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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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명절과 불교이야기 2 - 입춘(立春)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시명절과 세시절기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세시절기는 태음태양력에 의해 태양의 주기(태양길, 황도)를 24등분하여 구분한 것을 말합니다. 열두 달마다 각각 2개의 절기(節氣)가 드는데 월초(月初)에 드는 절기(節氣)와 월중(月中)에 드는 중기(中氣)를 합쳐 24절기라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연재했던 동지나 소한, 대한,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입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지요.
세시명절은 농경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시기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지닌 날을 말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설날이나 정월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기와 명절은 구분해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절기임과 동시에 명절로도 모셔진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지난 번 연재했던 동지와 이번에 다룰 ‘입춘(立春)’입니다.
입춘은 대개 음력으로 12월(섣달), 1월(정월)에 드는데 24절기의 첫 시작이 되는 절기라 하여 새해의 시작처럼 여겼습니다. 입춘을 기준으로 15일을 5일씩 3후(候)로 구분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언 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땅 속에서 잠자던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얼어붙은 강물속의 물고기가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입춘에는 다양한 풍속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입춘방(立春榜)’입니다. 이 입춘방은 ‘입춘첩(立春帖, 春帖, 春祝)’이라고도 하고 ‘춘련(春聯)’, ‘춘첩자(春帖子)’ 라고도 하는데 한 해의 안녕과 소재영복(?災迎福)을 기원하는 문구를 문설주나 대문에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입춘대길(立春?吉) 건양다경(建陽太慶)’이라는 글귀가 바로 그것이지요.
불가에서도 입춘을 맞이하면 입춘불공을 올렸는데 칠석이나 동지처럼 복을 비는 일반 대중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불가(佛家)의 전래풍속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울러 불교에서도 입춘방으로 ‘진언(眞言, 다라니)’이 적힌 것을 붙였는데, 조선 정조임금 때에는 ‘부모은중경(父母?重經)’에 나오는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라는 진언을 인쇄해 나누어주고 대문 등에 붙여 재앙을 물리치게 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의 전래 풍속을 불교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입춘방에는 재미있는 속담이 전해오는데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立春榜)'과 ‘가게 기둥에 입춘(立春)’이라는 속담이 그것인데 둘 다 어떤 일을 할 때 격(格)에 어울리지 않음을 탓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立春榜)'은 우리 모두 잘 아는 대로 흥부네는 기지개를 켜면 발은 마당으로, 손은 벽 밖으로 나가는 집인데 그런 집 기둥에 입춘(立春)을 맞아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게 기둥에 입춘(立春)’이란 속담에서 ‘가게’란 오늘날 포장마차 같은 길가의 임시상점인 ‘가자(假字)’, ‘가가(假家)’를 말하는 것인데 옛날 번화한 종로통(鐘路通)에서 장사하다가 고위 관리나 벼슬아치들이 행차할 량이면 허물었다가 다시 지어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집 같지 않은 집에‘입춘대길(立春?吉) 건양다경(建陽太慶)’같은 입춘방을 써붙였으니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건양다경(建陽太慶)’같은 구절은 궁궐에서만 쓰인 대표적인 입춘첩이었다고 하니 왜 이런 속담이 나왔을까 짐작이 됩니다.
입춘방 이외에도 다양한 풍속이 전해지는데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이 날 보리뿌리를 뽑아 보리의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요,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또한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도 하였습니다.
아울러 ‘아홉차리’가 있는데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는다고 하여 학동은 천자문(?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꼬고, 아낙네들은 빨래 아홉 가지 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는 풍속도 있었는데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고 하여 밤중에 몰래 냇물을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길 한가운데 돌을 치운다거나, 거지나 가난한 이들에게 몰래 선행들 베푸는 미풍양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풍속은 불교에서 입춘 등을 계기로 자신과 남을 동시에 구제하는 ‘자리리타(自利利他)’의 대승보살정신을 대중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안배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남도의 어느 ‘상엿소리’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어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人功德)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중국의 옛 시인 소동파의 ‘춘야(春?)’라는 시에는 ‘춘소일각 치천금(春宵一刻 値千金)’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봄날 밤의 한 순간은 천금과도 같다’는 뜻입니다. 흥취 좋은 봄날의 정겨움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시간을 의미하는 계절의 시작인 봄을 통해 인생의 초년기의 소중함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입춘은 곧 봄에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입춘을 맞이하여 겨울처럼 메말라 움츠렸던 마음을 봄기운에 저절로 기지개를 켜는 새싹들처럼 따뜻한 마음, 베푸는 마음으로 변화되길 정갈한 마음으로 기도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의 입춘풍속을 본받아 아무도 모르게 이웃을 위한 작은 선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나만이 알고 있는 작은 공덕행의 짜릿함이 우리 모두를 일 년 내내 봄의 한가운데로 인도할 것입니다.
올 해는 입춘을 1주일여 앞두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성도재일(成道齋日)’이 있었습니다. 이때가 되면 선원 및 강원에서는 스님들이‘용맹정진(勇?精進)’이라 부르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곤 합니다.
올해 입춘에는 입춘방에‘적선공덕 가행정진(積善功德 加行精進)’이라 써서 붙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을 실천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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