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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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명절과 불교이야기 1 - 동지
동지(冬至)는 오늘날에도 대접(?)받고 있는 몇 안남은 명절이자 세시절기의 하나입니다.
농경(農耕)제 사회였던 옛날에는 농사에 알맞은 시기를 헤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에 이를 위해 태양이 가는 길을 따라 1년을 24등분하여 24절기를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종기와 추수기, 농번기와 농한기에 맞추어 사회공동체 유지를 위해 다양한 놀이와 여가활동을 하는 특별한 날, 바로 명절을 두기도 하였지요.
고도의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에는 이런 세시절기와 명절이 예전과 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와 관련하여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미풍양속과 설화들은 오늘날에도 매우 소중한 문화전통인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회집단에 비해 이러한 전통이 잘 간직되고 계승되어 온 절 집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명절과 관련된 풍속과 설화들을 되새겨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첫 순서로 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동지는 설날, 정월대보름, 단오, 추석 등과 함께 오늘날 일반적으로 모셔지고 있는 얼마 안남은 명절중 하나입니다.
오래전에 우리 선조들은 동지를 또 다른 설날로 여겨 ‘작은 설(亞歲)’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1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짓날을 지나서부터 서서히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동지를 새로 시작하는 날, 즉 ‘작은 설’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설날이상으로 ‘동지’를 ‘설’로 모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동양에서는 년(年), 월(月), 일(日), 시(時)마다 10간(干)12지(支)를 매겨왔는데, 단오를 보면 동짓달인 음력 11월부터 기산하여 7번째 달인 음력 5월이 ‘오(午)’에 해당되어 단오(端午)라 한 점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 등 고래(古來)의 풍속서에는 동지를 대표하는 풍속으로 ‘달력 나눠주기’와 ‘팥죽 먹기’등을 들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달력이 흔합니다만 옛날에는 달력은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동지가 되면 궁중의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올렸는데 임금님이 이를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관원들은 이 달력을 다시 친지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동지를 맞아 달력을 나눠주는 이유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짓날이 실질적인 새해 첫 날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풍속은 한여름이 시작되는 단오날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扇冬曆)'이라고 불리웠는데, 오늘날에는 절집에서만 동짓날 달력 나눠주는 풍속을 지켜가고 있어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를 이어간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합니다.
동지를 대표하는 또 다른 풍속인 ‘팥죽 먹기’는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시작되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매년 동지가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팥죽을 쑤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팥죽에는 찹쌀로 동그랗게 새알모양으로 만든 단자(單子)를 넣어 함께 먹었는데 자기 나이 수만큼 먹는다고 합니다.
동지 팥죽은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집 대문 주위나 기둥 주변, 마루, 광, 부엌 등에 골고루 뿌리거나 바르기도 했는데, 이는 팥의 색이 생명과 밝음, 양기(陽氣)를 상징하는 붉은 색을 띄고 있기에 삿되고 어두운 기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풍습입니다. 늦은 여름철에 봉숭아를 손톱에 물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동지를 시기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하였고 애동지에는 팥죽이 아이들에게 안 좋다는 속설이 있어 민간에서는 팥죽대신 팥떡을 해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애동지가 든 해에 팥죽을 먹고 싶으면 이런 속설에 구애받지 않았던 절에 가서 팥죽을 얻어먹는 풍속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지 팥죽과 관련해서 널리 알려진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늦잠꾸러기 공양주 보살이 살고 있는 부산 마하사에 동지가 되었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늦잠을 잔 공양주 보살이 스님의 채근에 급히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일찍 일어나 팥죽을 쑤어야 하는데 늦잠을 자고 만 것이지요.
놀란 토끼처럼 허둥대며 옷을 주워 입고 부엌으로 들어간 공양주 보살은 큰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아궁이는 불씨가 꺼져 재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해는 벌써 뜰 앞의 소나무 가지에 걸렸는데 언제 불을 지펴 죽을 쑤어야 할지 공양주 보살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생각 끝에 공양주 보살은 이웃에 사는 나무꾼 김서방 집에 가서 불씨를 얻기로 했습니다.
동짓날의 매서운 찬바람과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뚫고 김서방 집에 도착한 공양주 보살은 급한 숨을 몰아쉬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보세요, 김서방님』
『아니 아침부터 공양주 보살님이 웬일이세요?』
『불씨 좀 얻으러 왔어요.』
『불씨라뇨?』
『네, 그만 늦잠을 자다가 오늘이 동짓날인 것을 깜박 잊었지 뭐예요. 아궁이에 불씨가 꺼져서...』
『아니, 아까 행자님이 오셔서 불씨를 얻어갔는데 불이 또 꺼졌나요?』
『네엣?』
공양주는 무슨 소린가 싶어 놀랐습니다.
『행자님이요?』
『네, 조금 전에 행자님이 와서 팥죽 한 그릇 먹고 불씨를 얻어 갔어요.』
『팥죽까지 먹고 갔다구요?』
『네, 배가 고프다고 해서 한 그릇 드렸더니 다 잡수시고 갔어요.』
김서방의 말에 깜짝 놀란 공양주 보살은 다시 바쁜 걸음으로 절로 향했습니다.
절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간 공양주 보살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훨훨 타고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마솥에는 더운물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공양주 보살은 급히 팥을 삼고 죽을 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때 주지 스님이 들어오셔서 물었습니다.
『공양주 보살, 아직도 공양이 안 되었나?』
『네, 곧 올리겠습니다.』
『어서 올리도록 하게나.』
크게 꾸중 듣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긴 공양주 보살은 서둘러 한 그릇 떠서 대웅전에 공양을 올렸습니다. 다시 팥죽을 한 그릇을 떠서 나한전으로 간 공양주 보살은 나한님 앞에 팥죽을 내려놓다가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이구 나한님.』
공양주 보살은 그대로 엎드려 크게 절을 올리며 참회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공양주 보살을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나한님의 입가에는 붉은 팥죽이 묻어 있는 것이었지요.
이 일이 있은 후 공양주 보살은 크게 각성하여 새벽이면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공양 올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지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날을 맞이하여 팥죽의 의미와 같이 부정한 마음을 가리고 정갈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설날 같은 날입니다. 마하사의 공양주 보살처럼 게을렀을지라도 동짓날 팥죽 한 그릇에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의 시작을 열어 보면 어떨까요?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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