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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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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보궁 2차 참배 정암사 법흥사

  • 입력 2007.03.05
  • 수정 2024.11.19

3월 2일 (금요일)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새벽을 뚫고 4대의 버스가 원주스님 도경스님과 부전스님 일수스님을 모시고 조계사를 출발하였다. 이번 두 번째 정월보궁 참배지로 먼저 정암사에 도착하니 그곳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암사는 백두대간의 한가운데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사찰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다.

 

신라 선덕여왕14년 (서기645년) 고승 자장율사가 건립한 사찰로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사리, 불가사, 패엽경 등을 전수하여 귀국한 뒤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그 중 수마노탑에 부처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여 세웠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탄허스님의 친필인 '태백산 일주문'이란 편액이 눈에 들어 오고 특히 배흘림기둥이 아름다웠다.

비가 오는 탓에 미끄럽긴 하지만 급한 마음으로 적멸보궁을 향했다. 극락교를 지나니 1300년 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사용 하시던 주장자를 꽂은 선장단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가지가 돋아 성장하여 오늘까지 푸르게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다.

 

 

법당 안에는 다른 적멸보궁과 마찬가지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남면벽에 신중탱화를 걸어 놓았는데 적멸보궁 이라고 네 글자가 아닌 '적멸궁'이란 세 글자의 편액이 특이 했고 주련은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의 게송 12구절이라고 한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수마노탑은 가파른 자연석으로 쌓은 돌계단을 몇 굽이 꺾어 돌아 굳은 암반위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정서향으로 서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용왕이 용궁으로 모시고 가서 주신, 물은 건너온 마노석으로 탑을 쌓아 만든 탑이라 '수마노탑'이라고 한다. 회색 석회암으로 7층 석탑인데 높이가 9m로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 정교하게 회색 마노석으로 쌓았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95년 현재의 탑으로 복원 된 것이다. 초층 몸돌의 서쪽 가운데 자그마한 네모난 궤를 만들어 넙적한 돌 하나를 끼워 가운데에 세로줄을 그어 두짝문임을 표시하고 철제 문고리를 달아 사리를 모셨다는 상징을 보였다.

 

 

특별한 전각은 삼성각과 나란히 자리한 '자장각'이었는데 정암사에서 가장 작은 규모로 자장율사진영을 모셨다. 1978년 일섭스님 제자인 조정우가 두 점을 그려 하나는 오대산 월정사에 모셨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탄허스님의 친필 현판인 육화정사를 돌아 내려오다 보니 포대화상의 환하고 너그러운 미소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점심공양을 하고 정암사를 출발하여 태백탄광이 있었던 산들을 바라보며 2시간 가까이 달려 사리 신앙의 기도처라는 법흥사에 도착했다.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당나라에서 귀국 후 양산 통도사와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에 사리를 봉안한 후 영월 법흥사를 창건 하고 이름을 흥녕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법흥사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초에 형성된 구산선문 가운데 사자산문의 중심도량이며 구산선문 중 최대 규모였다. 구산선문은 당에서 남종선을 전수 받은 유학승이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러 형성된 것으로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교외별전의 선지가 풍미하게 되었다.

 

구산선문은 실상산문 남원 실상사, 가지산문 장흥 보림사, 동리산문 곡성 태안사, 성주산문 보령 성주사지, 사굴산문 강릉 굴산사지, 사자산문 영월 법흥사, 봉림산문 창원 봉림사지, 수미산문 해주 광조사지, 희양산문 문경 봉암사로 그 중 실상산문이 최초의 산문을 개산하였고 마지막 개산은 희양산문이다.

 

절 입구에는 왼쪽 숲에 사자산문을 흥성시킨 보물 제612호인 높이 3.6m의 징효대사의 탑비가 서있고 일주문 대신 8개의 기둥으로 된 금강문이 있었다. 그 위에는 범종루가 있는 데 법고만 있고 범종은 따로 범종각에 있었다.

 

편액이 '적멸보궁'이라고 쓰여진 법당 안에 들어서니 황금빛 좌복 만이 눈에 들어왔으나 부처님이 앉아 계신 듯 했고 대형유리 뒷편에 자장율사가 수행했던 자장굴(토굴)과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었다. 상/하대석에 앙련과 복련을 장식하고 여섯 면에 신장상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2000년에 완공된 산신각에는 사자산 산신, 구봉대산 산신, 백석산 산신 세 분이 모셔져 있었고 그 밖에 극락전과 칠성, 독성, 용왕대신을 모신 단아한 맞배지붕의 삼성각은 영험이 뛰어나다고 한다.

 

특히 만다라전이 눈에 띄었는데 티벳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명상을 통해 우주의 핵심 대일여래의 큰 생명력에 합일하고자 하는 깨달음의 안내도라는 글과 함께 정방형의 만다라가 놓여 있어 이곳에 만다라 전을 지은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돌다보니 아쉬운 점이 많아 다음기회에 다시 와서 차분히 1300 여 년 전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이다.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다리는 무거웠으나 번잡한 마음은 산중턱을 떠도는 구름 속에 흘려보내고 잠시나마 빈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내려왔다.

 

 

香光心 한은해

교육학 석사, 식품영양학 대학 강사 역임, 琅 조계종 포교사, 琅 조계사 신행안내부 1팀 총무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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