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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시명절과 불교이야기 ⑧ - 유두

  • 입력 2007.07.20
  • 수정 2024.11.22

음력으로 6월, 양력으로 7월 무렵이 되면 유두(流頭)와 복(伏)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특별히 기리는 바가 없어 잊혀져가고 있는 절기이지만 유두도 엄연한 우리의 전통 세시절기의 하나입니다. 아울러 유두에 비해 속절(俗節)임에도 우리에게는 더욱 친숙한 절기가 복인데 대개 유두와 함께 오므로 이번에는 유두와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유두란 말은 원래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의미의 ‘동류수두목욕(東?水頭沐?)’이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유두를 달리 ‘수두(水頭)’로도 표현하는데 이를 이두식으로 해석해보면 곧 ‘물머리’, ‘물마리’, ‘물맞이’로 해석되어 유두의 본래 의미를 짐작케 합니다. 오늘날에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짐작을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두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3세기 고려 희종(熙宗) 때의 학자인 김극기(金克己)의 저서, 「김거사집(金居士集)」에 의하면,

 "동도(東都:경상도 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厄)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라고 적혀있어 이를 통해 유두가 이미 신라시대 때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도 “경주 풍속에 6월 보름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을 씻어 버린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유두의 기원이 주로 옛 신라의 영역이었던 경상도지방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두날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유두천신(?頭薦新)’을 들 수 있습니다. 유두천신이란 이 무렵 수확된 조나 기장, 콩 등의 햇곡식과 참외, 수박 등의 햇과일을 사당에 올리고 고사를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아울러 농촌에서는 사당뿐만 아니라 논두렁 밭두렁에 직접 음식을 진설하고 농신(農神)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사를 지내고 난 후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계곡을 찾아 머리를 감고 준비한 햇과일과 절기음식을 즐겼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 혹은 유두잔치라고 하였습니다.

육당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이나 일본소설 금색야차를 ‘장한몽’으로 번안하여 이수일과 심순애의 순애보를 만들어낸 행남 이승만이 쓴 「풍류세시기(風?歲時記)」등에서는 유두날 머리감기 좋은 장소로 서울의 경우, 정릉계곡과 지금의 사직공원이 있는 황학정(黃鶴亭:활터) 근방,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로 관세음보살이 계신 ‘보타락가산’에서 유래한 낙산(駱山) 밑 등을 명소로 꼽았는데 모두가 시내에 가까운 계곡으로 뛰어난 풍광을 지닌 곳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유두잔치에 즐겼던 음식으로는 유두면, 건단, 수단, 상화병(霜花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유두면을 먹으면 장수 하고 더위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유두날이 되면 남녀노소 누구나 먹었다고 합니다. 밀가루로 만드는 유두면은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액운을 막는다고 하여 구슬모양으로 만들어 오색으로 물들인 후 세 개씩 포개서 색실로 꿰어 차거나 문설주에 매달기도 했다고 합니다.

수단과 건단은 쌀가루로 쪄서 길게 빚으며, 가늘게 썰어 구슬같이 만들어 꿀물에 담그고 얼음물을 넣어서 먹는 것은 수단이고 얼음물에 넣지 않고 그냥 먹는 것이 건단입니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분단(粉團)을 만들어 꿀물에 넣어 먹는데 이를 수단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멥쌀가루를 쪄서 긴 다리같이 만들어 둥근 떡을 만들고 잘게 썰어 구슬같이 만든다. 그것을 꿀물에 넣고 얼음에 채워서 먹으며, 제사에도 쓰는데 이것을 수단이라고 한다. 또 건단이라고 하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물에 넣지 않은 것으로 곧 찬 음식의 종류이다. 혹 찹쌀가루로 만들기도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화병은 밀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하여 콩가루와 깨를 섞어서 꿀물에 버무려 쪄서 먹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잔치를 즐겼던 것은 유두 무렵이면 가장 바쁜 농촌의 모내기와 보리타작이 끝난 후 잠시 여유가 있을 시기로, 그동안의 피로를 씻고 이후 다가올 한여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와 휴식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은 세 가지가 있어 이를 삼복(三伏)이라 하는데 유두와 함께 음력 6월에 오는 복은 대개 초복(初伏)과 중복(中伏)입니다.

복은 원래 세시명절이나 24절기에 드는 절기가 아닌 속절(俗節)이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웬만한 절기 못지않은 인기를 지닌 절기입니다.

 

복을 기산하는 방법은 하지(?至)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열흘 후인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 입추(立秋)가 지난 후 첫 번째 오는 경일(庚日)을 말복으로 헤아립니다.

복날을 대표하는 풍속으로 ‘보신탕’을 들 수 있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온(溫)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하였고,

「열양세시기(?陽歲時記)」에서는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조양(助陽)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개장국을 먹으면서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쳐 보허(補虛)한다."고 하는 등 여러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보신탕을 널리 즐겨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개고기를 즐기는 만큼 이를 꺼리는 경향도 많아서 개고기 대신 삼계탕을 즐겼는데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불교적 영향이 미쳤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민간속설상 개는 다른 짐승과 달리 부모나 자식의 환생으로 여겨 먹는 것을 꺼린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명절이자 세시명절인 ‘백중(우란분절)’의 주인공인 목련존자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를 천도하는데 그 어머니가 개로 환생했었다고 하여 여기에 영향을 받아 개로 환생한 부모 설화가 우리나라 각처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전설이나 설화가 구전되면서 개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개로 환생한 부모설화 중 대표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마을의 효성 깊은 아들이 노모를 극진히 모셨는데 늙은 어머니가 죽은 후 개로 환생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전에 어머니의 소원이 금강산 구경이었는데 이를 못시켜드린 것이 마음에 걸렸던 아들은 개로 환생한 어머니를 업고 금강산 1만 2천봉 8만 9암자를 유람하였다고 합니다.

이윽고 아들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부처님이 개로 환생한 어머니의 업장을 소멸시켜 주어 극락왕생케 하였고 효심 깊은 아들은 큰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해 6월 인천에 사는 40대 아들이 9순의 아버지를 지게에 업고 금강산 구경을 한 적이 있어 국내뿐만 해외까지 알려져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현대판 ‘개를 업은 효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금강산

 

 

유두의 머리감기는 부처님오신날의 ‘관불의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세시풍속이라고 합니다. 복날의 보신탕에도 불교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미상불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불교 아닌 것이 없습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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