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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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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沈默)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

  • 입력 2007.06.14
  • 수정 2024.11.23

어느새, '어느새'란 말이 실감나는 유월도 중순이다.

 

또 다시 새해를 맞으며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아 두어 온 신년 벽두의 다짐들도 반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 공허(空虛)한 메아리로 시간의 수레바퀴 밑으로 사라지고 분주한 일상은 본의 아닌 거짓의 지껄임과 행동으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날로 심화되는 회색도시의 공해와 고도화된 산업화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게 하고, 피폐하고 삭정이진 마른 가슴은 어루만져 주고 감싸 주어야 할 적당한 핑계의 휴식과 불현듯, 훌쩍, 떠나는 여행 같은 그 어떤 모멘텀의 계기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하여, 그 떠남 안에서 마음을 삭이고 무심(無心)한 가슴이 따뜻해지면, 초발심으로 근연(近緣)하며, 잠시 나를 내려 놓고, 찾아낸 침묵 안에서 내 모습을 세심하게 돌아 보고 반 년 남은 일상을 다시 시작하며 정진(精進)하는 일.

 

위봉사(威鳳寺),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자리한 위봉사는 침묵(沈默)을 만나기에 좋은 절이다.

 

조붓 말쑥하게 포장된 도로를 구비 돌아 추줄산 중턱, 분지에 이르면 봉황이 알을 품다 날아간 둥지같은 자리 제법 규모가 큰 산사 하나, 비구니스님들의 수도 도량 위봉사가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 604년(백제 무왕 5년)에 서암(瑞巖)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에 전설적인 설화가 실려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신라 말기, 한 서민 출신의 최용각(崔龍角)이 말을 타고 전국 산천을 유람할 때, 봉산(鳳山) 남쪽에 이르러 등나무 덩굴을 잡고 겨우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어떤 풀섶에서 상서로운 빛이 비치고 있어, 그 빛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세 마리 봉황새가 날고 있어서 그는 거기에 절을 짓고 위봉사(圍鳳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공민왕 8년(1358) 나옹화상이 절을 크게 넓혀 지었고 조선 세조 12년(1466) 석잠, 선석 두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조선 말기 포련대사에 의해 60여칸의 건물을 중수 1912년에는 전국31 본산 중 하나로 전북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 하기도 하였으나, 6.25동란을 거치며 급속히 퇴락, 폐사직전에 이르렀으나 1988년 현재의 주지 법중 스님이 16년의 걸친 대작 불사로 10여동의 건물에 5~60명의 대중이 상주하는 전북을 대표하는 비구니선원이자 포교의 전당으로 중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주문으로 올라서는 돌계단, 그리고 획의 삐침이 뭉툭하고 어눌하여 지나치지 않을 만큼 묵직하고 굼뜬 해강 김규진의 현판 예서 서체, 첫 마주치는 조화된 침묵이다.

모나고 제멋대로인 돌들을 적당히 나열해 고이고 높인, 해서 엄격한 직선을 찾을 수는 없다.

설우에 깍이고 시간속에 풍화된 계단석들이 발아래서 중수의 인내와 역사를 말해준다.

적당한 구부림과 숨가쁨은 묵언(默言)을 암시하고 사천왕문을 지나 다시 반 배쯤 고개를 숙이고 봉서루(지장전으로 쓰임)를 지나면 저기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보물 제 608호 보광명전이다.

 

 

보광명전, 빛을 두루 비춘다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은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건축 기교로 보아 17세기 경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며 ‘普光明殿’이라 적힌 현판은 조선 순조 28년(1828)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보광명전에서 바라보는 앞마당은 왜 그리 넓은 가? 지나친 공간의 여백이다. 이건 여백의 미가 아니라 강요된 공허(空虛)이다. 공허 안에서 마주치는 침묵, 숨소리조차 짐스러운 고요가 흐른다.

 

거기 고요를 깨는 풍경하나, 그 무거운 침묵과 고요를 감당하며 휑하니 버티고 선 소나무 한 그루, 저 서암대사의 니르바나 꽃과 같다 할 까. 생각을 잠시 접고 관음전 곁, 쪽문을 지나 30여 돌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에 이른다. 10여 동의 사찰 경내가 발아래, 한 눈에 들어온다. 마주 선 삼성각과 위봉선원, 이미 하안거의 들어 수행중이실 비구니 스님들께 송구한 마음이 들어 발 뒷굼치를 들고 사뿐, 사뿐, 걸음을 옮겨 살며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움직이는 것들은 바람에 하늘 거리는 푸른 나뭇잎새와 멀리 둥실 떠가는 뭉게구름 뿐, 때 이른 유월의 더위와 내리쬐는 태양 빛, 가슴속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요와 침묵이 깊게 침잠 한다.

 

침묵(沈默)의 산실-위봉선원(圍鳳禪院)

일체의 수식을 벗어 버린 적막함 속에서만 풍경이 운다. 그 적막함은  부처와 스님을 친견하려는 우리 불자들만이 독점적으로 누려야할 특권적 부유물은 아닐 것이다. 소음 세상을 벗어나 귀를 씻으려는 중생, 모두들에게 그 침묵은 골고루 분배되어야만 마땅할 것이다. 세상이 자꾸 소음만 만들어 낸다면 어디에선 가, 역시 침묵을 생산해 내야 하지 않겠는가. 바다와 숲이 그리고 산과 계곡이 우리에게 포근한 침묵을 주듯, 비구니 스님들의 안거(安居) 수행처에서 생산되는 한 차원 더 높은 푸른 침묵은 절을 찾는 속세 모든 중생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해서, 이 곳을 침묵의 공장이라 불러도 좋겠다.

 

 

위봉선원을 뒤로 점심공양이 차려진 극락전(極樂殿)으로 향했다. 극락전, 1994년 완공된 ㅁ자형의 60여 칸 목조건물, 전면은 극락전으로 내부에는 아미타불좌상과 극락정토만다라(만불탱화)를 모셨으며, 후면은 주방과 공양실, 측면은 소임자 방사(房舍)로 사용되고 있다.

 

공양간, 소반에 정갈하게 차려진 소담한 진수성찬, 풋풋한 상추쌈,김치,깍뚜기, 오이무침, 깻잎절임, 간장, 된장, 연근, 묵은지 두부찌게, 버섯장아찌,그리고 호박전과 장작으로 군불을 때 갓 지은 이밥 한 사발, 이런 호사가 어디 있는가. 모두가 다 비구니 스님들의 울력으로 생산된 웰빙 음식들이다.

 

 

이러한 음식이 생산되기까지 비구니스님들의 피땀 어린 수행이 깃들어 있을 터, 출가하여 행자시대를 땔감을 구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불목하니'를 시작으로, 공양상을 차리는 '간상'과 갖은 밑반찬을 만들고 온갖 나물을 씻고 썰고 데치고 무쳐, 양념해야하는 '체공'을 거쳐, 어느 정도 반찬 만드는 일이 익숙해지면 국을 끓이는 '갱두' 소임과 이후 밥을 짓는 '공양주 직분으로 행자 수련의 마지막 관문을 졸업하고 드디어 비구니스님으로써 거듭나는 것, 하여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저 정갈하고 고귀한 비구니스님들의 곡식을 축낼 수 있단 말인가, 점심상 받기가 황공하고 송구스럽다.

 

한 상 턱, 융숭한 점심 대접을 받고 포만으로 행복한 배를 두드리며 같이한 신도일행과 다음 행선지, 송광사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른다.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만난 값진 묵언과 인내의 침묵(沈默)으로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다가올 지라도 다시 일어나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는 행(行)의 주추가 될 것이고, 위봉사는 우리가 가져다 부려 놓은 저자의 찌들은 때와 소란을 떨어내고 다시 정밀한 고요 속에서 깊게 깊게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다.

 

지금 비구니스님들, 지독한 도로(徒勞)와 도로(道路)사이, 선원장(禪院長)큰 스님께 죽비로 등줄기를 맞으며 안거(安居) 해제(解制)일을 손꼽아 기다릴 지도...

 

극락전 종무소에서 친절하게 사찰 안내를 해 주시던 비구니 스님의 해맑은 미소가 한 동안 차창 밖에서 너울거리고...  

 

  

위봉사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익산IC (799번 지방도, 봉동 방면) → 봉동(17번 국도, 전주 방면) → 용진 면소재지(용흥) → 용진주유소 앞 삼거리(좌회전, 소양 방면) → 소양 → 송광사 입구 벚나무길 →  위봉산성 → 위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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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0일, 신도회에서 주관하는 성지순례 일환으로 전북 완주 위봉사와 송광사에 다녀 오다. 

성지순례 안내 : 조계사 신도회 사무처 02-732-2187

 

 

중거 박용신

한국화가와 사진가, 한국문인협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계사 불교대학일학년 법우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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