋아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국이나 일본, 대만에서 수입되는 차 때문에 우리 차가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차 만드는 곳 또한 많이 늘었으나 좋은 차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차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데도 없을뿐더러 이웃하고 있는 어느 누구도 차 만드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차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차 만드는 기술은 자신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으니 섣불리 남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차 만드는 방법은 차를 일삼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나, 조금이라도 차에 관심이 있어 배우려고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일류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웠다고 누구나 일류요리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배운 사람은 일류요리는 아니더라도 형편없는 요리는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다하는 과정을 아무리 소상하게 가르쳐 주어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온 마음을 쏟느냐에 따라 차의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다 못해 문 닫은 학교를 빌려 제가 이십여년 동안 익힌 경험을 전해주고 싶어 시작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여러 사람들과 서로 공유하여야만 우리의 차가 외국 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간절함을 가지고 있기에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으로까지 출간을 하셨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만든 차를 이름 또한 아름다운 우리말로 지었다. 곡우전에 만든 차를 ‘아직은 이른 봄’, 곡우가 지나 봄꽃이 만계했을 때 딴 차를 ‘봄을 담다’ 이후 마지막에 따서 만든 발효차는 ‘짧은 봄날의 꿈’으로 차의 향기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 저자 혜우스님은 20여 년 동안 차를 만들어 오다가 2005년 섬진강변에 있는 작은 학교를 빌려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 교육원 (전화 061.782.1443)을 열고 농민들에게 그동안 터득한 전통 덖음차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해마다 제다시기의 절정기인 5월 중순 이후면 일반인들에게도 단체로 덖음차 체험교실을 연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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