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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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이 떠나가고, 조계사가 떠나가고...(삼천배 용맹정진)
성철스님의 도와 덕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 모든 유명 인사들과 정치인,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성철스님 뵙기를 간청하였으나, 스님께서는 '나를 만나려거든 일단 부처님께 3000배 절을 올리고 난 후에 찾아오시오'하시며 이들을 물리치신 적이 있으셨다. 이는 그만큼 3000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과 지독한 인내, 불심이 필요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돕기 3000배 용맹정진'이 계획된 불기 2551년 5월 12일, 행사 시작 3시간 전, 치욕을 겪으신 할머니들의 슬픔을 부처님께서 위로하는 걸까?
비가 내린다. 세찬 빗줄기는 어느새 푸르러진 조계사 뜰 앞 회화나무 잎새를 타고 무지개색 봉축등을 적시고 마당으로 떨어져 대웅전으로 향하는 발길을 질척이게 한다.
비가 오는 탓일까? 그렇게 북적이며 부산하던 조계사 뜰이 오가는 발길이 뜸하고 스산하여 쓸쓸하기 까지 하다. 필자도 행사의 진행요원으로 참여해 행사를 준비해온 터라 과연 궂은 날씨 속에 신도님들과 불교대학 도반들이 얼마나 동참을 해줄까 걱정을 하며 대웅전 부처님께 모든 행사가 원만히 진행되어 주십사 삼배에 예를 올리고, 행사요원에 합류,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기며 초조하게 행사시간을 기다렸다.
5월 12일 19시
드디어 3000배 용맹정진 시작, 기우와는 달리 비가 오는 날씨 속에서도 동참하신 분들이 너무 많아 일부 신도님들은 극락전과 대웅전 봉당에 돗자리를 깔고 모실 수 밖에 없는 대 성황, 교무국장 묘경스님의 집전으로 삼귀의례와 반야심경 독송, 3000배 절을 시작하는 자세와 당부사항, 신도회장 축사, 총동문회장 축사, 총학생회장의 '오늘 이 자리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힘이 들 때는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격려해주며 삼천배의 절을 원만히 마쳐, 부처님의 법비를 흠뻑 맞고 환희심으로 회향하시기 바란다.'는 축사와 불교대학 신행부장의 '우리 불대생도들은 삼천배 용맹정진을 계기로 부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고자 합니다.'라는 발원문을 끝으로 머나먼 여정의 용맹정진 1회의 시작, 묘경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추어 약 4~5백 여명의 불자들이 108배부터 시작하였다.
20시 23분, 2회 420배 시작.
둥, 두두둥, 북이 울고, 징이 울고, 석가모니불을 목놓아 부르며, 간절한 원으로 절을 한다. 대웅전이 떠나가고, 조계사가 떠나가고, 서울이 떠나가고. 대한민국이 부처의 나라로 떠나간다. 어떤 이는 가정의 평안과 건강을 발원하고, 어떤이는 사업의 번창을, 어떤 이는 만병의 근원인 번뇌를 끊을 수 있게 해 달라 발원하고, 어떤 이는 무념 무상으로, 각자의 서원은 달라도 일심 동체로 예를 올리는 그들의 뒷모습이 청정하다. 저 많은 불자들의 일사불란하고 장엄하기 까지 한 움직임, 아! 아! 부처여 저들에게 가피의 영험을...
21시 57분 3회 324배 종료, 22시 40분 4회 324배, 총 절의 회수 1248배, 1500회가 가까워 올수록 절의 속도가 둔화되고, 나이 많으신 분들의 탈락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 일부는 가부좌로 부처의 이름을 애걸하고, 일부는 부복(俯伏)으로 간절하게 석가모니불을 되 뇌이고, 저마다 주체(主體)를 상실한 아상(我相)들이 대웅전 공간을 날고,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절을 한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대웅전 문지방 넘어, 나이 어린 소년 둘이서 회화나무 아래, 비를 맞으며 108염주를 맞잡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저들은 부처님의 진리를 알고 기도 드리는 걸까? 티 없이 맑음과 청정함, 그들 안에는 불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의 몰입한 소년들...
대웅전 주춧돌 봉당 아래, 연로한 노구를 이끌고 벌써 1500회를 넘으신 양대길(72세)할머니, 무엇을 발원 하셨냐고 물으니 '그냥 따라 하지요.' 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세상 세파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돈 많이 벌게 해주십사, 사업 번창하게 해주십사, 부처님께 짐이 되는 발원만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5월 13일 0시30분 6회 1920배 종료, 모두 간식으로 준비한 유미죽(찹쌀, 깨, 보리 등을 갈아 만듦.)
한 사발씩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01시 17분 다시 7회 324배 정진으로 들어갔다.
02시 55분 8회 324배, 9회 시작 02시 58분 324배.
서로가 서로를 곁눈으로 격려하며 북치는 사람, 징치는 사람, 정근으로 석가모니불을 외치는 사람, 절을 하는 사람, 모두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 예서 말수는 없는 일, 고지가 저긴데, 부처님 정토가 바로 코앞인데, 가자가자 어서 가자, 밀고 끌고 마지막 안간임의 소리...
애처롭다 못해 처절하다. 3000배 달성이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저들은 극도의 피로와 정신적 해이의 기로에서 처절하게 자신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부처여 부처여 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9회324배, 총 2892배를 마친 시각 03시40분, 이제 108배만 마치면 대망의 3000배 달성이다.
마지막 108배 마무리, 교무국장 묘경스님 죽비소리에 따라 드디어 마지막 108배가 시작되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죽비소리는 지친 육신에 채찍으로 휘감기고 천길 만길 단애 끝으로 내몰리는 자아의 비명, 기어코 넘어야 할 절명의 순간들... 한 숨 몰아 깔딱 고개를 넘고, 106,107,108, 착,착,착... 마지막 3000배 완료를 알리는 죽비 소리.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사람, 은근한 미소로 두 손 모아 부처님께 감사하는 사람, 서로의 이마에 땀을 닦아 주며 드디어 해냈다는 환희의 미소, 기쁨과 충만의 빛들이 한 동안 대웅전에 일렁이고 있었다.
2007.5.13 03시 55분
드디어 여러분들이 해 내셨습니다. 앞에 서두에서 말씀 드렸듯이 실천이 얼마나 용기와 감동을 주고 내 자신이 훌륭하며 아름다운지,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난관과 시련이 온다 해도 부처님 안에서 충분히 여러분들은 헤쳐 나갈 것입니다. 자리를 같이 하신 앞, 뒤, 좌우 분들께 이제 자신 있게 도반, 법우라고 불러 주십시오. 충심으로 3000배 이루심을 치하 드리며,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고 모두가 다 성불하십시오. 그렇게 교무국장 묘경스님의 말씀을 끝으로 3000배 용맹정진 대장정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뎅뎅뎅, 딱딱닥... 은은히 새벽을 알리는 도량석이 운다. 미명의 새벽,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이 펼쳐지고 있다. 목탁을 치며 독경을 하는 스님들의 뒷 모습이 청정하다. 사랑으로. 존경으로. 온 마음으로 경건하게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스님들, 그리고 3000배를 올리고 두 손 모아 새벽예불에 참여한 도반, 법우, 불자들 모두 시방 황홀하리. 흠모와 경배의 念염으로 이윽고 명상에 들고, 그 명상 안에서 일쑤 무심(無心)을 만날 수 있으리.
회향하는 길, 연꽃 한 송이 마음의 등불되어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다 성불 하소서!
중거 박용신
한국화가와 사진가, 한국문인협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계사 불교대학일학년 법우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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