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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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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정기성지순례- 영암월출산 도갑사

  • 입력 2006.11.14
  • 수정 2024.11.17

불기 2550년 11월 12일 조계사 신도회에서는 영암 월출산 도갑사로 11월 정기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오전 6시 50분에 조계사를 출발해 영암 월출산으로 가는 동안 신도회 구도부장님과 함께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예불을 올리는 모습들이 진지하다.

버스에서 내려 도갑사로 가는 길목은 주변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정갈하고 잘 다듬어진 나무계단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월출산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국보 제50호인 해탈문을 들어서니 예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대웅보전과 가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갑사는 신라말 현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조선시대 들어와 1456년(세조2년)수미왕사는 왕실의 여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암자만 해도 12개 암자가 있었는데 정유재란, 병자호란,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다.

 

대웅보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활작 지붕 건물로서 1977년 화재로 소실되면서 대웅보전 안에 모셔져 있던 석가삼존과 육각보살도 소실되었다. 지금의 대웅보전은 1981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신라 말 99칸의 가장 아름다운 대웅보전을 건립하라는 왕의 명령으로 서까래를 맡은 뛰어난 대목의 실수로 서까래가 전부 도면보다 짧게 끊어져 있었다. 목공은 결국 자리에 눕게 되었고, 며느리의 도움으로 짧은 서까래와 다른 서까래를 겹쳐 대어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부연식(附延式)지붕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며느리의 지혜가 담긴 서까래에 천년의 목공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대웅보전 앞마당에 있는 오층석탑은 고려 초기 작품으로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51호, 보물1433호로 지정 되었다.

대웅보전 뒤뜰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탑으로서 단층기단에 3층의 탑신과 상륜을 모두 갖췄다. 소박한 사람들의 수많은 소원을 담은 채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대웅전 뒤쪽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그림같이 예쁜 노랗고 빨간 단풍잎들이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오솔길을 따라 약간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보물 89호인 석가여래좌상의 위엄 앞에 참배하며,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가 아닌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은 순간이다. 

 

 

 

억새가 만발하고 가을 햇살은, 따사로운 봄날처럼 포근하고 낙엽 쌓인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부도전이 있다. 본래는 미륵전 부근 계곡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다고 한다. 햇볕이 잘 들고 한적한 곳에 잘 모셔져 있다. 고승들의 영전 앞에 예를 올린다.

 

 

 

조금씩 더 올라가는 산길인데도 힘들다는 기색 없이 한곳이라도 더 참배하기 위해 열심히 이곳저곳 다니시는 노 보살님들의 모습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불심이 보인다.

부도전을 조금 지나 도선국사비각이 나온다.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고 한다.

 

 

 

시간관계로 몇 군데 참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여러 도반들과 함께한 이번 성지순례는 몸으로 배우는 불교공부였기에 보람 있고 뜻 깊은 하루였다. 부처님의 가피로 무사히 천년고찰을 다녀온 보살님들의 얼굴에 만족감과 환희심이 가득한 아주 뜻 깊은 성지순례였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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